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미술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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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초기기독교미술
2. 비잔틴미술
3. 로마네스크미술
4. 고딕미술

본문내용

자적인 인간상(人間像)이 비로소 확립되었다고 해도 좋다.
샤르트르대성당의 서쪽 정면 ‘왕의 문’을 비롯해서, 파리 부근의 12세기 후반의 성당 입구 조각은 원주인상(圓柱人像)의 새 요소가 있었으나, 양식상으로나 도상상(圖像上) 로마네스크 조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13세기에 들어와서, 샤르트르·파리·아미앙·랑스 등 잇달은 대성당의 장식과 조각에서 고딕 양식은 확립되었다.
샤르트르는 12세기 중반의 서쪽 정면을 그대로 보존하고, 13세기 초에 남북에 새로 큰 문을 냈고, 13세기 중반에 거기에 대규모 조상군과 부조를 장식해 놓았는데, 도상(圖像)의 풍부한 내용과 짜임새에서는 첫째 가는 예이다.
중세 그리스도교 신앙의 인간화 경향의 하나로 보이는 민중의 성모숭배(聖母崇拜)에 대응하여 성모에게 입구 장식을 바치게 된 것은 고딕 미술의 새로운 일면으로, 그 형식이 정해졌다.
13세기 고딕 도상은 복음서적인 《묵시록》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던 로마네스크 시대의 신비주의와 서사시적(敍事詩的) 경향에 대신해서, 신앙의 기초를 지성(知性)에 의해 다지고, 또한 인간적 감정과 융화하는 도상을 구하였다.
즉, 13세기 고딕 조각의 이상주의를 양식상으로나 내용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옛 성자의 숭배에도 실제의 농민이나 기사의 모습을 같이 결부시켜 그 도상을 만들었다. 현실과의 접촉은 조상(彫像)의 현실감에 충실해야 한다는 욕구에 부응하여 고딕 조각의 사실주의로 나타나고, 중세인이 이상으로 삼은 인간상이 현실감을 가지고 표현된다.
13세기 중반부터 이미사실주의의 진행은 고전주의를 깨뜨리고, 14세기는 개성화를 진전시켜 초상 및 초상적 작품의 예와 우아하고 아름다운 매너리즘의 조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도 조각가들의 힘찬 사실주의로 그 때까지의 우미(優美)한 매너리즘을 타파하고 성격적인 극적 조상을 실현하여, 건축에서 독립한 15세기 조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후기 로마네스크에서 고딕 양식에 걸쳐 독일 조각은 훌륭하였으며, 13세기의 조상군, 13∼14세기의 슈트라스부르크의 조각은 프랑스에 못지 않은 힘 있는 성격적 표현을 이어왔다.
15세기에는 제단 조각(祭壇彫刻)으로 발달하고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는 목조주상(木彫鑄像)에 많은 명장(名匠)을 배출하였다.
【건축】 고딕식 성당 건축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구조 기술상(構造技術上)의 3요소(要素),
즉 지골궁륭(支骨穹:ribbed vault)·버팀도리[飛樑:flying buttress]·첨두 아치(尖頭 arch)에 단적으로 보인다.
이것들의 조직적인 적용으로 말미암아 형태에 있어서는앙고성(仰高性)또는상승감(上昇感)이 강조됨과 함께, 구조상에서는 사압력(斜壓力)이 크게 경감(輕減)된다.
이 3가지 요소는 이미 로마네스크 건축에도 있었다.
이런 것은 동방 기원(東方起原)임이 틀림없다. 12∼13세기 북프랑스의 한 건축가는 이 가구(架構)에 편리하고 강한 궁륭(vau1t)을 쓰겠다고 결심하고, 이것을 제1전제(前提)로 해서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면서 차례를 따라 새 양식의 실현을 추진해 나갔다.
이렇게 새로운 성당 건축형식은 합리적인 탐구와 실제적인 기술적 수련을 쌓아서 실현된 것이다.
고딕 건축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되는 과제는 벽체의 양괴성(量塊性)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벽체는 엷어지고 창의 면적을 확대해 갔으나, 이 취약화된 벽체를 역학적(力學的)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지골궁륭을 적용하였다.
이 구조에 의하면 궁륭의 무게가 지골(支骨:rib)에 의해 지주(支柱)에 집중되기 때문에,
벽체는 거의 중량을 받지 않게 된다.
더욱이 외벽에는 벽에 따라 부벽(扶壁:buttress)이 줄지어 서 있어서, 지주에 걸리는 사압력(斜壓力)을 외부에서 받쳐주고 있다.
또 궁륭·입구·창 등에서 로마네스크에서는 반원형 아치를 썼지만, 고딕에서는 첨두형 아치를 쓰게 되어, 첨두의 각을 넓히거나 좁혀서 넓이와 높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하여 성당 안의 공간 구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하게 되었다.
12세기 중엽에 이미 지골궁륭의 합리적 적용, 높은 비례의 복합주(複合柱)나 창, 내진회랑(內陣廻廊)의 해방된 공간 등, 고딕적 건축 사고(思考)가 이미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도 거기엔 로마네스크적인 점이 적지 않아, 과도기적 성격을 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 때의 미술을 초기 고딕 미술이라고 한다.
13세기에서는 고전적 고딕 성당들이 지어졌다.
창이 높아지며 채광(採光)을 풍부하게 하고, 전체로서 상승효과를 강하게 나타내어,
세련된 건축기술을 과시하는 레요낭 양식(rayonnant style)이 퍼졌다.
14∼15세기에는 후기 고딕 성당들이 건축되었고, 창의 디자인은 물결 모양을 이어 불꽃 모양을 나타내는 플랑브와이앙 양식(flamboyant style)이 유행하여 도시계획에 많이 사용되었다
이탈리아의 고딕 건축은 전통적인 바실리카형식이 존속하여, 궁륭은 낮고 창은 적어 고딕 특유의 경쾌한 상승감이 적고, 벽면이 넓어 자연히 내벽은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된다. 이탈리아에서는 예외적인 외관구성(外觀構成)을 보이는 밀라노대성당은 주로 북유럽 건축가의 손으로 지은 것이다.
독일은 최초에 북프랑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나, 14세기 이후에는 독일의 독특한 형식인 할렌키르헤(Hallenkirche)가 추진된다.
이것은 신랑(身廊)과 측랑(側廊)의 궁륭 높이를 균일하게 하고, 성당 내부를 높은 창에 둘러싸인 단일 공간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에스파냐에서도 당초에는 프랑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거기에 이슬람계 양식이 섞여 들어가 에스파냐 특유의 무데하르 형식이 형성되었다.
영국에서는 프랑스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영국 고유의 양식이 확보되어 있어서
13세기의 초영식(初英式:early English), 14세기의 장식식(裝飾式:decorated style),
14세기 이후의 수직식(垂直式:perpendicular style)이라고 하는 양식으로 그 발전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또 후기 고딕 건축에서는 교회 건축 이외에 플랑드르 및 이탈리아 북부에 발달한 시청사(市廳舍)나 저택 등의 세속적 건축에도 이것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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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7.12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0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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