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위와 만주국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들어가기

2. 왕정위의 약력.

3. 왕정위집단의 형성
(1) 반장운동 속의 개조파.
(2) 대일 주화파: 저조구락부
(3) 반공파: 예문연구회

4. 왕정위의 친일 괴뢰정권 수립.
(1)왕정위와 일본과의 접촉.
(2) 왕정위의 화평론과 일본의 태도.3. 왕정위집단의 형성
(1) 반장운동 속의 개조파.

5. 나가기

본문내용

별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매기관의 인물 가운데 한명인 이누카이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에 대해서 “만약 이 안 그대로 실행된다면 사실상 화북은 앞으로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고 해남도는 일본 해군의 소유로 귀속될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열악한 괴뢰정권이 또 있는가?”라고 말하였다. 이 외에도 외무부의 시미즈 토조, 야노 세이키 등도 군부의 강경 외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매기관의 인물들을의 입장을 보았을 때 당시 일본의 대중국 정책의 입안 집단과 실행 집단인 매기관의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하였다. 즉 대중국 정책에서 강경, 온건 성향의 두 집단이 각기 그 정책의 입안과 실행으로 그 역할을 분담하는 형태를 우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 속에서 왜 왕정위 집단이 화평론의 실현에 강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왕정위집단은 중국 정책에서 온건한 입장을 취했던 매기관 성원들을 통해 일본의 입장을 접하면서 일본의 강경론 집단에 대해 상대적으로 경계감을 강하게 가지지 않고 중국의 주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5. 나가기
왕정위집단의 친일정권 수립 과정에 대해서 치중하여 정리를 하다보니 왕정위 개인에 대한 내용은 소략하게 다룬 감이 없잖아 보인다. 하지만 수립 과정 중간 중간에 왕정위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왕정위의 행위들을 그려보는데는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 여겨진다.
왕정위집단의 친일정권 수립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한간’으로 평가받고 있는 왕정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친일 협력자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의 행적들을 살펴보면서 그가 일본과의 협력 속에서 나름대로 독자적인 중국의 주권 확보에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간략하게 “일본과 화평교섭을 개시하여 남경에 친일적인 괴뢰정부를 세웠다.”로 끝나는 개설서의 설명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상황들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문뜩 레포트를 쓰면서 누군가를 평가하고 어떤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숨어있는 내용들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문헌
박상수,<중일전쟁 전후 대일 협력자-'왕정위집단‘의 형성(1928~1938)>,역사학연구회, 2007
김승옥,<왕정위의 화평론과 동아시아론>,한국중국근현대사학회, 2006.
배경한,<중일전쟁 시기의 왕정위정권과 신민회>,동양사학회, 2005.

키워드

  • 가격1,3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8.01.04
  • 저작시기2007.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575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