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⑴ 창가 및 신체시(1894∼1918)
⑵ 근대시의 개화(1919∼1930)
⑶ 프롤레타리아 시와 시조의 부흥(1925∼1934)
⑷ 순수시의 정립(1931∼1942)
⑸ 모더니즘(1934∼1942)
⑹ 인생파 및 자연파의 시(1935∼1942)
⑺ 암흑기의 저항시와 친일시(1941∼1945)
⑻ 해방후 혼란기의 시(1945∼1950)
⑼ 전후의 시(1950∼1960)
⑽ 60년대 이후의 시의 변모(1961 이후)
⑵ 근대시의 개화(1919∼1930)
⑶ 프롤레타리아 시와 시조의 부흥(1925∼1934)
⑷ 순수시의 정립(1931∼1942)
⑸ 모더니즘(1934∼1942)
⑹ 인생파 및 자연파의 시(1935∼1942)
⑺ 암흑기의 저항시와 친일시(1941∼1945)
⑻ 해방후 혼란기의 시(1945∼1950)
⑼ 전후의 시(1950∼1960)
⑽ 60년대 이후의 시의 변모(1961 이후)
본문내용
애국 전쟁시들은 하나같이 공소한 것을 그 특징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열정만 있고 목소리만 높다 해서 애국시·전쟁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라 형편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고 전쟁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파악이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애국시·전쟁시가 있을 수 있을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전쟁 직후에 씌어진 애국 전쟁시들은 반공의식을 고취했다는 일 말고는 전혀 문학적인 의미가 없다. 5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우리는 훨씬 성격이 다른 또 한 떼의 모더니스트들과 만나게 된다. 송욱, 전영경, 김구용, 신동문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종래의 일반적인 시에 대한 개념까지 해체해 버리고, 완전히 풀어헤친 형태들을 취했다. 완전히 산문에 굴복해 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시에서는 사회부조리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싹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시에 대하여 가지는 과격한 태도는 '후반기'를 주축으로 하는 모더니스트와는 많이 다른 동기에 따른 것이었다.
⑽ 60년대 이후의 시의 변모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다. 나는 우리의 현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부끄럽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더 안타깝고 부끄러운 것은 이 뒤떨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인의 태도이다"(<퓨리턴의 초상>)라는 말은 김수영이 한 말이지만 1960년의 4·19혁명은 뒤늦게나마 시인들로 하여금 꿈에서 깨어 현실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70년대에 이르러 상당히 굵은 줄기를 이룬 황명걸, 민 영, 이성부, 조태일, 이시영, 김창완, 최하림, 정호승 등의 민중의식의 시, 현실의식의 시는 바로 이 4·19에서 발원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신동문은 굳이 분류한다면 모더니스트 계열로 칠 수 있는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장시 <풍선기>에 짙게 깔려 있는 것은 현실의식이요 비평정신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4·19가 나자 그는 모더니즘의 허물을 벗어 던지고 삶의 현장 속으로 뛰어든다. 김수영은 50년대 모더니즘의 가장 핵심적 시인이었으면서도 4·19이후 가장 먼저 삶의 현실 속으로 뛰어든다. 그는 본디 '후반기' 동인으로서 한국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말초적 기교주의와 지적 난삽성을 조장한 면에 있어 그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또 그들 대부분과는 달리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자기쇄신의 진취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4월 혁명의 현실 속에 뛰어들 수 있었으며, 이로써 그에게 있어 모더니즘은 완전한 청산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극복된 것으로 보인다. 신동엽은 60년대 이후 가장 중요한 몫을 한 시인이다. 그는 분단상황의 비극적 현실을 가장 날카롭게 꿰뚫어 보았다. 그는 항상 조국과 민족의 통일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두었다. 그러나 그의 시를 더욱 힘차게 만드는 것은 분단상황의 비극적 현실이 극복될 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었다. 이 믿음은 그의 투철한 역사인식에 의하여 밑받침이 되었다. 김수영·신동엽의 현실인식·역사인식에 바탕한 시들은 60년대 말 70년대에 이르러 더 심화된 형태의 민중의식의 시로 되어, 이성부·조태일·최하림·양성우·이시영·김창완·정호승 등에 의해 계승 발전된다.
⑽ 60년대 이후의 시의 변모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다. 나는 우리의 현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부끄럽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더 안타깝고 부끄러운 것은 이 뒤떨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인의 태도이다"(<퓨리턴의 초상>)라는 말은 김수영이 한 말이지만 1960년의 4·19혁명은 뒤늦게나마 시인들로 하여금 꿈에서 깨어 현실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70년대에 이르러 상당히 굵은 줄기를 이룬 황명걸, 민 영, 이성부, 조태일, 이시영, 김창완, 최하림, 정호승 등의 민중의식의 시, 현실의식의 시는 바로 이 4·19에서 발원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신동문은 굳이 분류한다면 모더니스트 계열로 칠 수 있는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장시 <풍선기>에 짙게 깔려 있는 것은 현실의식이요 비평정신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4·19가 나자 그는 모더니즘의 허물을 벗어 던지고 삶의 현장 속으로 뛰어든다. 김수영은 50년대 모더니즘의 가장 핵심적 시인이었으면서도 4·19이후 가장 먼저 삶의 현실 속으로 뛰어든다. 그는 본디 '후반기' 동인으로서 한국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말초적 기교주의와 지적 난삽성을 조장한 면에 있어 그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또 그들 대부분과는 달리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자기쇄신의 진취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4월 혁명의 현실 속에 뛰어들 수 있었으며, 이로써 그에게 있어 모더니즘은 완전한 청산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극복된 것으로 보인다. 신동엽은 60년대 이후 가장 중요한 몫을 한 시인이다. 그는 분단상황의 비극적 현실을 가장 날카롭게 꿰뚫어 보았다. 그는 항상 조국과 민족의 통일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두었다. 그러나 그의 시를 더욱 힘차게 만드는 것은 분단상황의 비극적 현실이 극복될 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었다. 이 믿음은 그의 투철한 역사인식에 의하여 밑받침이 되었다. 김수영·신동엽의 현실인식·역사인식에 바탕한 시들은 60년대 말 70년대에 이르러 더 심화된 형태의 민중의식의 시로 되어, 이성부·조태일·최하림·양성우·이시영·김창완·정호승 등에 의해 계승 발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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