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발전의 시초-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경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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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경제발전의 시초-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경제정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 박정희는 누구인가
- 시대적 상황 그리고 박정희의 출현
- 박정희, 그만의 근대화 방식
- 국민이 함께 이루어낸 근대화
- 농촌의 근대화를 추구한 새마을 운동의 사나이 박정희
- 박대통령의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경제개발 5개년 계획
- 경제성장의 절정기 -1970년대의 상황
- 박대통령의 경제업적에 관한 부정적 평가

결론

본문내용

경기 과열로 까지 사태는 심각한 양상을 띈다. 정부의 중공업 육성 정책의 결과 시중의 통화량이 급속히 팽창함에 따라 과소비와 각종 투기가 만연하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198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어 물가 상승이 가속화 되었고, 대외 경쟁력이 약화 되는 증상을 나타냈다. 또한 중동 건설 붐과 관련하여 국내의 기술자들이 해외로 파견됨에 따라 국내에서의 임금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결과를 낳게 됨으로써 물가 상승 압박을 받게 된다. 실제로 1974~1979년 실질 임금상승률이 연평균 16%에 육박한다는 자료가 제시되기도 하였다.
(표 5) 1970년대 주요 경제 지표 단위:%
총통화 증가율
경제성장률
GNP 디플레이터 상승률
실질임금상승률
1970
27.4
-
-
-
1971
20.8
9.1
13.9
1.7
1972
33.8
5.3
16.1
5.2
1973
36.4
14.0
13.4
8.1
1974
24.0
8.5
29.5
6.1
1975
28.2
3.8
25.7
5.4
1976
33.5
14.4
20.7
17.5
1977
39.7
10.7
15.7
19.9
1978
35.0
11.1
21.9
18.8
1979
24.6
7.0
21.2
8.4
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연보』
금융구조 또한 많은 변화를 한다. 관치 금융이라는 단어가 고개를 든다. 정부의 힘이 강했던 시절, 행정관료가 일정한 우선 순위를 정하고 이 기준에 맞춰서 자금 배정이 이루어 지는 양상을 보인다. 아무래도 국가의 육성 정책에 맞는 기업들에게 많은 특혜가 주어진 시점이기도 하다.
박대통령의 경제업적에 관한 부정적 평가
1960년대 계층별 소득 분포는 타 개발 도상국에 비해 상대적 형평성을 유지하였다. 경제 개발 계획 과정에서는 절대 빈곤의 문제는 크게 해소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화학 공업의 육성과 더불어 도.농간 임금격차와 그로 인한 소득 불균형이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된다.
1970년대 우리는 수출 지향적 산업구조를 갖는다. 선별적 산업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중화학 공업에 대한 막대한 지원이 이에 해당한다. 중화학 공업 투자를 기초로 국제 수지 흑자를 기록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의 선별 정책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시장 실패를 낳고 이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또한 선별적 산업 정책은 재벌을 탄생시켰다.
또한 양적(量的)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농.공간 격차 등 산업간 부조화가 발생하였다. 급속한 공업 분야의 성장으로 말미암아 농촌 인구가 도시로 집중화 되었던 양상이 눈에 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앞서 기술 하였듯이,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로서 외자도입은 필수적이었는데, 이 양이 막대했다는 비판이 우세하다. 실질 경제성장이나 수용능력을 고려치 않고 도입한 결과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채무국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중화학 공업 부분의 육성을 위한 투자자금 마련을 위해 중화학 공업에 대한 금융 세제상의 우대, 종합 무역상사의 육성, 중소기업 계열화를 촉진하게 된다. 중화학 공업화 정책에 편승하여 국내 독점 자본계열은 주요 생산재 산업, 건설업, 금융업을 연결하는 "문어발식 경영"을 추구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에 의한 기업 운영, 사회 구조가 만연하게 된다. 또한 두 번에 걸친 석유 파동과 높은 인플레이션의 경험은 투기에 대한 붐을 조성 시켰으며, 이로 인해 부의 배분 결과에 대한 정당성을 악화시켰다는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야기를 마치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특성중 하나가 남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일이다. 특히 정치인들에게는 어찌 보면 겁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만큼은 여느 대통령들보다 더 많은 비판과 평가가 이루어졌다.
군부 독재 정권이라는 아주 보기 드문 현실에서 부정적인 면이 많이 비판되는 요즘이지만, 어찌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1960년대 배경은 어찌보면 독재정치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는지도 모르겠다. 혼란의 시대를 교통 정리할 적격한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정권을 맡았으면 더 잘 했을것이다."라는 가정은 한낮 가정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시대에서 말 그대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낸" 대통령이라 해도 그다지 큰 칭찬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사실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은 부정적인 면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독재는 나쁜 것이다."라는 단순한 정의에서 벗어나 보기 드문 그의 리더쉽과 성공에 대한 끊질긴 집념, 국민들에게 주는 신뢰감은 충분히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박정희의 정치 운영 방식이 현대사회에서는 절대 통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통용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틀리기 때문이라기 보다도 더 좋은 방법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고, 국민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권은 모르는 것 같다. 적어도 국민의 여론을 수렴할 능력 조차 없고, 수렴할 마음 조차 없다면 과거의 정권이 더 낫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박정희 독재 정권이 좋았다."라는 말을 듣는 현 정권은 반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가 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가 하면 근시일 내에 경제는 활발한 모습은 아닐지라도 나아질 것이라는 긍정적 예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기도 한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필요할 때이다. 물 흘러가듯 방관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부담이 국민들에게 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정부의 개입에 대해 부정적 식견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나친 간섭이 아닐까 한다. 근시안적인 접근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을 기준으로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경기는 부양되어야 하며, 그 방법이 옳은 것이라면 박 대통령의 선례처럼 정부의 주도하에 국민을 이끌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국민과 함께 하는 정부"가 단순한 슬로건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국민 한 사람도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힘 있는 정부, 그리고 국민이 그 힘을 이용할 수 있는 국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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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1.01
  • 저작시기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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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8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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