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독일 문학 예술이론의 근본동기로서의 감성의 계몽 - 미의 감성론과 숭고의 감성론을 중심으로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I. 여는 말

II. 펴는 말

III. 맺는 말

본문내용

n: C. Pries(Hg.), Das Erhabene. Zwischen Grenzerfahrung und Grosenwahn, Weinheim 1989.
프랑스의 실벵(Silvain), 뒤보(Dubos), 바토(Bateau), 디드로(Diderot), 영국의 영(Young), 애디슨(Addison), 포프(Pope), 브라운(Browne), 드라이든(Dryden), 허치슨(Hutcheson), 흄(Hume), 버크(Burke), 독일의 보드머(Bodmer)와 브라이팅어(Breitinger), 모세스 멘델스존, 레싱, 헤르더 등 당시 유럽의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그 논의에 참여한 숭고의 이념은 「질풍노도」라는 생산적인 문예사조를 탄생하게 하는 요람이 되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숭고의 이념이 미학의 중심범주로 부상하는 과정이 귀족계급이라는 취미공동체가 쇠퇴해가고 시민계급이 문화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과정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다시 강조적으로 표현하면 절도와 형식을 바탕으로 하는 궁정문화적 취향이 개성적(individuell)이고 특징적(charakteristisch)인 시민문화에 자리를 내주는 과정에서 규범화된 인습에 대한 거부와 형식의 파괴를 본질로 하는 숭고의 감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미학의 또 하나의 중심범주인 미의 개념도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즉, 미는 이제 더 이상 지배적인 취향이 규범화된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교양(Bildung)의 완성을 지향하는 이념적인 것이 된다. 18세기 후반 독일의 위대한 예술과 철학은 인습화된 규범과 형식을 파괴하기 위한 전략적 계기로서의 숭고의 이념과 추구의 방향을 가리키는 지향적 목표로서의 미의 이념 사이의 긴장된 변증법이 낳은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긴장된 정신적 노력은 칸트의 철학 그리고 괴테와 쉴러의 문학에서 철학적 인식과 예술적 창조의 정점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지향적 목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이들보다 초조하고 '우울(melancholisch)'하기는 하지만 낭만주의자들도 자신들의 시대가 처한 이러한 문화적 상황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낭만적 아이러니(romantische Ironie)'라는 전략과 '점진적 보편문학(progressive Universalpoesie)'이라는 이념은 그 구체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들이 부딪친 한계는 이 긴장된 노력을 끝까지 견뎌내기에는 초기산업사회라고 하는 낯선 현실 하에서 미래가 너무 불투명했다는 것이었다.
18세기 계몽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헤겔 역시 그러한 문화사적 긴장상태를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긴장이 요구하는 화해를 관념적으로 해결해냈다 - 단지 관념적으로만. 그러나 이념과 현실의 일치를 관념적으로 상정하여 현실의 모순을 은폐한 이른바 '강요된 화해(erpresste Versohnung)'는 과도한 긴장보다도 더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미적 향유와 도덕적 실천이라고 하는 인간 실존의 구체적 계기들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추상적 이념의 지배하에 '도구적 이성(instrumentale Vernunft)'이 이제 세계를 장악한다. 헤겔의 미학은 이러한 퇴행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즉, 그는 예술적 감성의 다양한 계기들을 미 일원론의 체계에 종속시키고 이를 다시 이성이념에 환원시킴으로써 감성의 고유한 권리와 예술의 자유를 박탈한다. 이에 따라 18세기 예술의 전략적 계기인 숭고의 이념 역시도 그 역할을 상실하고 만다. 칸트의 미학에서 미와 동등한 대우를 받았던 숭고의 이념은 이제 헤겔의 방대한 철학체계에서 극히 미미한 부분만을 할애 받는다. 현실과 이념의 일치를 전제로 하는 철학에서 현실과 이념의 불일치를 제시하는 미학적 현상이 홀대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이성 그 자체를 파악하는 철학의 왕국에서 그 하위의 현상형식인 예술이나, 지양되어야 할 계기인 숭고의 이념이 설자리는 없으며 '예술의 종언'은 그 필연적 귀결일 수밖에 없다. 결국 현대미학에서 벨쉬가 미학의 원래 어원인 'aisthesis'를 강조하여 'Aisthetik'이라는 용어를 제안하고
) Vgl. Wolfgang Welsch/Christine Pries(Hg.): sthetik im Widerstreit. Interventionen zum Werk von Jean-Fran ois Lyotard, Weinheim 1991, S. 9.
리오타르가 숭고의 미학을 다시 주장하고 있는 것은 18세기의 계몽이 누렸던 감성의 고유한 권리와 예술의 자유를 복권시키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계몽의 위대한 상속자인 헤겔이 계몽의 참된 정신을 망각하게 하는 장벽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헤겔의 관념론이, 계몽이 벗어나려고 하였던 신화와 신학을 되불러 들였던 데 있다. 포스트모던의 기도에서 의미 있는 부분은 그러한 신화화된 모던의 장벽을 넘어 '탈신화화(Entmythologisierung)'의 모던, 즉 계몽의 본래적 정신으로 되돌아가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모던은 18세기 계몽의 적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II. 맺는 말
쉴러가 추구한 '인류의 감성적 교육(asthetische Erziehung des Menschen)'은 빙켈만 이래 독일 계몽정신의 일관된 노력을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성적 지식의 무한한 확대가 아니라 감성의 계몽을 통한 도덕적 성숙만이 인류에게 참된 의미에서의 복리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 18세기 후반의 계몽주의가 도달한 깨달음이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의 인류는 여전히 계몽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레싱의 관용의 정신,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도덕적 실천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신이 신의 참된 아들임을 입증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오성적 지식의 확대가 가져온 가공할 무기에 짓밟히고 있는 것을 우리는 오늘날에도 목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계몽은 과거의 역사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와의 부단한 대화를 통해 다가가야 할 미래의 역사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독일,   문학,   감성론,   숭고,   예술이론,   18세기,   감성,   계몽

추천자료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5.04.28
  • 저작시기2005.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485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