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관점에서 바라본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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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1. 서문 2
2. 남북전쟁 이전까지의 미국의 역사 2
3. 남북전쟁 최대의 피해자인 흑인 노예의 불행한 역사 3
4. 링컨의 생애 3
5. 남북전쟁과 링컨 4
1) 남북전쟁
2) 남북전쟁의 원인
3) 남북전쟁의 경과
4) 남북전쟁의 의의
5) 남북전쟁에서 링컨이 노예해방을 억지로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6. 링컨의 노예해방에 대한 엇갈린 시각 8
1) 링컨이 노예해방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보는 입장
2) 링컨을 노예폐지론자로 보는 입장
7. 링컨은 노예제 폐지론자였나? 8
8. 맺음말 9
참고문헌 11

본문내용

하여 7개 주가 연방을 탈퇴하여 1861년2월 남부 연합을 결성했다. 링컨이 `나는 남부의 노예제도를 간섭할 의도는 없다. 합중국 정부는 여러분을 공격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무력 충돌은 있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러한 애매한 태도는 벌써 효력을 잃은 지 오래였다. 결국 1861년 4월 12일 섬터요새에 대한 남부의 공격으로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몇 개 주가 더 가담하여 남부 연합은 11개 주가 되었다. 이 전쟁은 4년간 계속되었는데 초기에는 남군이 우세했다. 하지만 북부는 경제력과 인구에서 우세했고 노예제 반대라는 명분에서도 유리했다. 전쟁이 시작되었어도 노예 문제에 대한 링컨의 태도는 여전히 모호한 것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군들이 점령 지역에서 노예제를 즉각 폐지하자고 건의했을 때에도 그는 반대했다. 그러다가 1862년 7월이 되어서야 노예 해방령을 선포했다. 그것은 노예제 폐지라는 명분의 실행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전쟁의 효과적인 수행이라는 측면이 컸다. 즉 남부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뉴올리언즈와 같이 북군이 미리 점령하고 있던 지역의 노예나 남부 경계주의 노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또 반란을 일으킨 주라 할지라도 90일 안에 다시 연방에 돌아오면 노예제의 존속은 그대로 인정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링컨의 온건하고 보수적인 태도에 대해 의회의 공화당 급진파와 흑인들은 불만을 가졌다. 1865년 4월 남부 연합의 수도 리치먼드가 함락됨으로써 4년에 걸친 전쟁은 끝났다. 승리를 거둔 링컨은 남부를 관대하게 대했다. 그의 목적은 연방의 단결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링컨은 개인적으로 비록 노예들의 처지에 대해 동정적이었지만 철저하게 연방의 존립을 위해 행동했고 이러한 그의 행동은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북부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었다.
8. 맺음말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에 어둡다. 또한 정작 기억해야 할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잊어버려도 좋은 것은 열심히 기억한다. 그 기억들은 상당 부분 신화적인 것들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객관적 사실들은 퇴색해 버리고 근거 없는 신화만 살아남는다. 미국식의 신화는 세계를 인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정통의 부재와 침략과 정복의 역사를 은폐하기 위한 신화이며, 세대를 거듭할수록 그 색채는 더욱 짙어졌다. 가령 이런 일들이 그렇다. 나라를 세우고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전통을 만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그러나 민주주의도 평등도 믿지 않았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다만 정치적인 이득을 가져다주는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예제도 폐지는 정말 노예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남북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고육지책에 불과했다. 노예제도에 관한 한 소신이 없었던 링컨은 전쟁이 북군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노예해방령을 선포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유의 종은 미국 독립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것은 흑인들의 자유를 위한 종이었다. 이 외에도 날조된 신화는 숱하다. 그 속에서 진실은 왜곡되고 은폐되어 미국의 대통령들과 기업가들, 탐험가와 발명가들은 죄다 슈퍼맨이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할리우드의 역사는 청교도인 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착륙한 16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하다. 그러나 정말 놀랄 만한 사실은 미국사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무지 또한 미국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과거 군사정권의 친미적인 성향 때문에 그러한 무지가 일반화된 지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변명이 통할 때가 있었다. 특히,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최초의 유럽인이라는 사실을 굳이 의심하려 하지 않거나, 콜럼버스의 달걀을 들먹이며 그를 대단한 위인으로 인정한다. 미국의 초기 대통령들의 인간성에 대해선 미국인만큼 믿으려 들며, 미국의 독립을 혁명이라고 하는 데 있어 별로 주저함이 없다. 이렇듯 대부분의 일반 대중들은 미국이 날조·유포한 역사적 사실들의 허구성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제 그러한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맹신하던 시기는 지났다.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함께 미국이라는 나라를 정확히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승리자들 편에서 기술된 서양사의 허구성이 낱낱이 밝혀졌듯이, 자신들의 치부와 허점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미국 역사의 가면과 거품 또한 가차 없이 벗겨져야 할 것이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밀항을 했던 수많은 이민자들 중 많은 이들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허상 뒤에 가려진 우월주의와 배타주의에 짓눌린 나머지 슬픔과 분노를 안고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노예제도는 폐지되었으나 흑인과 소수민족, 약소국민 들은 인종차별주의에 의해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자칭 경찰국가, 타칭 불량국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미국은 무소불위의 총칼을 휘두르며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한다. 그것이 그들 말대로 정말 정의로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거짓말도 정당한 명분인 것처럼 둔갑시킨 채 수많은 주검을 밟고서 군림하는 미국, 그들이 정의로운 보안관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패권주의에 매몰된 역사적 기술에 있다. 침략과 정복의 역사, 그리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영웅 만들기에 더 이상 놀아나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통해 배울 점은 분명히 많다. 하지만, 그에 가려진 진실을 분명히 파악하고 다가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진실을 거부한 채 미국에 의해서 가공되고 왜곡된 거짓에 노예가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이는 나중에 백인들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흑인들의 상처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링컨의 일생, 김동길 지음, 1991년 샘터사
2. 링컨은 이렇게 살았다, 프레드릭 오웬 지음, 박현덕 옮김, 2004년 목화자료사
3. 세계역사를 뒤흔든 인물오류 사전, 조재선 지음, 2003년 지원북클럽
4. 인터넷 사이트 (http://100.naver.com/100.php?id=57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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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6.15
  • 저작시기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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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0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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