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의 흐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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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스승 플라톤과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서양 철학의 아버지-플라톤

만학의 시조-아리스토텔레스

근대 학문의 개조-르네 데카르트

실증주의의 아버지이자 가장 철저한 근대정신-데이비드 흄

독일 관념론의 대부-임마누엘 칸트

엄밀한 학으로서의 현상학을 정초한 에드문트 후설

본문내용

사과를 직접 골라내는 직선적인 방법을 쓰지만 현상학은 그 꾸러미 속에서 일단 "붉지 않은 것"들을 우선 솎아냅니다. 파란것,노란것 등 이런 색깔을 가진 것을 먼저 "괄호치기"합니다. 이렇게 제1차적인 현상학적 환원이 끝나면 남은 것들은 "붉은 것들" 밖에는 없겠지요.그러면 이제 두번째의 괄호치기에 들어갑니다. 제 2차 환원에서는 "사과가 아닌 것"을 괄호치기합니다. 두번째 에포케가 시행되고도 남아 있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붉은 사과이지요. 이 남은 것을 후설은 "순수 잔여물"이라 부르고 이 괄호치기의 방법을 "본질직관의 방법"이라고 칭합니다.
데카르트의 방법을 세계에 적용한 결과는 데이비드 흄이 내린 결론과 동일하지요.
세계에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괄호치기하고도 살아남는 것은 오직 "현상들" 뿐입니다. 현상 배후에 자리한 "실체"라거나 칸트가 말한 "물자체"는 도저히 괄호밖으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세계가 아니라 현상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 전체가 괄호치기되었다고 할 만한데 물론 후설 자신 세계자체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괄호안으로 들어간 것에 대한 탐구는 결단코 철학이 탐구삼아야 할 영역은 아니라는 명백한 자기주관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는 세계의 순수잔여물로 현상을 확보한 후 곧바로 이 괄호치기를 인간에게 적용합니다.
인간의 모든 것을 괄호치기 해 나가던 후설에게서 도저히 괄호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한가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니라 "의식의 지향성"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괄호치기 할 수 있지만 지금 괄호치기를 행하는 의식작용이 괄호안으로 들어갈 순 없는 일이지요. 그럼 무엇이 의식의 속성으로 존재하기에 괄호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까요? 바로 "지향성"이 그것입니다. 내가 세계를 괄호치기 하고 육체를 괄호치기 하고 있다면 괄호치기할 그 무엇이 있어야 가능하며 "그 무엇"을 지향하는 의식적 속성이야 말로 인간 정신의 순수잔여물로 확보되니까요.
분석철학적 시각으로 말한다면 "지향문장에는 반드시 목적어가 필요하다."이고 목적어가 필요할 수 밖에 없는 이 속성을 지향문장의 본질로 보고 있는 것처럼 우리 "의식의 지향성"은 인간을 괄호치기해나간 결과 남는 "순수잔여물"입니다.
후설은 의식의 지향성을 계속 추궁하여 칸트가 말한 "능동성"을 확보해 냅니다. 그는 이걸 "초월적으로 사념하는 능력"이라고 부르지요.
현상학은 결국 의식의 지향성과 현상들, 괄호치기등을 주요골자로 "역사주의"와 "자연주의"에 대항하는 철학고유의 영역을 확보해냅니다. 그리고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요.(후설의 전집은 아직 발간중에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현상학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현상학의 이념을 소개한 책들이 발표되었고 그것을 탐구대상에 직접 적용한 결과는 아직 미간행되었습니다.)
오늘날 현상학의 의미는 많이 넓어져서 괄호치기의 방법을 주요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학자 모두를 "현상학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 괄호치기에 능숙한 학자들이 이를 이용하는 의도가 자신의 체계를 건설하기보다는 타인의 체계를 무장해제시키는데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자크 데리다."입니다. 물론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예외가 있긴 해도...
현상학과는 다른 분석철학 특히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고유영역을 확보하는 새로운 단층을 일구어냈습니다. 그는 철학은 하나의 이론체계라기 보다는 하나의 활동이라는 견해를 피력합니다.
"진리를 구성하는 명제의 총화는 과학의 전 체계이기 때문에" 철학은 명제를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철학은 과학이 과학이게끔 윤리가 윤리이게끔 종교가 종교이게끔 만들어주는 "사고의 명료화 작업"에 다름 아닙니다. 그가 사용한 것이 "언어분석"의 기법입니다.
각종 언어는 각자 자신만의 특정한 문법을 가지고 있는데 이 문법을 타고 넘어 월권행위를 하는 언어의 헛수작에 지성이 미혹당하여 진여를 간파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이걸 지적해 줌으로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메타학문으로서의 철학이 가진 철학만의 고유영역이라고 주장하지요.
후설과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을 정의함에 있어서의 공통점은 "철학은 도대체 분과학문으로서의 과학(인문과학이나 자연과학)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서양 철학의 근본 골격은 다른 존재자와는 차별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특정한 존재자가 "지성"을 가지고서 인간 자신이나 세계 또는 양자의 관계를 탐색하는 것을 주요 연구과제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 토대를 제공한 사람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고요. 기본적으로 이 견해는 철학이라기보다는 "학문일반"의 보편적 속성을 잘 나타낸 것이지요.
철학이 학문일반의 개념을 탈피하면서 철학만의 자기영역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데카르트부터였습니다. 앎 자체에 관한 이론 바로 "인식론"이 제일철학으로 인정되었고요. 흄을 거치면서 그 이전까지 제일철학의 행세를 해 왔던 형이상학과 신학이 철학 밖,아니 아예 학문 밖으로 내쳐집니다. 칸트에 이르러서는 인간 지성의 위력에 능동성까지 부여되어 지성의 힘이 득세하던 "주지주의 전통"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니체는 전혀 다른 "주의주의"전통으로 인간을 탐색함으로 오만하던 지성에게 겸손하라는 충고를 해 주었고 이전과는 다른 전통의 철학을 정초하여 그 계보가 실존주의를 거쳐 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전개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주지주의 계열에서는 후설과 비트겐슈타인이 독자적인 방법으로 주지주의적 인식론적 주류 노선을 견지하면서 "철학의 정체성"을 이끌어 내어 이 전통이 오늘날의 주류철학을 구성합니다.
제가 중세 철학을 다루지 않은 것은 순수하게 주관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학문으로서 중세철학에서 우리 지성이 건져낼 것이 거의 없다는게 제 개인적인 소신입니다. 이건 학문이 아니라 종교와 학문을 결합한 사이비적 엉성함밖에는 못 느껴져서지요. 물론 그 중에는 "윌리엄 오컴"이나 뛰어난 유명론자 "아벨라르"같은 날카로운 지성도 있었지만서도...
중세 최고의 철학자로 평가되는 토마스 아퀴나스 스토리를 써 볼까하는 심정이 반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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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9.07.09
  • 저작시기2009.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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