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를 지배한 혁명가 감상문(요약 및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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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니를 지배한 혁명가 감상문(요약 및 줄거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다. 소동이 일어난 곳은 엑스포 전시장만이 아니었다. 소니 본사에서도 대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1995년 3월 이전까지 플레이스테이션은 잘 나가고 있었고 항상 공급 부족에 의한 품귀 사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3월이 지나면서 플레이스테이션의 판매가 갑자기 부진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SCEI는 게임 '철권'을 출시했지만, 판매는 살아나지 않았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에 있었던 것이다.
남코가 개발하여 닌텐도를 통하여 판매되는 게임 '철권'은 소비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아무리 소니의 게임 '철권'이 훌륭하다고 하여도 이 게임을 하기 위해 추가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를 구입하기 위해 399달러를 지불하고자 하는 소비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플레이스테이션의 소프트웨어 판매를 위해서는 하드웨어인 플레이스테이션의 가격을 인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정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니의 국내 판매 본부가 제동을 걸었다. 출시 후 6개월도 안 돼 가격을 내리는 것은 오디오비주얼 산업의 비즈니스 관행을 깔아뭉개는 전례 없는 조치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몇몇 대형 소매상들도 반발했다. "가격을 1백 달러 내리면 앞으로 우리는 소니 제품을 팔지 않겠다." 이런 반응은 그동안 플레이스테이션의 소매상 마진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소니 본사와의 관계를 더욱더 악화시킨 이유는 사전에 그 조치에 대해 일언반구의 상의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구타라기는 이러한 업무에는 사실상 경험이 없었다. 그는 하루빨리 장애물을 치우고 플레이스테이션을 성장가도로 복귀시키는 것에만 정신이 쏠려 있었다. 그러다보니 아무도 소니 본사에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팔아라
SCEI의 핵심 멤버는 미우라 반도의 마호로바 리조트 호텔에서 1박 2일의 회의를 가졌다. 브레인스토밍은 오후 7시에 시작이 되었다. 유통 정책과 마케팅 방법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였다. 결정되지 않은 유일한 이슈는 하드웨어 가격이었다. 젊은 참석자들은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으나, SCEI의 경영진이 참석하지 않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경영진들은 밤 10시가 되서야 도착했다. 토론은 끝나고 파티가 시작되었는데, 한 젊은 여성 참석자가 임원들에게 취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299달러입니다!"
구타라기의 이론은 메모리 가격은 시간이 가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전망은 빗나갔다. 가격은 오히려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다. 정가를 399달러로 정한 것도 메모리 가격이 단시일 내 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희망대로 되어주지 않았다. 1995년 말까지도 메모리는 높은 가격대를 유지했다. 이 기간동안 마쓰시타, 산요, NEC, 세가 그리고 히타치 등이 새로운 게임기를 가지고 게임기 시장으로 진입하였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SCEI는 살아남았다. 플레이스테이션은 과연 무엇이 달랐던 것인가?
결정적인 차이는 이들 경쟁업체들이 자신들이 가전제품에서 사용하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게임 사업에 들어온 반면, SCEI는 게임 사업의 방법론을 충실히 따랐다는 점이다. 경쟁업체들은 비용을 토대로 가격을 산정하고 하드웨어 판매에서 이익을 내기를 원했다. 반면 SCEI는 하드웨어는 무료로 주고 소프트웨어 판매에서 이익을 내는 구조를 택했다. 가격 인하의 효과는 성공적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을 299달러로 시장에 내놓자마자 소니의 게임 소프트웨어가 엄청난 속도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7. 소니 아메리카와의 주도권 다툼
플레에스테이션의 미국 시장 개척사는 SCEI와 소니 아메리카 간에 주도권을 놓고 벌인 치열한 다툼의 역사이다. 처음부터 둘 사이는 잘 맞물려 돌아가지 못했다. 문제가 작을 때는 조정할 수 있었으나 차츰 간격이 벌어지면서 결국 둘 사이의 의사 진행이 막혀버렸다. 미국 경영진은 일본에서 결정된 것이면 무조건 반대를 했다. 그리고는 미국 시장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소니 아메리카가 좌지우지했다. 미국 시장에 대한 권한을 일본에서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회사 소니 아메리카는 산하에 거느리고 있는 SEPC라는 회사를 통해 비록 적은 양이지만 슈퍼 패미콤과 세가 제네시스용 게임도 함께 생산하고 있었으며, 이 회사가 미국 시장의 플레이스테이션 판매는 물론이고 라이선스 관리와 마케팅 책임까지 맡았다.
갈등이 비등하고 있었지만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일본의 SCEI와 소니 아메리카의 자회사 SEPC는 직제 상 소속이 달랐기 때문이다. 양쪽은 특히 소프트웨어 가격 정책에 대해 첨예하게 맞섰다. 일본은 소프트웨어 가격을 낮추기를 원했다. 그러나 미국 측은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미국 경영진은 모두 게임 산업의 베테랑들이다. 그래서 기존 모델과 과거의 지식 경험을 토대로 모든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플레이스테이션은 기존 게임 산업을 뒤집는 혁신적인 게임기였다. 양쪽의 생각은 뿌리부터 달랐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구타라기는 오가 사장에게 끊임없이 호소하였다. "미국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일본으로 가져올 수 없다면 이 사업은 성공할 수 없다." 이제 SCEI와 소니 자회사의 미국 경영진 사이의 알력은 SCEI 사업이 지장을 받는 지경까지 진전되었다. SCEI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되도록 빨리 미국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자신들의 우산 속으로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마케팅과 라이선스 정책을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 수 있다. 결국 소니는 1997년 1월에 SCEI 아메리카를 설립하여 미국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SCEI 아메리카는 처음에는 여러 문제들과 씨름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러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그들의 불굴의 노력은 1997년 중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시장은 처음부터 규모가 컸기 때문에 성장을 시작하자 급속도로 탄력이 붙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서 대박이 터졌다. 그리하여 1998년 3월 회계년도에 1년간 판매량이 770만 개에 달하게 되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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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04.05.01
  • 저작시기2004.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48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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