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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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의 꽃꽂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화훼디자인의 등장배경

2. 일본의 꽃꽂이 기본화형

3. 일본의 꽃꽂이 양식과 변천

가. 무로마치 시대이전
나. 무로마치 시대
다. 아즈치 ․ 모모야마 시대 (1573~1600)
라. 에도시대
마. 근 ․ 현대

본문내용

잉태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1930년 신흥 꽃꽂이 선언이 제창 되면서 전위운동이 빠르게 출발되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꽃꽂이 작품에서 전위를 표방하는 작가는 없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전위꽃꽂이 ( 그림 88) 는 1940~1950년대에 걸쳐 확산된 혁신적 꽃꽂이를 목표로 하는 운동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꽃꽂이는 주로 도코노마에 장식하는 것이어서 그것 자체가 전통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그것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것으로도 생각된다.
전위꽃꽂이 운동은 도코노마로부터의 해방아래 ①봉건적이라고 생각되는 제도의 부정, ②
유파보다도 개성존중의 개인작가 활동을 중시하고, 전통적 꽃꽂이가 갖고 있는 자연관ㆍ계절관ㆍ출생관을 부정함으로써 혁신적인 꽃꽂이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당시 작가들의 생각이었다. 또한 형 뿐 아니라 소재 영역의 확대, 즉 철ㆍ돌ㆍ석고ㆍ플라스틱 등 식물 이외의 무기물적 소재도 전위꽃꽂이의 구성대상으로 됐던 것이 큰 특징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당시 폐허 상황이었기는 하지만 Junk Art라고도 할수 있을 정도로 꽃과는 다른 ( 인공 ) 자연의 존재물로서의 미를 살린다고 하는 다양한 소재에 대한 안목이 생기게도 되었고 공간예술로서의 전시장소도 옥외, 백화점 윈도우 등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판단된다.
이와 같은 전위꽃꽂이 운동은 전쟁 전부터 새로운 꽃꽂이를 지향했던 나카야마분포 등에 의해 전쟁 후 빠르게 작품 발표회가 있었는데 전위꽃꽂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1948년 10월 中山文甫였다. 그래서 전쟁후의 화동계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추상주의 꽃꽂이, 현대풍 또는 초현실주의 꽃꽂이라는 전위꽃꽂이가 탄생하였다. 전쟁 후 전위꽃꽂이의 리더로 등장한 3인이 中山文甫, 勅使河原蒼風 그리고 小原農雲이었는데 그들은 각자 독특한 작품경향을 갖고 있었다. 즉, 中山文甫는 일종의 모더니즘 작가로도 불리우는 것처럼 장식적인 그리고 대단히 화려한 작품 경향을 나타냈다. 勅使河原蒼風의 경우는 일종의 추상주의적 조형 작품이었음으로 오히려 꽃꽂이의 범주를 넘는 현대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도 많이 발표했다. 小原農雲은 그의 개성적 자질로부터 초현실주의 작가라고 할 정도로 꽃을 오브제의 한부분으로 보는 독특한 작품을 발표했다.
전위운동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이에모도 제도의 부정이었지만 앞에서 다룬 인이 바로 엄연히 각 유파의 으로서 정점에 있었다. 이러한 점은 꽃꽂이 세계에서의 이 운동이 어디까지나 예술 활동에 한해서만 적용됨으로써 유파제도와 양립하면서 전개되는 모순점을 안고 있어서 이윽고 전위꽃꽂이라는 말 자체가 이제는 사어(死語)가 되버렸다고 판단된다.
5) 겐다이카 ( 現代花 )
주류 ( 主流 )를 이뤘던 전위꽃꽂이가 그 호칭에 있어서 점차 전위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망설이게 되고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전반에 걸쳐 일본 사회 경제의 신장과 풍요로움으로 인해 개인의 교양과 취미의 다양화 속에서 꽃꽂이 역시 여성 참가자 수가 극에 달할 정도로 신장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현대화라는 명칭이 출현했다. 이것은 도쿄의 고류게이 연구회에서 유가와오사무가 처음으로 제창한 것으로 3]의 뒤를 이은 현대의 꽃꽂이를 지향한 것이었다. 서구의 조형이념에 따라 창조적 꽃꽂이를 지향한 것이어서 그 내용이 난해하지만 이 현대화의 이념은 제유파에 영향을 주어 각 유파의 조형 꽃꽂이 연구의 이념으로 흡수되었다.
꽃꽂이가 제유파의 활동올 통해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전반에 걸쳐 최성기를 맞이하게 된 데에는 새로운 꽃꽂이, 즉 오늘날 일반적으로 자유화 범주에 속하는 현대화라고 하는 조금은 정의가 애매하다고 볼 수 있는 꽃꽂이가 나타나기 시작한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비교적 젊은 작가들의 그룹 활동이 확대되어 1980년을 전후해서는 각종 꽃꽂이 공모전 또는 개성적 발표회가 활발해졌고 그러한 꽃꽂이전에서는 유파의 계급질서, 家元(headmater) 과 문하생에 대한 고전적 전통을 뛰어넘는, 소위 모두가 동열로 참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진보적신 사고방식 때문에 현대화 운동은 지금까지 그 예를 볼 수 없을 정도의 새로운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6) 쇼우카신푸타이 ( 生花新風體 )
일본 전통 꽃꽂이의 근원이고 대표격인 지방에서도 발상의 전환과 생활환경, 소재의 다양화 등 시대의 변천 상황에 맞춰 그들 고유의 화형을 현대에 맞게 변형 응용시킴으로써 전통화와 현대화를 함께 병행시켜 나가고 있다. 따라서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른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거기에 적응하는 생화의 한 부분으로 발전한 것이 1977년 첫 발표된 생화신풍체다. 쇼유카신푸타이는 쇼우후타이를 구성하는 초기의 생화, 즉 명암 2개의 가지가 호응하는 상호 관계를 골격으로 하여 2 가지의 역할을 보충하기 위하여 곁들이 보조 가지를 부가하는 형을 취하는 것이다 ( 그림 89 ). 그렇게 함으로써 화형 전체에 대해 안정적이면서도 변형의 역할을 할 수 있어서 화재의 조합결과 생각하지도 않았던 이외의 효과를 거두려는 것이다. 이처럼 세이카 양식에는 초목을 3종까지라고 하는 약속 하에서 꽂는 전통적인 정풍체와, 끊임없이 유입되는 외래종과 환경, 그리고 생화라는 전통적 스타일 속에서 응용하고 최대로 생략해서 꽂아 현대 감각을 크게 살려 나가려는 싱풍체로 나눠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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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미(1980), 「꽃꽂이」, 고려서적주식회사.서울
김정자(1981), 「세계꽃꽂이 전집2, 초보자를 위한 기초꽃꽂이」, 한림출판사,서울
김희영(1996), 「이야기 일본사」, 정아출판사, 서울
박정숙(2004), 「플라워디자인」, 도서출판 인아.
이인덕(1978), 「꽃꽂이 입문」, 민서출판사.서울
조재선(1980), 「새생활꽃꽂이」, 민서출판사.서울
하승애(2002), 「한국과 일본의 꽃꽂이 발달과정과 자유화의 최근경향」, 고려대학교 자연자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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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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