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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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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칼 바르트 신학의 특징

Ⅲ. 칼 바르트 신학의 배경

Ⅳ. 칼 바르트 신학의 인간학

Ⅴ. 칼 바르트 신학의 교회교의학
1. 하나님 말씀론을 살펴보면 말씀의 삼중성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선포된 말씀, 기록된 말씀, 계시된 말씀이다
2. 신론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삼중의 양식으로 알려진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3. 창조론을 보면 바르트는 다음과 같은 전에 기초한 창조론 구축을 반대한다
4. 화해론을 살펴보면 이 세상을 자기에게 화해시키려는 하나님의 목적은 바르트 全 신학을 결정한다

Ⅵ. 칼 바르트 신학의 혼돈과 無(무)

Ⅶ. 칼 바르트 신학의 예수그리스도와 사회운동

Ⅷ. 칼 바르트 신학의 투쟁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생각했다. 1933년에 두 차례 행한 강연 \'신학적 공리로서의 제1계명\'에서 바르트는 계시의 개념을 인간의 실존, 질서, 국가, 민족 등과 같은 어휘들과 연관시키려는 모든 신학의 우상숭배적인 위험을 지적했으며, 모든 종류의 자연신학으로부터 결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독일의 교회-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바르트의 최초의 공개적인 태도 표명은 1933년 7월에 출판된 소책자 \'오늘의 신학적 실존!\'(Theologische Existenz heute!)에서 나타났다. 이 책은 히틀러에게도 증정되었으며, 압수되기까지 3.700 여부가 인쇄되었다. 여기서 바르트는 \"교회가 신학적인 실존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정치적인 판단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다가 교회가 자신의 본질을 망각했다. 하지만 성서가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신학적인 실존이 있고, 교회개혁이 가능하다\"고 외쳤다. 그 밖에도 그는 유대인 문제, 나치당의 독재적인 주장, 야당 탄압 등을 언급하면서, 나치에 도전했다. 1933년 10월에 행한 강연 \'결단으로서의 개혁\'(Reformation als Entscheidung)에서도 바르트는 \"오늘날 교회에서 지배하는 운동은 종교개혁에 대한 불충실의 최종적 형태임\"을 지적하고, 이에 맞선 저항을 호소했다.
바르트는 1934년 5월 31일에 채택된 \'바르멘 신학선언\'을 기초하는 작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물론 브라이트(T. Breit)와 아스무쎈(H. Asmussen)도 기초 위원으로 위촉되어 문안 작성에 참여했다. 그리고 사쎄(Sasse)와 알트하우스(P. Althaus)의 듯대로 \'성례전\'이라는 낱말도 문안에 추가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내용으로 판단하면, 이 선언서는 실제로 바르트 자신의 문장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전형적으로 칼빈주의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기초안을 총회는 채택하였다.
그 후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을 거부한 이유로 바르트는 교수직에서 해직을 당하였고, 1935년 2월에 학생들에게 이별사를 남기고, 강단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충고는 \" 주석, 주석 그리고 또 한번 주석! ...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 성서를 굳게 붙들라\"였다고 한다. 같은 해에 그는 홀랜드 우트레히트(Utrecht) 대학에서 16회에 걸친 강연 \'Credo\'(사도신경 해설)를 행하였다. 여기서 그는 신앙을 하나님의 현실의 인정, 결단 및 고백으로 정의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창조 신앙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1935년 5월에 바르트는 독일을 떠나 스위스로 되돌아갔으며, 바젤(Basel) 대학의 교수가 되어 온 세계로부터 몰려오는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다. 1945년에 독일로 다시 여행할 수 있었던 그 때까지 그는 10여 년 동안 뜨거운 애정과 비판적 동정을 가지고 독일과 함께 호흡하며 살았다. 스위스에 있으면서도 그는 매우 적극적으로 말과 문서로써 정치적인 투쟁에 참여했으며, 방송과 편지 등을 통하여 독일인을 비판하고 격려하였다. 이것은 나중에 \'한 스위스인의 목소리\'(Eine Schweizer Stimme)라는 책으로 발간되었다.
Ⅸ. 결론
바르트의 예정론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인간 자신이 스스로 택한 저주와 버림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 감당할 것을 하나님은 예정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도는 인간을 버리는 데 있지 않고 선택하는 데 있다. 지금 버림받은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선택된 자가 되어야 한다.
바르트의 예정론은 삼위일체론적 사고에 뿌리 박고 있으며, 그의 예정론의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이중예정론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예정론은 인간의 electio(선택)와 reprobatio(버림)를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예정론에 의하면 모든 인간이 받아야 할 reprobatio를 하나님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린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Gnadenwahl)을 뜻한다. 하나님은 자신에게는 심판과 죽음을, 인간에게는 구원과 생명을 예정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이 예정은 실천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 하나님은 분명히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신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이요 “약속”이며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다. 인간이 이 가능성을 받아들일 때 선택은 현실화되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것은 여전히 가능성 내지 “Angebot”(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선물)로 머물게 되고 하나님의 버림받은 자는 여전히 버림받은 자로 머물게 된다. 바르트는 신앙 없는 사람도 구원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보편구원설이나 은혜의 보편주의를 결코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 바르트에 대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차른트는 바르트의 신학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 결과 “무역사성”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고, 알트하우스는 전통적 이중예정론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의지에 대한 복음의 명제와 모순된다.”고 보았으며, 틸리히도 이중예정론을 부정하고 있다. 판넨베르크도 바르트의 이중예정론을 비판하였는데,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을 하나님의 창조와 세계에 대한 설계의 종말적 성취로서 이해하지 않고 단지 창조와 세계사를 선행하는 전제와 원형으로 이해하며 예수의 선택과 세계사의 관련을 조직적으로 전개시키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 김명용(1988), 칼바르트의 로마서 강해, 교회와 신학 20
○ 김군진(1983), 헤겔과 바르트, 서울 : 대한기독교출판사
○ 안병대(1988), 칼빈·웨슬레·바르트 예정론 비교, 장신대 석사논문
○ 청운사(1962), 칼 바르트
○ 최영익(1993), 칼 바르트의 생애와 사상,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 Norman L.Geisler(1990), 칼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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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4.06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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