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를 읽고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를 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나 민속적인 관습으로 제작했으며, 주로 실용적인 목적으로 그렸다. 민화는 주로 무명화가나 떠돌이 화가들이 그렸으며, 서민들의 일상생활고 관습에 바탕을 두고 발전했기 때문에 일정한 형태의 그림으로 계승되었다. 민화의 소재는 일사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으로서 화조, 동물, 산수, 세시풍속, 무속 등이 주요한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그림들은 당시 인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를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각종의 책을 편찬하였다. 이러한 종류의 책을 의궤라고 하는데, 의궤에는 오늘날 기록사진에 해당하는 의궤도가 첨부되어 있어서 주목된다. 의궤도 중에는 행사 과정을 그린 반차도가 가장 대표적이다. 반차도는 복잡한 의례절차를 미리 그림으로 그린 후 국왕에게 보여 예에 어긋나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목적에서 제작되었다. 오늘날로 보면 도상 연습에 해당하는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국방과 행정상의 필요, 그리고 상업 발달에 따른 수요의 증가로 많은 지도들이 제작되었다. 지도하면 김정호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김정호가 지도를 제작한 19세기 이전에도 국가의 주도에 의해 많은 지도들이 제작되었다. 특히 이들 지도는 오늘날의 회화와 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흥미롭다.
이제 조선시대 사람들의 전반적인 패션 감각에 대해서 살펴보자. 기본적인 한복은 나자는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를 입고 여자는 치마, 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입는다. 즉 상의, 하의, 외투라는 세 가지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옷은 직업복과 평상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직업복은 관직이나 독특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입는 옷으로 일종의 유니폼이었다. 이는 겉옷의 형태였다. 속에는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그 위에 겉옷으로 작업복을 입었다. 대표적인 직업복은 관복이다. 직업복을 입는 사람들도 평시에는 평상복을 착용하였다. 임금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평상복의 기본 형태는 동일하였다. 즉 저고리, 바지(치마), 포로서 이는 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 전통 의복의 기본 구조였다. 조선시대 저고리는 그 이전보다 길이가 짧아져 허리 위로 올라가고 여밈을 위해 띠 대신 고름을 달았다. 상경농법을 실시하면서 휴한지가 없어지고 경작지가 넓어짐에 따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 긴 상의보다 짧은 상의가 노동하기에 적합하였다는 것이 저고리 등장의 배경설이다. 그리고 여성의 저고리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점 짧아져 심한 경우 남자 저고리 길이의 3분의 1정도 밖에 안 되는 것도 있었다. 여자 저고리에는 회장을 달아 맵시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깃, 고름, 소매 끝, 겨드랑이에 회장을 두른 삼회장저고리가 가장 화려한 형태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하의도 변화한다. 바지의 기능과 이용도가 대폭 증대되어 이전의 고가 발전한 형태이다. 여성의 기본 하의는 치마였다. 고려시대까지 치마는 일을 하지 않는 일부 유한계층의 사치 의복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모든 여성들이 치마를 입었다. 치마는 상층계급일수록 더 넓고 긴 치마를 입었고 일을 하는 하층의 여자들은 폭이 좁고 짧은 치마를 입었다. 상류층의 경우 12폭 치마란 말이 나올 정도로 치마가 풍성하고 길었다.
이러한 옷감의 기본소재는 계절에 따라 변하였는데 여름에는 주로 삼베가 이용되었고 겨울에는 솜옷, 봄가을에는 무명이 이용되었다. 상류층은 비단이든 모시든 필요한 소재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러나 최하층민은 한겨울에도 베로 만든 홑바지 하나로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겨울에 얼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조선 정부가 빈민을 구제할 때 곡식뿐만 아니라 옷감을 제공하거나, 북방의 군사들에게 겨울마다 기름을 먹인 종이옷을 하사하기도 한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동물의 가죽 또한 사용되었다.
남자의 옷은 전반적으로 그 기본유형이 변하지 않아 유행을 많이 타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색이나 옷감의 소재, 많이 입는 옷의 변화 등 유행을 타고 있었다. 남자 옷은 외투가 가장 유행에 민감한 옷이었다. 도포는 조선 후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두루 퍼졌고, 두루마기는 1800년대를 전후하여 많이 입었다. 외투는 시기를 내려오면서 폭이 매우 넓어지는 쪽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갓이 유행을 많이 탔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유행에 민감한 것은 여자의 옷이다. 여자 옷은 기본형조차 변화하여, 저고리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매우 짧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짧은 저고리의 유행은 기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기방의 기생들이 착용하던 것이 양반가 규수들에게도 유행이 번져가고, 마침내 조선 후기가 되면 모든 여자들이 짧은 저고리를 착용하였다. 짧은 저고리는 불편할 정도로 꽉 끼는 소매에 그 길이가 극도로 짧아 젖가슴을 가리지 못하는 등 극히 비활동적인 옷이었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입는 옷이 점차 일을 해야 하는 하층 여자들 사이에서도 유행되었던 것이다. 양반가 규수들은 짧은 저고리 아래에 넓고 긴 띠를 둘러 젖가슴을 가렸지만, 가난한 백성의 아낙 중에는 젖가슴을 그대로 드러내고 다니는 경우도 많았다.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는데 반해, 치마는 시기를 내려올수록 점점 더 풍성해지고 길어졌다. 노리개를 착용하여 멋을 냈다. 그리고 가체가 유행하였다. 매우 비싼 가격의 가체를 마련하다가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많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책 2권을 읽고 나니, 수업시간에는 배울 수 없었던 많은 자세한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영조가 정말 자신의 정신병력 때문에 사도세자를 죽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음 왕위에 오를 정조를 지켜주기 위해서 자신의 아픔을 감내하고 아들을 죽였을 지도 모른다는 챕터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너무나도 다른 가치관을 가졌던 가깝지만 먼 조선. 앞의 다른 역사들보다도 우리 시대와 100년의 차이가 나지 않는 조선이지만, 너무나도 많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나라 자신의 역사마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책을 읽으며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키워드

추천자료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9.06.08
  • 저작시기2008.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013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