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그리스도교 구원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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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불교와 그리스도교 구원관 비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1. 불교의 구원관
1.1 고란 무엇인가?
1.2 고의 인식

2. 그리스도교의 구원관
2.1 구약 성서적 이해
2.2 신약 성서적 이해

3.구원에 이르는 길
3.1 열반
3.2 그리스도교 구원의 실재인 평화와 자유

4. 불교와 그리스도교 구원관 비교
4.1 자력과 타력에 의한 구원의 양면성
4.2 열반과 하느님 나라

결론

본문내용

수 있다. 참조: 구스타프 멘슁, 변선환 역, 불교와 그리스도, 종로서적, 1987, 173.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고, 인간의 구원은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구원이란 신이 역사 속에서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로 인해 타락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해내는 행위이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직 한 번, 그러나 모든 세대에 걸쳐 일어나고, 이 사실에 대한 승인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행위이다. 특히 구원은 인간의 노력에 앞서 하느님의 은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와 그 섭리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역사적으로 성취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희생, 그리고 세상 끝까지 인간의 구원을 돕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구원은 대가 없이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참조: 심원권, 영화에서의 인간 구원 재현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대학원, 2000, 39-40.
이처럼 그리스도교는 불교와는 반대로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즉 타력(他力)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수는 구원을 얻기 위한 기반으로 고행을 강조하지 않았다. 예수는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세상을 떠날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예수는 구원을 얻는 전제 조건으로 오히려 자기 자신의 자아를 향해 있는 이 의지의 방향이 ‘회개(metanoia)’를 통해서 하느님께로 향해져야 한다고 보았다. 구원은 인간 스스로에게 맡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구원의 출발점은 하느님을 떠나 있는 실존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출발하여 그분께로 나아가야 함을 중요시 한다. 참조: 구스타프 멘슁, 같은 책.
4.2 열반(涅槃)과 하느님 나라
열반(涅槃)과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아는 세간적 질서가 아닌 초세간적 질서, 종말적 질서라는 데서 일치한다. 여기서 종말은 시간적 종말보다는 역사의 악순환이 극복되었다는 의미에서의 종말이다. 무지와 탐욕, 경쟁과 다툼, 권력과 억압의 역사가 완전히 사라지고 초세간적 자비와 평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평화가 지배하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더불어서 열반(涅槃)과 하느님 나라는 무아적 자유와 더불어 사랑과 자비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자기중심적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로 지금 여기서 초월적 자유를 누리며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삶인 것이다. 참조: 길희성, 보살예수, 현암사, 2005, 138.
열반(涅槃)이나 하느님 나라 둘 다 초월적이며 초세간적 세계로서, 영적 존재들만이 경험하는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불교와 그리스도교 모두, 이 초월적 세계는 우리가 현재 지닌 육체를 벗어난 사후(死後)에야 더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불교의 궁극적 구원인 사후 열반(涅槃)은 그리스도교의 사후 구원인 부활을 통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과 대비된다. 열반(涅槃)은 ‘나(我)’라는 것이 없는 무아적 구원임에 반하여, 그리스도교에서 믿는 사후 하느님 나라의 영생(永生)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주어지는 영원한 평화이며, 하느님과 하나가 됨으로써 오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이지만 ‘나(我)’라는 개인 혹은 인격이 어떤 형태로든 존속하는 구원이다. 이점과 달리 불교의 열반(涅槃)의 해탈(解脫)은 인격적 구원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열반(涅槃)에서는 더 이상 나와 너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조: 같은 책, 141-146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열반(涅槃)과 하느님 나라는 사후에야 비로소 주어지는 세계이지만, 그 이전에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삶의 질적 전환을 통해 이루어지는 영적 세계이며 영생의 세계라는 점이다. 참조: 같은 책, 139.
결국 일체(一切)의 번뇌가 사라진 열반(涅槃)이라는 실재와 하느님 나라라는 초월적 세계를 통해서 불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넘어 영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지금 여기서 이미 그것을 맛볼 수 있고, 사후에는 더 완전무결하게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참조: 같은 책 152.
결론
지금까지 필자는 불교의 구원관과 그리스도의 구원관을 살펴보았다. 구원이란 종교의 실천적인 모습을 말한다. 종교는 이론을 넘어서야 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그 종교적인 이상을 실현하려 한다. 신(神) 중심의 대부분의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구원될 수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인간의 모든 괴로움과 구속은 무명(無明), 즉 무지(無知)에서 생긴다고 보았고, 깨달음에 의해서만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탈(解脫)하는 것으로 보았다. 참조: 최종석, 같은 글, 55-56.
불교에서는 전통적 구원이란 개념을 열반(涅槃)이란 개념으로 사용한다. 불교에서의 구원의 의미를 불교의 종교적 이상의 실현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바로 석가모니가 인격을 완성하여 ‘깨달은 자’, 즉 ‘붓다(Buddha)’가 된 것이다. 즉 붓다는 인간 스스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은 보여준 것이며, 그가 깨달은 내용은 초기불교의 근본진리인 사성제(四聖諦)에 집약되어 있다.
불교의 목표인 인격의 완성이라는 것도 사실은 나와 이웃이 바로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고 무한한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자비는 불교의 인간관계에서 기본이 되는 윤리이며, 연기설(緣起說)의 깨달음의 실천적 모습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곧 나 자신을 완성하는 길이고, 깨달음의 길이며, 그것이 곧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노력하는 것이 불교인의 삶인 것이다. 앞서 살펴본 팔정도(八正道)는 이를 위한 실천의 길이고, 바로 구원은 그 실천 속에 있는 것이다. 참조: 같은 글, 56.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불교의 구원관과 그리스도교의 구원관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계명은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다. ‘나’가 아닌 ‘너’를 위한 삶, 이웃을 위해 사랑과 자비를 실천함으로서 구원을 맛볼 수 있다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불자이건 그리스도인이건 모두가 함께 실천해야 하는 덕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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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2페이지
  • 등록일2006.11.21
  • 저작시기2006.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73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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