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데카르트][아리스토텔레스]형이상학의 의미, 형이상학의 영역, 형이상학의 전개와 플라톤의 형이상학,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메를로 퐁티의 형이상학, 칸트의 형이상학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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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플라톤][데카르트][아리스토텔레스]형이상학의 의미, 형이상학의 영역, 형이상학의 전개와 플라톤의 형이상학,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메를로 퐁티의 형이상학, 칸트의 형이상학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형이상학의 의미

Ⅲ. 형이상학의 영역

Ⅳ. 형이상학의 전개
1. 밀레토스 학파의 발생
2. 헤라 클레이 토스와 파르메니 테르스의 형이상학의 차이점과 통합과정
3. 중세의 형이상학
4. 근세의 형이상학
5. 반 형이상학

Ⅴ. 플라톤의 형이상학

Ⅵ.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Ⅶ.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Ⅷ. 메를로 퐁티의 형이상학

Ⅸ. 칸트의 형이상학

참고문헌

본문내용

제약에서 자유로운 무제약자여야만 한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감성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초감성적 존재자라는 뜻이다. 이러한 초감성적 존재자에 대한 인식이 바로 형이상학의 궁극 목적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그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그를 극복한 존재에 대한 궁극적인 추구를 그 본질로 삼는 이성의 본성상 이미 형이상학의 세계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은 가능한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의 재판 [들어가는 말]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 질문은 사실상 그의 전 비판철학의 여정의 약도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학(Wissenschaft)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체계(System)이다. 칸트에 따르면 체계는 이성으로부터 주어진 초월적 이념에 의하여 그 형식과 범위가 결정된, 다양한 인식들의 조직이다. 이는 이성의 건축술에 의거한다. 이성의 건축술이란 학적 체계를 구성하는 기술이요, 인식의 한갓된 집합에서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성의 이러한 특성에 따른 학이라는 것은 건축술적 체계를 뜻한다. 이것은 단순히 외적 통일만을 노리는 기술적 체계와는 다르다. 건축술적 체계는 칸트의 예에서 보듯이 유기체와 같은 것이다. 유기체라는 것은 그 신체의 일부분만을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부분들 자체만으로도 존재할 수 없다. 각각의 부분들은 그것들이 마치 전체 유기체의 목적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이에 상응하여 각자가 자신의 목적에 충실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칸트가 말하는 건축술적 체계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때 여러 다양한 인식들이 복종해야 할 전체 체계의 목적이라는 것은 이성의 이념이다. 역으로 생각한다면 건축술적 체계라는 것은 이성의 이념이 도식화(schematisieren)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인용된 문장에 따르면 이성의 이념이 도식화된 것으로서의 체계인 학이라는 것은 바로 형이상학이어야 한다. 따라서 형이상학이라는 것은 바로 이성의 본성에 의한 것이요, 그것이 만약 진정한 것이라면 논리적 모순이 없는 하나의 완전한 체계이어야 한다.
이렇게 앞에서 인용된 문장을 해석할 수 있다면, 이 문장에서 보이는 칸트 비판철학의 약도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우선 인간의 이성을 통한 인식의 정당한 규준의 제시가 먼저 구명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인간 인식의 구명된 규준을 바탕으로 하여 정당하게 초감성적인 것으로의 초월이 가능함을 밝혀야만 한다. 그와 동시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이론적인 토대지움이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완수되었을 때 하나의 완전한 체계, 즉 인간에 대한 통일적 전체 규정으로서의 형이상학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순수이성비판』의 근본적인 의도는 바로 첫 번째 작업의 내용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이성 자신에 대한 이성의 비판을 통해 자기 본래의 한계를 오인하는 이성의 환영을 폭로하고, 우리의 개념들을 명확하게 해명하여 사변의 헛된 자만(Eigendunkel)으로 하여금 겸허(Demut)하고도 근본적인 자기 인식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일이다. 이는 곧 철학의 근본 의도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철학은 이성의 모든 진행을 이성 자신의 가장 명백한 조명에서 밝여야 한다. 즉 순수이성의 비판이라는 참된 법정에서 이성 자신의 전체 체계와 능력과의 적격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성은 그 자신의 한계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런데 한계의 제시라는 것은 그 안에서 안주하고자 하는 안일한 소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를 가상(假象)의 암초로부터 참된 진리의 육지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단단한 기반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작업이다. 이는 종래의 독단적이고 맹목적인 연구들과 회의주의라는 파괴적인 세력으로부터 형이상학을 구하려는 이성 자신의 노력이다.
이를 통해 성립하는 형이상학의 개념이 바로 강단 개념으로서의 형이상학이다. 강단 개념으로서의 형이상학이란 인간 인식의 제 1원리의 학문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전문학술적 개념(Schulbegriff)으로서의 학으로, 철학적 앎의 체계적 통일을 목적으로 삼는, 따라서 인식의 논리적 완전성을 목적으로 삼는, 인식 체계의 개념이다.
물론 이것으로써 이성의 본래적 목적이 달성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강단 개념으로서의 형이상학이라는 것은 다시금 그것의 마지막 근거를 필요로 한다. 즉 모든 인식을 인간 이성의 본질적 목적과 관련시키는 학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칸트가 말하는 진정한 형이상학이요, 본래적 형이상학이다. “철학은 모든 인식의 인간 이성의 본질적(학술적 또 도덕적) 목적들에 대한 관계의 학문이다.”
그러나 일단 『순수이성비판』의 원리론과 변증론에서 밝혀진 것은 앞서의 강단 개념으로서의 형이상학이다. 이는 순수오성의 올바른 사용의 규준을 제시한 것이요, 인간 인식의 정당한 한계점 설정이다. 이는 아직 완전한 체계로서의 형이상학의 제시도 아니요, 아직 진정한 형이상학의 완전한 제시도 아닌 것이다. 오히려 첫 번째 여정은 새로운 형이상학을 바로 세우기 위한 기반을 닦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선험적인 순수인식에 관한 이성 능력을 연구하는 예비학”인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앞에서 밝혀진 비판철학의 약도에 따라서 두 번째의 여정, 즉 본래적 형이상학에로의 이행이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당한 원칙 체계와 그 범위가 제시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칸트는 이것이 이성의 실천적 관심에서만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참고문헌
김선향 편역 - 17세기 형이상학파 5인 시집, 열음사, 1996
림프리히트·김태길 외 - 서양철학사, 을유 문화사
앙드레 베르제·드니스 위스망 공저·남기영 옮김 - 인간학 철학 형이상학, 정보여행 출판, 1996
이종복 - 형이상학시의 기상과 심상: John Donne을 중심으로
조대호 역해 -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문예출판사, 2004
하이데거 지음·최동희 옮김 -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서문당, 1999
한국현상학회 편 - 현상학과 실천철학, 서울 : 철학과 현실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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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0.06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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