전통과 근대의 만남:장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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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장지연의 탄생

2. 인간 장지연

3. 언론활동

본문내용

람이 신문을 믿고 또한 그것을 공기로 삼을 것이다."
라며 매일신보를 몹시 꾸짖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얼마 후 장지연은 <매일신보>의 기고자가 된다. 또한 그는 1914년 12월 23일부터 1918년 7월 11일까지 많은 글을 기고하였는데 그 내용은 시사등과 국학 및 개화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국권회복이 현실적으로 좌절된 상황에서 장지연은 국학과 전통문화를 통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민에게 일체감을 갖게 하고 또한 애국정신, 즉 그가 그토록 강조한 '조국정신'을 확고히 하여 먼 훗 날 국권회복을 도모코자 했던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 구자혁, 앞의 책, p105
장지연이 매일신문에 기고한 이유를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장지연은 1915년 <매일신보> 지상에서 전개된 일본인 다카하시와의 군자유와 소인유를 구별하며 논쟁을 벌였다. 장지연은 유교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았으나 소인유에 대해서는 격렬한 비난을 삼가지 않았다.
) 구자혁, 앞의 책, p46
이 논쟁의 논점은 점차 조선의 쇠망 원인으로 옮아갔다. 이는 결국 다카하시 조선의 붕당정치를 당쟁으로 표현하고 이를 조선의 쇠망과 연결시키는 식민지 사학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경우에 장지연은 매일신보의 지상을 식민지 사학과 대결하는 장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결론
언론에 있어서 장지연의 사상은 그의 탄생이 그러하였듯이 유림의 것을 물려받은 것이었다. 사학과 저널리즘을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하고 새로운 근대문물을 받아들여 새로운 근대문물의 유입으로 트이게 된 길로 물려받은 사상을 흐르게 하고 그러한 세계 안에서 언론활동을 벌인 인물이었다.

키워드

독립운동,   일제,   장지연,   전통,   근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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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4.04.08
  • 저작시기2004.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6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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