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시속의 삶과 의식<<책속의 최치원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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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현실 상황에 대한 소외의식

현실비판

소외의식의 극복

본문내용

文昌侯全集, 26-27쪽)
이 시는 현실의 혼란과 고난에 부대끼는 시인 자신의 내면을 속세와 절연하고 사는 산승(山僧)에 대비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제까지 좌절감이나 허무감 또는 비판의식 등으로 나타나던 그의 소외의식은 이시에 와서 혼미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떠나 새로운 지평을 지향하려고 하는 도피의 기미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除夜에 친구의 시를 받고 화답함 (和友人除夜見寄)
그대와 만났으니 노래 부르고
당년의 포부 못 이룬 것을 한하지 말자.
다행히 봄바람이 길맞이 하리니
꽃피는 좋은 시절에는 계림에 도착하리.
與君相見且歌吟 莫恨流年挫壯心 幸得東風已迎路 好花時節到林
(崔文昌侯全集, 405쪽)
이제 이 시에서 드러나는 것은 중국에서의 좌절감을 딛고 고향 계림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희망이다. 그는 중국의 고관들에 대한 깍듯한 예의는 겉치레일 뿐이고 그의 내면은 현실에서 느끼는 한량없는 소외의식이었다.
소외의식으로 인한 그의 내면적 방황은 결국 현실로부터 초탈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현실의 한계를 절감하고 타고난 본성을 지켜 영원한 고향인 자연에 돌아가 거기에 동화된 삶을 살고자 했다
소외의식의 극복
해동으로 돌아오며 가파른 산의 봄 경치를 바라봄 (將歸海東山椿望)
아득한 저쪽 煙波를 바라보니
새벽 까마귀 나는 데가 고향인가 싶다.
이제부터는 나그네의 시름으로 귀밑털이 세지도 않겠고,
행색도 얼마간 웃음을 띠게 되었네.
물결은 모래에 밀려오고 꽃은 언덕에 피었으며
구름은 바위 산 꼭대기에 걸렸고 잎은 온 산을 둘렀네.
오고가는 장사꾼에게 말하기를
누가 천금을 풀어서 한가함을 사겠는가.
(崔文昌侯全集, 405쪽)
이 시는 최치원이 중국생활을 청산하고 사신의 명목을 띠고 고국으로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도중에 머물면서 참산(山)의 신령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 시는 그 때 지은 것이다. 그가 고병(高騈)에게 올린 글에는 은근히 돌아가는 기쁨을 드러내고 있는데, 중국생활은 괴로웠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쁨은 비길 데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런 기쁨이 둘째 연에 드러난 심정일 것이다. 이제는 소외의식을 접고 편안한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기를 기대하고 있다.
女道士를 이별하며(留別女道士)
매양 세속의 벼슬길에 불우함을 한스러워했는데
몇 년 동안 麻姑 신선을 알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떠나기에 앞서 진심을 말한다면
바닷물은 어느 때 마를까요.
每恨塵中厄宦塗 數年深喜識麻姑 臨行與爲眞心說 海水何時得盡枯
(崔文昌侯全集, 403쪽)
운봉사에 題함 (題雲峰寺)
칡덩굴 부여잡고 운봉에 올라 굽어보니 온 누리가 텅빈 듯하네.
산들은 손바닥 위처럼 분가하겠고 만사가 가슴속에 확 트이는 구나.
탑 그림자진 곳 햇빛 비친 누이요 半空의 바람은 松 소리를 내네.
煙霞가 나를 비웃으리라, 발걸음을 돌려 티끌세상으로 돌아감을.
葛上雲峰 平觀世界空 千山分掌上 萬事豁胸中
塔影日邊雪 松聲天半風 烟霞應笑我 回步入塵籠
(崔文昌侯全集, 28쪽)
위의 두 시는 의취(意趣)가 비슷하다. 진세를 떠나 선계나 불계의 한가한 곳에 머물고 싶지만 세속에 발이 묶여서 다시 돌아감이 아쉽다는 뜻이다. 앞의 시에서 현실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이 마고(麻姑 ) 선녀와 같은 여도사를 만나는 일이었는데, 바닷물같이 많은 속세의 번뇌가 언제 마르겠느냐고 하소연함으로써 진세를 떠나 선계에 노닐고 싶은 심정을 드러내었다. 뒤의 시에서 현실을 벗어난 활연한 기쁨을 노래한 다음에, 다시 속세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돌아봄으로써 은일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였다. 이런 시들이 최치원의 지향하는 바를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갈매기(海鷗)
이리저리 물결따라 훨훨 날며 가볍게 깃을 펄럭이니 정녕 신성이네.
자유롭게 세상 밖을 드나들고 거침없이 선경에 왕래하는 구나.
고량진미 좋은 맛도 알은 체 아니하고 풍월의 참 맛을 지극히 사랑하네.
아마 莊子의 나비 꿈을 생각하고 나도 그대를 꿈꾸고 있다고 생각하리라.
慢隨花浪飄飄然 輕擺毛衣眞水仙 出沒自由塵外境 往來何妨洞中天
稻粱滋味好不識 風月性靈深可憐 想得漆園蝴蝶夢 只應知我對君眠
(國譯 孤雲先生文集 下,630쪽)
이 시에서 ‘갈매기’는 시인 자신이다.
이로 보아 그는 소외의식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매달려야 하는 자신의 모순된 처지로부터 떠나서 갈매기 같은 자유로움 신선 같은 탈속의 경지를 갈망하였다고 하겠다. 그가 현실에서 느낀 소외의식은 현실에서의 무력감이나 고립감 혹은 무의미성 등으로 함몰되지는 않고, 그러한 소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세계로의 지향, 곧 자연 몰입 내지 자연에의 동화로 나아갔다고 할 것이다.
최치원 그는 고국에 돌아와서도 그의 소외의식을 씻어줄 현실적 여건은 마련되지 않아서 육두품은 여전히 소외되었고, 그는 지방관직으로 전전하다가 결국 가야산에서 은둔하고 만 것이다.
가야산 독서당에 題함 (題伽倻山讀書堂)
미친 듯 쏟아지는 물은 바위를 치며 깊은 산을 울려
지척에서 하는 말도 알아듣기 어렵구나.
항상 세상의 시비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일부러 흐르는 물로 산을 감싸게 했네.
狂奔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崔文昌侯全集, 27쪽)
그의 내면에는 아직도 현실에서의 소외의식과 그에 대한 미련, 그리고 모든 세속사를 잊고 새로운 세계 곧 자연 속에 은둔하고자 하는 지향이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은둔에의 지향은 드러나지만 아직 자연에 완전히 동화하지는 못했다고 할 것이다.
벽송정(碧松亭)
늙은 몸 돌아와 松亭 아래 누워
한 줄기 가야산의 푸른빛을 바라보노라.
暮年歸臥松亭下 一抹伽倻望裏靑
(崔文昌侯全集, 32쪽)
이 시는 비록 낙구(落句)이긴 하지만 그가 바라던 자연에의 귀의가 아무런 갈등 없이 드러나 있다. 이 경지가 바로 그가 현실적 소외의식을 극복하고 최종적으로 지향했던 세계, 즉 자연과 완전히 동화된 세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와 같이 최치원의 시에는 신분적 한계에서 비롯된 깊은 소외의식과 현실적 소외로부터 벗어나 자연에 동화하고자 하는 지향성이 나타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소외의식을 드러낸 시들로 그는 한국 한시사의 첫 장을 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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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18
  • 저작시기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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