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의 생애와 업적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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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단재 신채호 선생의 가계

2. 단재 신채호 선생의 탄생과 성장과정의 모습

3. 독립운동의 시작과 국내의 독립운동

4. 활발한 독립운동의 길

5. 국외에서의 활동과 순국

6. 단재 신채호 선생의 선택 동기와 배울점

7. 단재 신채호의 연보

본문내용

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기술해야지, 중국사람의 입장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기술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외래사상에 대해서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주관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그러한 눈이 필요하다.
내 자신을 我와 非我의 투쟁에 반영하여 나의 주관을 가지고 나태와 게으름이라는 非我를 이기고 我를 이룩하여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야겠다고 이 문구를 보면서 느꼈다.
이 문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나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하고 자아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문구라서 좋아하게 됐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시대가 변하면서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이념이 많이 변화하셨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고 일관된 내용은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 우리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
무정부주의로 주장하실 때에도 민족과 나라를 잊지 않고 민중을 소중히 생각하시고, 독립된 조국을 늘 생각하셨다.
죽는 그 날까지 민족과 나라를 생각하신 분이기 때문에 추앙을 받아 마땅하신 분이고, 지금에도 잊혀져서는 안 되는 민족의 선각자요 대학자인 것 같다.
일제 강점기시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자기의 안위와 민족의 지식인으로써의 역할에 번뇌하다가 친일파가 되는 사람도 많았고, 민족을 위해 일을 하다가 변절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민족과 나라를 위해 자신의 안위보다는 조국과 민족을 위한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독립된 나라에서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
단재 신채호의 전기를 통해서 단재의 단호하면서 굳은 신념과 민족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크게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시면 반드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셨고 다른 사람이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할 때도 바로바로 직언을 해서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행동들이 자기의 안위를 위협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단재 선생님께서는 이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자기의 옳은 주장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에 기인해서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것도 각별했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할 때도 강인한 성격 그대로 어떠한 일을 추진할 때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일을 행하시고 빠른 행동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애쓰셨다.
단재 선생의 굳은 신념과 나라에 대한 민족에 대한 생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이다.
신채호 선생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굳은 신념과 의지를 받아들이면서 정당하고 올바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협력을 하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상생의 원리를 받아들인 다면 국수주의로 빠지지 않는 긍정적인 신 민족주의가 아닌가 싶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민족을 지탱해온 선각자의 한사람이요, 대학자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자신의 희생으로 주신 것이다.
지금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순국 선열들의 이런 마음과 생각을 계승하고 본받아서 다시는 일본과 같은 외세에 나라를 빼앗기지 않고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지키고 더 나아가 다른 나라를 도와주며 상생하는 것이 순국 선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다.
7. 단재 신채호의 연보
1880년 12월 8일 충남 대덕에서 출생
1887년 고향인 충북 청원군 귀래리로 이사 이후
이 곳에서 수학하고 성장함
1898년 성균관 입교, 독립협회 운동에 참여
1901년「문동학교」에서 애국계몽운동 전개
1905년 성균관 박사됨「황성신문」 논설위원에 위촉됨
1906년「대한매일신보」에 논설진으로 초빙됨
1908년 순 한글잡지 「가뎡잡지」를 편집 발간
1910년 안창호 등과 중국으로 망명
1911년 블라디보스톡에서 「권업신문」의 주필로 활동
1914년 옛 고구려땅 답사 이후 대 고구려주의적인 역사 의식 갖게 됨
1915년 북경에 체류하며 「조선상고사」의 집필
1916년 소설 「꿈하늘」 집필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의원(충북)에 피선됨「신대한」을 창간하고 주필 활동
1920년 박자혜 여사와 북경에서 결혼
1922년 '의열단'의 행동강령인「조선혁명선언」을 기초
1924년 무장독립운동단체 「다물단」의 선언문을 기초
1925년 '무정부주의 동방연맹'에 가입함
1927년 '신간회'의 발기인으로 참여
1928년 소설「용과 용의 대격전 발표 무정부주의 동방연맹 국제위폐사건에 연류되어 체포됨
1930년 대련법정에서 10년형을 선고받음 여순 감옥으로 이송됨
1936년 2월 21일 여순 감옥에서 순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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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16
  • 저작시기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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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3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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