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의 유래와 성격, 탈놀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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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목 차 ◎

Ⅰ. 탈춤의 유래와 성격
① 탈춤이란?
② 탈춤의 유래와 성격
③ 봉산탈춤의 유래
④ 은율탈춤의 유래
⑤ 강령탈춤의 유래

Ⅱ. 한국의 탈과 탈춤

Ⅲ. 여러 가지 탈놀이의 개요와 내용
① 봉산탈춤
② 은율탈춤
③ 강령탈춤

Ⅳ. 탈춤의 분포와 보존

본문내용

되는 탈은 말뚝이(팔목중 겸용), 사자, 원숭이, 목중, 상좌, 마부, 맏양반, 둘째양반, 셋째양반(재물대감), 도령, 영감(셋째양반 겸용), 노승, 취발이 등이며, 탈의 재료는 종이가 주이고 대나무, 개털(토끼털) 등이 쓰인다.
반주악기는 삼현육각으로 피리, 해금, 대금, 장구, 북으로 이루어졌으며, 장단은 도드리, 타령, 굿거리장단이 사용된다. 춤은 느린 사위로 긴 장삼 소매를 휘두르는 동작을 하는데 장삼춤이라고 부른다.
Ⅳ. 탈춤의 분포와 보존
우리 나라의 탈춤은 거의 전국적으로 놀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침략하기 전만해도 상당한 지역에서 활발하게 놀이되었던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황해도에서는 탈춤 경연대회가 열릴 정도로 대단했다. 특히 민중들이 농촌에서 아마추어 형태로 발전하던 탈춤이 전문 광대패가 관여하면서 상당한 정도의 기능적인 발전을 하게된다. 춤도 정교해지고 악도 풍성해진다. 그렇게 화려하게 발전되던 탈춤은 일본 침략시기를 거치고 해방 이후 무분별한 외래문화와 우리 문화에 대한 천대의식 속에 쓸쓸하게 그 명맥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안동골에서 세계 탈춤 축제라는 것을 화려하게 펼쳐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전 만큼 정감이 가지 않는 것은 질퍽한 민중의 냄새가 없어진 까닭인가?
현재 보존되어 놀이되는 탈놀이는 대략 13종류 정도로 대개 지역별로 구분되는데
황해도 지역의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서울 경기 지역의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경북 안동의 [하회 별신굿 탈놀이]
경상남도 지방의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
부산지방의 [동래야류], [수영야류]
강릉지방의 [강릉 관노놀이]
함경도 북청의 [북청사자놀이]로 분류할 수 있다.
강릉 관노놀이와 북청사자놀이는 극적인 구조나 내용상으로 보아 위에 분류한 다른 종류의 탈춤과는 약간 다르지만 그래도 탈을 쓰고 탈춤의 일반적 특징인 벽사제의(귀신을 쫓고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와 연극적 요소를 담고 있어 같이 분류한다. 위와 같은 분포를 보이는 탈놀이를 다시 지역과 내용상의 특징 등을 가지고 몇가지 다른 방식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놀이 되었던 지역을 중심으로
북부지방의 해서탈춤
중부지방의 산대놀이
남부지방의 오광대와 야류(들놀음)
로 구분 하기도 하고, 내용상의 특징을 가지고
도시형 탈춤
농촌형 탈춤
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 춤사위와 가락에 있어서도 남부지방의 오광대와 들놀음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동작을 꽹과리를 걸판지게 놀려대는 굿거리 가락으로 휘감아댄다. 열대 지방의 춤이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이 동작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조용히 춤을 추는데 그와 비슷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하늘을 가르는 경우도 있다. 결코 여성춤은 아니다. 대단히 거친 남성춤인 것이다. 북으로 가면 기후적인 영향을 받아서 인지 춤도 동작이 커지고 가락도 딱 딱 부러지는 타령 위주로 바뀐다. 한삼을 가지고 하늘을 붕붕 날아야 하는 호흡이 매우 바쁜 춤이 되는 것이다. 더운 남부 지방의 절제되고 부드러운 춤사위와 추운 북부 지방의 호흡이 크고 매우 역동적인 춤, 두 지역의 중간에 위치한 적당하게 움직이고 적당하게 호흡이 바쁜 산대놀이, 탈춤은 자연적 지리적 환경과도 매우 닮아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탈춤의 분포에서 보아 알겠지만 충청도와 전라도는 탈춤이 없다. 왜 그럴까? 전라도는 판소리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고 충청도는 풍물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풍물에는 탈춤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수 있는 잡색놀이라는 것이 있다. 탈을 쓰고 여러가지 의상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풍물패를 쫓아 다닌다. 전라도의 판소리와 충청도의 풍물이 탈춤을 대신했을까? 모를 일이다. 지방마다 설이되고 추석이 되면 걸판진 축제가 펼쳐졌다. 풍물도 치고 춤도 추고 술도 마시면서 대단했을 것이다. 중국 연변지방의 동포들은 지금도 설이 되면 보름을 먹고 즐긴다니 가히 짐작이 간다. 그 축제판에 끼가 충만한 지방은 탈춤 놀이를 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곳은 걸판진 술판이 주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수백년을 끈질기게 공동체 문화가 이어져왔다. 그러다 조선 후기가 되면서 지방 탈춤 문화는 일대 변화를 맞게된다.
18세기 상공업의 발달과 함께 지방의 경제도 활성화되고 장터가 생겨나고 규모도 커졌다. 그 와중에 지방 거대 상인들이나 장터 상인들이 연합하여 전문 예인 유랑 집단-오늘날의 이벤트업체나 프로덕션 쯤으로 이해하면 딱 좋을 것이다. -을 불러들여 장터에서 공연을 갖게 되었고 -오늘날로 치면 백화점 바겐세일 축하공연 쯤이라고나 할까?- 그 전까지 시골 마을에서 매우 원시적이고 초보적이며 벽사제의의 성격이 강했던 지방 탈춤이 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좀더 화려해지고 내용도 다양화되었다. 황해도 같은 경우는 아예 탈춤 경연대회까지 열렸다고 하니 그 열기가 대단했을 것이다. 전문 집단의 화려한 놀이는 사람들을 열광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을 것이고 각 지방의 탈춤이 질적, 양적 측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조선 후기 발전되던 탈춤은 일본 식민치하가 되면서 일본의 한민족 문화말살정책에 의해 그 명맥이 단절되었던 것이다. 탈춤은 달랑 탈춤판만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마을 축제의 많은 부분중에 하나인 것이다. 대동제로서의 성격이 강한 마을 축제는 일본인들에게는 말살시켜야 할 대표적인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동래지신밟기가 이루어지면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그렇게 탈춤은 이 땅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해방이후 일본문화를 대신하여 이제는 미국문화가 이땅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전해오던 민족문화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았다. 70년대 들어 우리 것에 대한 깊은 관심은 탈춤을 되찾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들이 탈춤반을 만들어 민족 문화 보급에 노력했으며 민속학자들도 탈춤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나름대로의 학문적 입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그나마 이정도나 찾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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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01
  • 저작시기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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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23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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