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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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추상표현주의
(1)색면추상의 경향
(2)액션 페인팅적 경향
(3)서체추상적 경향


2. 앵포르멜
(1)앵포르멜의 선구자들
(2)앵포르멜의 발전과 응용

본문내용

방법론
격정적이며 주관적인 뜨거운 추상의 계열에 가까운 방법론을 추구하며, 흙벽과 같이 두꺼운 마티 에르를 구사하여 생생한 포름에 정착하고자 했으며, 구상과 비구상을 모두 부정하여 새로운 회화 임을 입증하려 하였다.
물질성을 극도로 부각시키려 했다. 물질의 에너지는 불안과 공포에 떠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표정 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전통적 유채의 방법을 부정하고 콜라주 기법을 사용하였다.
색채의 의미는 그만큼 반감되었으며, 물질성에 종속된 것으로서 형태나 물질이 주는 표면의 느낌 에 더욱 주안점을 두고 있다.
유머스런 인간상을 각인한 형태를 '유기적 전체로서의 통일체'로 파악하였다.
앵포르멜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대응하여 유럽이 내세우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장 포트리에, 볼스, 장 뒤비페와 같은 작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이러한 방식들은 정신병 환자들의 그림과 같이 암울하고 냉소적인 일면을 담고 있다.
액션 페인팅과의 명확한 차이점이 있다면 액션 페인팅은 표현의 제스처를 강조하지만 앵포르멜은 마티에르를 매우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드물지만 형상이 등장하고 추상의 유형에 있어서 색채보다는 물질성이 더욱 강조된다는 점이다.
액션페인팅과 앵포르멜의 유사점은 둘 다 표현의 제스처를 비롯하여 초현실주의의 자동미술법을 차용하는 것과 형식을 거부하는 타시즘으로 동시에 불린다는 점이다. 또한 둘다 표현주의적인 전통이 있고,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기하학적인 추상에 대응하는 이면적 반기를 들고 있는 것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6.25전쟁 이후에 반국전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작가들에 의해서 앵포르멜운동이 있었으나 매우 단명하였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순수한 기하학적인 추상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고, 또 일제 시대를 거쳐서 선전 중심으로 이어졌던 회화의 후진성 때문에 그러한 형이상학적인 흐름을 역행하는 반동으로서 생겨난 경향의 예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 앵포르멜의 선구자들
앵포르멜의 작가들 가운데에는 장 포트리에, 장 뒤비페, 볼스, 베르나르 뷔페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전후 유럽의 화단을 뜨겁게 달구었던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기하학적인 추상운동이 유럽의 전위적인 예술운동으로 자리잡고 있을 당시에, 더욱 인간적이며 실존주의적인 가치관을 내세우며 자신의 화풍을 일구어내었다. 그들은 이상주의로 치우친 추상화 과정에 대한 대안으로 삶에 뿌리를 둔 가치관을 통해서 이룩된 꺼칠꺼칠한 화면의 창출에 색다른 회화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가치관은 회화의 가능태를 대단히 다양하게 이끌어낼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놓여있지만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주변 환경을 색다른 시각으로 관찰하여 그것을 회화의 소재로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가령 콘크리트 벽면이라든가 흙벽, 포대, 덩어리진 물질의 표면 등에서 관찰될 수 있는 일상적인 보통의 이미지를 연구하였다. 그것은 새로운 추상의 의미를 진작시키는 내용에 충실한 것이었으며, 회화에서의 표면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했던 화법을 연구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2) 앵포르멜의 발전과 응용
1950년대 이후에 앵포르멜 운동은 세계적인 운동이 된다. 이 운동은 비단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을 통해서 광범위하게 퍼지게 되었고 많은 유형을 창출하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에밀 슈마허가 앵포르멜을 구측하는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타피에스풍의 격조 있는 새로운 유형의 'Haute couture'표면을 구축하는 실험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볼스와 같은 칼리그래피적 방식도 차용하여 독특한 화면을 일구어낸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우칼레곤(Ukalegon), 1959>으로서 두터운 화면이 구축된 이후에 칼리그래피적인 방식이 채택되어 사용되었다. 그래서 화면은 풍부한 질감과 에너지를 지니게 된다.
1953년에 슈마허는 프랑크푸르크의 화가들인 콰드리가와 교류를 갖게 되는데, 그들은 칼 오토 괴츠, 베르나르 슐츠, 하인즈 크레우츠, 오토 그레이tm 등이다 그들은 1952년에 함께 전시회를 갖게 되ㅇ는데, 독일에서의 타시즘의 선두주자들이기도 하다. 또한, 그들은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회화에 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파리출신의 화가들인 볼스, 하르퉁, 리오펠레 등의 방식과 코브라 그룹의 방법론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비엔나에도 앵포르멜 미술이 상륙하게 되는데, 훈데르바서의 작품에 등장되는 내용들에서 대단히 끈끈한 뿌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구스타브 클림트의 방식에서 풍부한 패턴을 연구하였고, 세기적 전환의 감각인 에곤 쉴레의 나르시시즘을 조합하는 화법을 연구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작품 M거대한 길. 1955>에서 찾을 수 있으며,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앵포르멜의 방식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정서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훈데르바서는 타시즘 작가들이 구사하는 표면을 가지고 있으며, 금색이나 은색 등을 사용하는 채색방식을 포함하여, 종이나 섬유로 감싸거나, 자동미술법에 의한 다양한 방식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1950년대에 파리를 방문하여 체득한 결과로 인해서, 이국적인 잡종형식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양식적인 특성은, 어떤 일면에서는 전통적인 모더니즘이 구축하였던 명료한 선의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도 볼 수 있으며, 표현주의자들이 정통적인 상징주의의 양식적인 특성에 자극을 받은 것이기도 하였다. 또한, 어떤 측면에서는 자연으로 회귀하는 유기적인 이미지를 창출하였던 과거 지향적인 태도에서 찾을 수도 있는 문제이며, 바우하우스의 미학에서 구축하였던 직선적인 양식적 특성이기도 하다.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의 대두로 인해서 화학의 표현은 지극히 개성적이고 과격하며, 처절함이 강조되는 양식적인 흐름 속에 있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 이후 전쟁에 의해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다시 풍요로움이 자리 잡게 되고, 전 세계는 평화로워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영국의 화가들 사이에는 미국의 풍요로운 사회에 대한 동경심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그들은 대중들도 참여할 수 있으며, 그렇게 어렵지 않은 표현 방식을 사용하여 팝아트를 창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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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0.19
  • 저작시기200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6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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