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와 여성 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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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여성주의(feminism)의 개념

- 여성주의 문학의 양상

- 여성주의 시의 시대별 흐름
(관련 시 전문 및 해석, 감상)

토론 자료

본문내용

고 볼 수 있다.
생명의 탄생과 그것에서 빚어지는 문제들, 노동의 과정에서 느껴지는 여성의 불평등성에 이어 여성주의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시를 쓴 부분은 대중매체나 길과 같은 남성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것들을 통해서 시를 쓴 것이다.
<물 속에 잠긴 TV>라는 시를 보면,
<물 속에 잠긴 TV>
TV는 마치 욕조 같아
나는 TV 욕조 속에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는 그녀를 들여다보네
손가락이 쪼글쪼글해지고
거울은 뿌옇게 흐려지고
머릿속까지 밀려들어오는 미지근한 물
마치 더운물을 보충할 때처럼 돌려지는 채널
암흑 방에서의 TV 시청
점점 더 깊은 땅속으로 끌려들어가서는
묻혀서도 숨쉬는 허파처럼
끝나지 않는 TV 시청
그러나 자정 뉴스가 끝나면 그 뉴스에 이어서
그 뉴스를 견뎌내는 건 바로 그녀
오늘밤 자정 뉴스는 오십 명의 넥타이 맨 남자들을 보여주지만
여자들이 맡은 배역은 불에 타 죽은 아이를 껴안고 몸부림치며 우는 역할뿐
나는 이어서 그녀라는 이름의 TV를 들여다보네
푸른 그늘이 용솟음치고, 침묵으로 얼어붙는 수초들
그 사이로 통곡하는 물고기들이 장의사 행렬처럼 떠가네
TV가 끝난 후 이 뇌파 어항의 불빛은 너무 춥고
곧 이어서 흘러나오는 죽은 아가즐의 울음소리
그녀는 절대로 TV 눈꺼풀을 감지 않네
잠을 자는 것도 그녀에겐 일종의 말하기 방식
그녀는 잠속에서도 우는 배역은 싫어
잉크도 종이도 없는 곳에서 흘러나오는
TV 욕조 속 미지근한 물 속을
무거운 고개만 이리저리 흔드네
TV라는 대중매체는 과학이 내놓은 산물 중 그 중요성을 더한다. 책과 더불어 문맹의 퇴치에도 기여했고, 컴퓨터 이전에 신문과 함께 정보의 공유에 앞장을 섰었다. 하지만, 이런 TV에서 나오는 것도 결국은 여성과 남성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나누어서 여성을 하급의 존재로서 부각하는 장면만이 시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지금은 덜하지만, 여자하면 응당 회사에서는 비서로 나오지 사장으로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뿐만 아니라 병들거나 죽는 역은 거의가 여성이었으며 남성이 죽는 이유는 사업상의 과로 혹은 사고이지만, 여성의 경우는 몸이 약해져서 죽거나 가사일에 의해 과로사로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었다. 이 시는 이런 불평등을 보여주는 대중매체의 핵심으로까지 불리던 TV의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것에 휘둘려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박히는 것을 막고 있다.
다음으로 제목을 보면 남성으로 대비되는 TV는 물이라는 여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을 시인은 방송이 끝난 후에 화면을 가득 메우던 파장의 모습을 물로서 나타내어서 표현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아직까지 남성 우월론에 입각한 사회의 모습을 고발하고, 동시에 여성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길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같은 시인의 <나의 오아시스, 서울>이라는 작품을 들 수 있다.
<나의 오아시스, 서울>
집이 밀려들어오네. 퍼낼 수도 없는 집이. 우리집 울타리를 타넘는 앞집이 방안까지 쳐들어오네. 온식구들이 나서서 밀려들어오는 집을 막고 서 있지만, 앞집은 이미 우리집을 반쯤이나 삼켜버렸네. 담장이 사라지고, 자동차가 집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네. 차 좀 치워! 앞집 남자가 내 뺨을 철썩 갈기네. 층계처럼 차곡차곡 쌓인 층계들. 집들이 한없이 밀려들어오네. 집 나온 강아지는 밀려들어오는 집에 깔려 죽었다네. 개똥을 놓을 골목도 사라져버린지 오래. 지금 마악 숨을 거둔 시신들은 몰려들어오는 집에 질식해 다시 한 번 숨을 거두네. 어디에도 관을 내릴 마당조차 없다네. 벽을 받치고 서 있어라, 아빠는 매일 벽을 받치고 서 있느라 팔이 퉁퉁 붓는다네. 엄마는 자주 우울증에 걸리고, 아빠는 집에 돌아와 잠만 자는 엄마를 두들겨 팬다네. 그러나 엄마는 집과 집 사이 낑기어 집 밖으로 도망갈 수도 없어, 부지런히 새끼나 친다네. 공중으로 창을 매달아도 여전히 깜깜한 방안에서 어린 제비 새끼들처럼 물어오는 먹이를 기다려 입맛을 쩍쩍 다시는 동생들. 먹으면 먹을수록 더 배고픈 동생들 제삿날 귀신들도 너무 숨막혀, 숨막혀 아무것도 못 드시고 구천의 아파트도 돌아가버린다네. 그속에서 날마다 넘쳐흐르는 아우성, 아빠들은 아무도 사지 않는 엉성한 민예품을 만들고, 시신들을 거두어가는 저승 사자들의 구슬픈 날라리 소리는 저 깊은 땅속에서 매일 밤 들려온다네. 날마다 창문 밖에서 벽돌은 올라가고, 내 입 안으로 콘크리트들이 밀려들어오네. 오아시스로 쏟아져들어오는 사하라의 모래처럼 집들이 밀려들어오네. 내 콧구멍 속에, 내 머리카락 속에, 내 귓바퀴 속에다 집을 짓는 집들. 바람이라도 불면 우거진 지붕들, 넘실거리는 기둥들, 고동치는 창문들, 아우성을 송출하는 안테나들, 서울엔 아무도 없고, 차곡차곡 쌓인 집만 있다네.
읽는 것만으로도 늘어지고 마는 문체의 사용은 서울이라는 땅에 사람이 모임으로서 물질 문명은 발달하지만, 반면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점점 그 살 곳을 잃어가고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가정의 파탄과 인심의 메마름, 인간미가 상실되어가는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생태론적인 입장에서 서울이 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강한 우려가 드러나고 있다. 이것 역시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살피어 본다면, 서울의 본래 땅을 여성의 입장으로 보며 그곳에 사람들이 몰리고 그것으로 인해 도리어 살기 힘들어지는 현실을 남성으로 볼 수 있는 물질문명이라고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문명의 이기에 사로잡혀 인간의 조재마저 잊어버리는 주객전도의 삶을 통해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의 해방과 여성과 남성의 동질성을 노래하고 동시에 그것에 비추어서 볼 수 있는 환경의 파괴를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생태론적 페미니즘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즉 여성으로 대표되는 자연의 파괴가 남성으로 표현되는 물질문명으로 인한 파괴의 우려와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통해 읽는 독자로 하여금 경고와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끔 하는 시도를 만든다.
토론 자료
1. 여성주의의 시를 바라보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
2. 어디까지를 여성주의의 시의 범주로 넣을 수 있겠는가.
3. 여성주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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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8.12.27
  • 저작시기2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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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09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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