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시조에 나타난 자연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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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산 시조에 나타난 자연관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서론

2.작품형성 배경
-고산의 생애
-고산의 사상적 배경
1)유교사상
2)불교사상
3)도교사상

3.작품분석
-관조로서의 자연
-벗으로서의 자연
-물아일체로서의 자연

4.고산자연관의 특징

5.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대상이었다가 자신의 사상과 꼭 맞는 벗이기도 하였고, 결국에는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나로서, 서로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Ⅴ.결론
시조는 고려말에 완성되어 창작 되어진 이후 현재까지도 불려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 유산으로서, 작가들 중에 대부분은 양반 사대부 계층이다. 시조는 바로 이들의 의식을 표현하는 장르이기에 내용도 그들의 생활과 많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결국 안으로는 마음을 수양하고, 밖으로는 나랏일에 종사하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한 그들의 생활은 상황에 따라 정치 현실과 강호자연을 오갈 수밖에 없었다. 고산의 일생은 출사와 유배와 은둔생활로 이어졌고, 이 세가지 생활패턴은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던 것이다. 특히 고산에게 있어서는 출사의 기간보다 유배와 은둔생활의 기간이 훨씬 길었다. 이러한 생활환경이 자연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했고, 더욱이 <水>, <石>, <松>, <竹>, <月>을 벗삼아 살겠다고 노래하게 했던 것이다.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 등을 지어 자기의 뜻을 나타내보기도 했다. 이러한 고산의 행적을 보면 <윤선도>와 <자연>의 관계는 어느 정도 숙명적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고산 윤선도는 사화와 당쟁으로 인한 어지러움 속에서 유배생활이 끊이지 않아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고, 그 속에서 자연을 노래하였다.
따라서 고산에게 있어 자연의 문제는 그의 사상과 연관지어 볼 때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이에 먼저 고산의 작품형성 배경을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그의 작품에 나타난 자연관을 살펴보았다. 고산은 대대로 내려오는 해남 부호 가문에서 태어나 별 어려움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다. 20세때 <小學>을 처음 대하고 평생의 수신서로 삼았다. 26세에는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31세에 <丙辰疏>를 올리는 바람에 경원에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후 두 차례나 귀양을 가서, 15년 가까운 시간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다. 벼슬은 공조참의까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부용동과 금쇄동에서 자연을 벗하다 85세로 생을 마감하였으며, 시대적으로는 광해군 집정기로 이이첨 일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던 때였다. 대외적으로는 인조반정 후 중국의 명·청 교체기와 맞물려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대내적으로는 인조ㆍ효종 승하후 정치권의 당파싸움이 날로 심해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孤山은 은일과 유배로 연속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많은 문학 작품을 남겼는데, 충실한 유학자로서 忠ㆍ孝 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과 도교, 불교 등 다양한 사상이 작품에 폭 넓게 반영되고 있다. 귀양살이를 하여도 임금을 원망하기는커녕 더욱 그리워하고, 자신의 몸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부모를 먼저 걱정하는 모습이 작품에 잘 표현되고 있다. 비록 유학자이기는 하더라도 불교 사상에 대한 고산의 인식은 그 이해의 폭이 상다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사찰을 직접 방문하고, 그 곳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찾은 것으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또한 도교 사상은 고산이 자연에 은일하여 삶을 살아 온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는데, 고운 최치원을 그리워하며 자신도 신선이 되기를 바라는 작품을 통해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고산에게 있어 자연은 생활 자체로서 눈만 뜨면 대하는 것이었다. 눈 앞에서 펴처지는 자연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아서 그저 바라보며 감상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자연은 그에게 벗이라는 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 이는 충실한 유학자인 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사회적 모습은 자신의 사상과는 맞지 않았고, 자신의 사상을 닮았다고 생각되는 자연물을 벗으로 취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더욱 발전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는데,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내가 되는 物我一體적 경지인 것이다.
요컨대, 고산에게 있어 자연은 한 폭의 풍경화로 그저 바라만 보는 대상이었다가, 자신의 사상과 꼭 맞는 벗이기도 하였고, 결국엔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나인 物我一體적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고산 문학작품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결국 인간과 자연이다. 그 작품적 성격이 아무리 다양하고 복잡하더라도 인간과 자연이라는 범주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인간과 자연은 대립적인 성격으로 파악할 대상은 아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요, 그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孤山이 문학작품에서 자연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고 그처럼 자연에 대해 시를 읊은 사람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고산은 당연 돋보이는 문장을 구사했다. 고산은 自然詩人이라 할 정도로 自然을 제재로 한 작품이 많았고 自然을 生活化하였으며, 자연을 문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또한 다양하였다. 그의 작품 속에는 自然親和思想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런 점에서 윤선도의 작가적 능력과 그의 문학성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국문학사상 그의 위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한시와 더불어 국문시를 근 70여년 간 끊임없이 시작을 하였으니 문학사상 보기드문 훌륭한 작가임은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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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1.17
  • 저작시기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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