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의 삶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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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Ⅱ.나혜석과 일본 신여성과의 교류
Ⅱ.1.미술과 문학
Ⅱ.2.후기인상파, 그리고 야수파
Ⅱ.3.『靑탑』과 천재의 마력
Ⅱ.4.내면확대와 주제

Ⅲ.나혜석의 삶
Ⅲ.1.素月 崔承九와 연애시절
Ⅲ.2.서양화가의 길
Ⅲ.3.崔麟과의 연애사건
Ⅲ.4.선각자의 꿈

Ⅳ.나혜석의 문학
Ⅳ.1.시
Ⅳ.2.소설
Ⅳ.3.희곡
Ⅳ.4.수필

Ⅴ.결론

본문내용

을 품은 자는 누구근지 뎨일 갓갑고 쉬운 자긔로부터 힘자라는 대로 개량하는 것이 뎨일 상책이 아닐가 함니다16).
고칠 데가 있으면 뜯어버리자는 아주 단순한 이 말이 왜 어려운 것이었을까. 나혜석은 몸으로 부딪치며 정신적 생활을 해 나갈 때 해결할 수 있을 것임을 강조했던 것이다. 어느 수필을 읽어 봐도 조선의 힘이 묻어난다.
Ⅴ.결론
나혜석의 아버지 나기성을 볼 것같으면 개화적 이었는데 1909-1912년까지 시흥ㆍ용인 군수를 지냈다. 혜석은 개화기적인데서 더 나아가 매우 진취적 여성이었다. 그녀의 연애사를 보아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면서 자유연애를 추구하였고, 조선의 여인들이 일방적으로 강요받는 생활을 보면서 야학(만주에 살 때)을 통해 이를 깨우치게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자유주의자라는 인상을 지워버릴 수 없으며, 자란 환경이 개화적인데다가 일본에 가서 자유주의자인 최승구를 만나게 되어 그의 뜻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한 그가 미술만 배운 것이 아니라 미술 속에서 문학을 터득해 나갔다.
그의 문학의 뿌리는 미술에 큰 도움을 주었다. 여성해방의 선각자적 입장에서 미술과 문학을 볼 것 같으면 그림은 자유투지가 강한 톤을 사용하였으며 문학작품은 '바로서야 한다'는 투지를 담고 있었다. 그럼으로 그림과 문학을 한 덩어리가 된 총체적으로 바로 볼 수 있어야 하겠다.
나혜석은 1930년 5월 三千里 기자 설문응답을 하였을 때 한 가지에만 답을 했는데,기자의 두 번째 질문이었던 '선생은 실행자/학자가 되겠습니까'라는 것에 대해 '장차 좋은 時가 있으면 여성운동에 나서렵니다'라는 답을 하고 있다. 이 답이 지니고 있는 '여성운동'은 공상으로 해 나가서는 안된다고 다짐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사회와 나혜석은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혜석은 최초의 여성서양화가,그리고 각 장르를 합친 문인 또는 민족예술자라는 칭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모든 문학작품에는 어떻게 하면 조선 여성이 바로 서고 자립심을 기를 것인가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상황이 다른 일본과 조선을 비교할 때 여성운동의 한계는 뻔한 것이다. 홀몸으로 그림과 문학을 하면서, 그 문학 속에 집어넣은 정신은 그림보다 문학이 한층 더 빛난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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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경 편집교열, 나혜석 전집, 태학사, 2000.
李相鉉 편저, 달뜨고 별지면 울고 싶어라, 도서출판 국문, 1981.
鄭乙炳, 火花畵, 제5문화사, 1978.
韓雲史, 나의길을 가련다 羅蕙錫, 명서원, 1976.
鈴木裕子, フェミニズムと朝鮮, 明石書店, 1994.
池田蕙美子, 米田佐代子 編, 『청탑』を學ぶ人のために, 世界思想社, 1999.
金允植, "女性과 文學," 아세아여성연구 제9집, 숙명여대 아세아여성연구소, 1968.
김진송, "최초의 여류서양화가 나혜석, 자유주의의 파탄," 역사비평 여름호, 1992.
노영희, "일본 신여성들과 비교해본 나혜석과 신여성과 그 한계," 일어일문학연구 제32집, 일어일문학회, 1998.
愼達子, "1920年代 女流詩 硏究-金明淳, 金元周, 羅蕙錫을 中心으로," 淑明女子大學校 大學院 碩士學位論文, 1980.
윤현배, "비련의 화폭," 서정주 편, 바람도 별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 풀빛, 1979.
尹惠源, "韓·日 開化期 女性의 比較硏究," 아세아여성연구 제18집, 숙명여대아세아 여성연구소, 1984.
李龜烈, "비극으로 생애마친 先驅者," 세대, 1979.5.
최지원, "나혜석 문학연구-「경희」를 중심으로" 연세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1997.
각 주
1) 이 논문은 2001년 7월 14일 동경대학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양어대학에서 주최한 제2회 일한학술교류심포지움에서 발표한 것을 논문으로 고친 것임.
2) 『나혜석 전집』(이상경 편집교열, 태학사, 2000)에는 1896년 4월 18일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세계문예대사전 上』(대표편저 文德守, 成文閣, 1975)에는 1892(96 ?)년으로 되어 있다. 사망연도도 이상경 편집의 책에는 1948년으로 되어 있지만, 뒤의 책에는 1946년으로 되어 있다. 또한 『라혜석 날아가 靑烏』(金鍾旭 編, 信興出版社, 1981.8)에는 藝術論文集Ⅰ(1958. 9)호에서 가져다 실은 「美의 十字架를 진 女人」에서 나혜석이 태어난 곳이 남수리며 1892년생라고 쓰고 있다.)) 노영희(「일본 신여성과 비교해본 나혜석 의 신여성관과 그 한계」)도 사망한 해를 1946년으로 보고있다.
3) 金鍾旭 編, 『나혜석 날아간 靑烏』(신흥출판사,1981) p.25부터 p.47까지가 李慶成의 글인데 p.25에 실려 있다.
4) 노명희, "일본 신여성들과 비교해 본 나혜석의 신여성관과 그 한계,"(일어일문학연구 제32집 1998), p. 354.
5) Loc.cit.
6) 未田佐代子 池田惠美子 編, 『靑탑』を學ぶ人のたぬに, 世界思想社, 1999, p.104.
文學と美術が熱く交わっに時代に『靑탑』は生まねた. 一九一○年 十一月* ンドンで開かねた展覽會
"Manet and the Post-lmpressionists"衝擊は海を渡り, 遠く日本で文學と美術の關係を變ぇこしまった.
7) 『靑탑』の學ぶ人のために에서(山本博子), p. 143.
8) 『靑탑』を學ふ人のたのに, p. 13, 『靑탑』とえの時代(米田佐代子).
9) 유안진, "시가 있는 순수 모국어 여행,"(현대시학, 2001. 8), p. 184.
10) 발매 금지가 된 것은 전통관습의 내용이 많았다.
11) 서정자 엮음, 정월 라혜석 전집(국학자료원, 2001), p. 248. (新東亞 1933.4.)
12) 서정자 엮음, 정월 라혜석 전집(국학자료원, 2001), p.434 (『삼천리』 「나를 잇지 않는 幸福」 1931. 11.)
13) Ibid., pp. 201-202.
14) Ibid., pp. 173-174.
15) Ibid., p. 235(조선일보, 1926.1.3)
16) Ibid., p.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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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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