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나는 역사란 삶과 동떨어졌다는 식으로 배워 왔던 것 같다. 누가 무슨 일을 몇 년도에 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년도도 중요하고 배경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역사란 우리와 같은 인간이 만들어나갔다는 점을 놓치고 있는 듯싶다.
미국은 유치원에서 '자기, 학교, 집'에 대해 가르치고, 이후 범위를 세계지리, 문화, 역사까지 확대한다고 한다. 우리도 우리의 근현대사는 태백산맥을 읽을 것도, 아리랑을 읽을 것도 없다. 더 현실적인 치열한 삶을 살아온 우리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를 갖고 있다. 옛날 얘기처럼 우리의 뿌리에 대해 듣고, 당시 삶을 겪었던 자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우린 참 많은 것을 간과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때때로 생각한다.
역사는 보는 자의 위치에 따라 바뀐다. 간디는 힘들 때마다 "100년 뒤 역사의 눈으로 지금의 상황을 보라"고 말했다. 그만큼 역사는 멀리 내다보는 눈과 인내심을 가르쳐주는 소중한 과목이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 진리를 추구하는 자만이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 오히려 권력을 잡으면 역사의 심판 같은 것은 금방 바꿀 수 있을 듯한 세태 속에 있다.
나는 모든 이들에게 역사의 현장 속에 직접 들어가 "그럼 나는 그 순간 어떻게 대처했을 것인가. 실패했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를 상상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고 싶다. 앞으로 스스로 살아나갈 자양분을 줄 수 있는 가장 재밌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지금도 흐르고 있다. 오늘의 역사가 내일의 역사는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역사란 삶과 동떨어졌다는 식으로 배워 왔던 것 같다. 누가 무슨 일을 몇 년도에 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년도도 중요하고 배경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역사란 우리와 같은 인간이 만들어나갔다는 점을 놓치고 있는 듯싶다.
미국은 유치원에서 '자기, 학교, 집'에 대해 가르치고, 이후 범위를 세계지리, 문화, 역사까지 확대한다고 한다. 우리도 우리의 근현대사는 태백산맥을 읽을 것도, 아리랑을 읽을 것도 없다. 더 현실적인 치열한 삶을 살아온 우리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를 갖고 있다. 옛날 얘기처럼 우리의 뿌리에 대해 듣고, 당시 삶을 겪었던 자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우린 참 많은 것을 간과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때때로 생각한다.
역사는 보는 자의 위치에 따라 바뀐다. 간디는 힘들 때마다 "100년 뒤 역사의 눈으로 지금의 상황을 보라"고 말했다. 그만큼 역사는 멀리 내다보는 눈과 인내심을 가르쳐주는 소중한 과목이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 진리를 추구하는 자만이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 오히려 권력을 잡으면 역사의 심판 같은 것은 금방 바꿀 수 있을 듯한 세태 속에 있다.
나는 모든 이들에게 역사의 현장 속에 직접 들어가 "그럼 나는 그 순간 어떻게 대처했을 것인가. 실패했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를 상상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고 싶다. 앞으로 스스로 살아나갈 자양분을 줄 수 있는 가장 재밌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지금도 흐르고 있다. 오늘의 역사가 내일의 역사는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