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재해로부터의 기록물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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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재난과 기록물

2. 재해의 종류와 기록물 훼손

3. 재해시 기록물 관리의 원칙과 행동요령

4. 기록물보호요령

5. 재난 대비책의 수립

6. 관련 자료

7. 결론

본문내용

건물관리실로부터 첫 번째 안내방송을 들었다. "이 건물은 안전합니다. 우리는 비상상황에 처한 것이 아닙니다. 각자 사무실에 남아 계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카렌의 워크샵에 참석한 사람들과 조사중이었던 네 명의 족보학자들을 해산시키기로 결정하였다.(중략)
201 바릭 가가 14번가부터 통제구역이었던 다음날 이틀동안, 나는 뉴스를 보았고, 전화와 컴퓨터를 통하여 접촉하였다. 금요일 아침, 9월 14일, 시장이 카날 가로 통제선을 옮기고 나서, 나와 존은 복귀하여 총무과가 뉴욕시의 연방 사무소에 끼친 재난의 영향에 대하여 개관하는 회의에 참석하였다.
어떤 곳은 파괴되었고, 다수가 자리를 옮겼으며, 카날 가 아래의 모든 건물은 안전검사가 필요하였다. 한 검사를 통하여 무역센터 지역에서 가까운 건물 외벽에서 석면을 발견하였다. 다행히, 201 바릭에는 아무런 손상의 흔적이 없었다.
통제구역이 옮겨진 뒤, 우리는 월요일인 9월 17일에 직원들의 업무를 개시하였고, 다음날 전혀 다른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에게도 문을 열었다.(중략)
미국사 최악의 테러리스트 공격에서 깨어나, 이제 무역센터에서 1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 NARA 시설은 업무를 시작하였다. 평상대로는 아니지만, 정상화에는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록문화 유산 지킴이 "첸춘쉰"과 "코튼"
(중앙일보 2002. 8. 2, 표정훈 칼럼내용 발췌)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이 있던 1941년 12월 7일, 미군 화물선 SS 프레지던트 해리슨호는 양쯔(揚子)강 하구를 벗어나는 순간 일본군 순시선의 공격을 받아 나포되었다. 당시 베이징(北京)국립도서관 상하이(上海)사무소에서 일하던 첸춘쉰(錢存訓)은 이 소식을 듣고 깊은 안타까움에 잠겼다. 바로 두 달 전 그는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미 의회도서관과 상의하여, 중국의 귀중 고문서(古文書)를 중일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으로 옮겨 보관하는 계획을 일본군 점령 하에서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첸춘쉰은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측 상하이 세관 검사관이 통관 업무를 담당하는 날에만, 고문서를 담은 나무상자를 10개씩 선적했다. 미 의회도서관이 신간 도서를 대량 구매하는 형식을 취했다. 3만여점의 고문서를 모두 실어보내는 데 두달 가까이 걸렸다. 하루 하루가 숨막히게 긴장된 날들이었다."
비운의 SS 프레지던트 해리슨호에는 12월 5일에 선적한 마지막 선적분이 실려 있었다. 6개월 뒤 첸춘쉰은 1백2개의 나무상자가 모두 미국에 도착했고 고문서를 마이크로필름 자료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65년 미 정부는 고문서를 대만으로 보냈고, 84년에 대만 고궁박물관에서 고문서를 확인한 첸춘쉰은 눈물을 흘리며 감회에 젖었다. 한편 중국 국가도서관 측은 99년 12월 첸춘쉰(시카고대 명예교수)에게 최고훈장인 영예장을 수여했다. 비록 중국 본토가 아닌 대만에 있기는 하지만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전하는데 기여한 노학자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한 것이다. 첸춘쉰은 대만에 대한 중국 당국의 고문서 반환 요구를 지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나의 의무였다. 고문서들이 하루 빨리 고향의 품에 다시 안기기를 바란다."
1020년께 캔터베리 성당 필경실에서 어느 이름 모를 성직자가 만든 '율리우스 노동력'이 오늘날까지 남아있게 된 것은, 저명한 장서가 로버트 B 코튼(1571~1631) 덕분이다. 코튼 라이브러리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베어울프' 사본을 포함하고 있는 등, 영국에서 개인이 수집한 장서 컬렉션 가운데 가장 높은 가치를 지녔다. 헨리 8세가 수도원을 해산시키면서 수도원 소장 필사본들도 흩어지고 말았다. 코튼은 산일된 귀중 필사본들을 어렵사리 구해 자신의 서고에 보관했다. 당시 코튼의 노력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율리우스 노동력'은 1000년께 영국인들의 일상 생활을 전해주는 중요한 사료이며, 비슷한 종류의 문헌으로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나의 의무"였다는 첸춘쉰의 말이 지닌 무게가 범상치 않다. 첸춘쉰과 뜻을 같이하여 목숨을 건 밀반출을 감행한 상하이 세관 검사관의 용기, 군용 화물선을 동원한 고문서 긴급 수송작전을 계획한 미국 당국의 태도, 그리고 흩어진 귀중 필사본을 구해 보전한 코튼의 노력 등이 모두 마찬가지다.
기록문화에 관한 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전통과 유산을 지닌 오늘날의 우리는 어떠한가? 기록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개인이 얼마나 될까? 그런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국가적인 차원의 정리·보전에 힘쓰는 관계 당국자는 얼마나 될까? 병인양요(1866)때 약탈당한 외규장각(外奎章閣) 고문서에 대한 최초의 공식 실태조사를 얼마 전에야 마무리한 우리이고 보면, 대답이 궁해지기만 한다. 국내에 소개된 첸춘쉰의 저서로 '중국고대서사'(동문선)가 있으며, '율리우스 노동력'을 바탕삼아 중세 영국인의 일상을 재구성한 책으로 '중세기행'(청어람 미디어)이 있다.
7. 결 론
재난 재해로부터의 기록물 보호에 있어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인간의 안전이다. 이를 전제로 기록물의 체계적인 보호를 위한, 해당 기록관 실정에 맞는 성문화된 규칙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 이러한 규칙을 기록관에 있는 전 직원은 항상 숙지하고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재난 재해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하며, 만약 그러한 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위에서 언급한 재난대책에 입각하여 체계적이고 안전적인 행동을 취하여야겠다.
하지만 현재 국내 기록관에서는 이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이 마련되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기록관 자체가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재난대책의 미비함을 탓하기란 우선순위에 어긋난 자세라고 볼수 있겠지만, 더욱 유리한 것이 아직 모두 미비하므로 기록관과 재난대책, 그 외 다양한 제문제를 모두 병행하여 검토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시급하지만 탁월한 전문성을 가지고 철저한 준비를 하여야겠다.
■ 참고문헌
하종희 역, 기록관리 비상계획, 진리탐구, 2002
신종순 외, 기록보존의 실제, 도서출판세회, 2002
정부기록보존소(http://www.archive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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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6.14
  • 저작시기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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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5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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