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문화] 개고기 식용과 문화상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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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음식 문화] 개고기 식용과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II. 본론
1. 개고기 식용의 역사
1)삼국시대
2)조선시대와 왜정시대
3)서양의 개고기 식용 역사
2. 오늘날 개고기의 이용현황
1)개고기 요리
2)개고기 가공품 및 화장품
3)개고기의 영양가
3. 개고기 식용에 대한 서구 사회의 반응
4. 개고기 비난의 근본이유
1)경제 논리의 반영
2)서양문화의 공격성
3)서양 문화의 우월주의및 편파성
5.문화상대주의적 입장
1)서구문화의 환상
2)보편적 가치의 인정
3)문화상대주의에 대한 개념 재정립

III. 결론
1.보신탕문화와 문화적상대주의
2.보신탕문화와 윤리적상대주의
3.보신탕문화와 윤리적보편주의
4.보신탕문화와 동물해방론 및 동물권리론
5.보신탕문화의 생명 윤리적 접근

본문내용

지 않다고 항변한다. 물론 부분적으로 옳은 말이다. 실제로 낭만적 동물애호가들은 이런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해방론과 동물권리론에 의거한 ALF 및 PETA와 같은 단체 회원들은 애완견이나 식육견의 구분 없이 보신탕 문화 자체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들은 동물을 식용으로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부도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느 쪽인가? 생태주의자인 필자는 동물 생명 존중에 대해 다분히 우호적이다. 그러나 그 견해를 전적으로 모두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동물해방론이나 동물권리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첫째, 동물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인간의 힘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사슴과 같은 연약한 동물이 맹수류에 의해 잡아먹히지 않도록 따로 격리시켜 보호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힘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생태계까지 훼손해가면서 동물에게 좋은 초지로 만들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것은 생태계 보전에 저해가 되는 행위다.
둘째, 생태주의자는 멸종에 처한 동물에 대해서는 여느 동물(예, 집 쥐)과 달리 특별한 도덕적 존중과 그에 따른 정책적 배려를 하고자 하는데, 이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셋째, 전통적으로 인간의 문화 가운데 상당수는 생태계 여건에 따라서 채식만으로 생존이 어려운 경우(예, 에스키모 또는 부시맨 부족 등)가 적지 않은데, 이런 문화 속의 인간에게 본의 아니게 기아로 떠밀 가능성이 있다. 바로 이런 몇 가지 문제 때문에 동물해방론과 동물권리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보신탕 문화를 그대로 존속시켜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비록 자연 보전을 위한 생태주의가 동물해방론이나 동물권리론과 그대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액면 그대로 동물존중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도, 생태주의는 생명 존중론이기 때문에 양자간에는 부분 중첩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개고기 문화는 원칙적으로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 비추어 다른 건강한 식생활 문화로 전환되거나 점차 퇴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첫째 생태주의는 인간의 문명이 자연의 생명부양 능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지속 가능할 것을 요구하며 또한 인간의 생기적 필요(vital needs)에 부응하는 것 이상으로 식량을 취하지 않고자 한다. 자연에 생명 에너지가 원활히 순환토록 노력하는데, 개고기 문화가 고착화되거나 확산되어 또 하나의 대량 가축 사육으로 진행되는 것은 그런 생명 에너지 순환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고대 지구촌 일각 및 한반도에서 부분적으로 행해졌던 고려장 문화는 절대적 식량 부족의 상황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자 생명의 대를 잇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취해진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문화라는 이름 아래 여건이 달리진 지금에도 자행된다면, 마땅히 비난받을 짓임이 분명하다. 한국의 보신탕 문화는 이것과 많이 다른 점이 있지만, 불가피하게 진행된 점은 마찬가지다. 어려웠던 시절 상당수 한국의 농민은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농사일을 해야 하는데, 쌀은 물론 보리마저 동이 난 상태에서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뙤약볕 아래에서 피를 뽑는 등 에너지가 많이 요구되는 논밭 일을 해야하는 시기였다. 이때 불가피하게 집에서 정들게 기르던 황구를 미안한 마음으로 보신탕으로 잡아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건이 달라졌다. 적어도 온갖 먹을거리가 풍부하게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미안한 마음으로 잡아먹던 보신탕 문화를 점차 축소하여 사라지게 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가 아니겠는가? 이제는 일체의 비난이 전개되지 않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작은 도덕적 생각이라도 실행에 옮길 때라고 본다.
둘째, 오늘날의 생명공학이 동물은 물론 식물까지 포함해서 유전자 조작을 함부로 자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광우병 파동이 인류에게 경고하고 있듯이 먼 후일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을 안겨줄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지배적 자세와 접근에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거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생명 일반에 대한 존중심이 요구되고, 그런 선상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해야 할 때라고 여겨진다. 특히 개는 동물 가운데서도 인간과 정신적 및 정서적 교류를 행하는 존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면전에서는 동료 인간에게 우호적인 체 하면서, 뒤로 돌아서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언제든 배신하겠다는 인간의 자세는 부도덕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누구나 일부 동물과, 대표적으로 개와 교류를 하게 되면, 개의 충직한 면모를 유감없이 확인하게 된다. 서양에서 간혹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중국에서도 자신의 유산을 개에게 남기고 죽은 사람이 있어 잠시 화제가 되고 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은퇴를 한 후 적적한 여생의 동반자로서 죽는 날까지 함께 해왔던 개에게 성의와 정을 표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다운 정리의 발로다.
애완견 여부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충직한 개를, 충분한 먹거리가 있는 상황에서 오직 자신의 정력 증진을 위해서 뒤돌아서서 잡아먹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양식을 갉아먹는 형태가 될 것이다.
종합하자면,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비판하는 서양의 일부 논조는 음식 문화에 대한 간섭으로 비춰지는 한 빗나간 것이고, 그런 뜻에서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측면이 분명히 있다. 따라서 향후 서양인과 서양 언론은 이 점에 유념하면서 한국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서양의 일부 동물단체 회원의 문제 제기 취지는 생명적 관점에서 한국의 보신탕 문화에 우려를 표명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이 경우, 20세기 중반 이후 불어닥친 환경 재난과 20세기 말의 생명 조작으로 인해 지구촌 생명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서 그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하는 것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실천적 노력의 일환으로 인간과 정을 주고 받는 충직한 개를 보신용으로 잡아먹는 풍토부터 서서히 자발적으로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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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6.09
  • 저작시기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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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0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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