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제와 당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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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한무제와 당태종의 공통점
3. 한무제와 당태종의 차이점
4. 맺음말

본문내용

혹리란 것을 두었는데, 이는 가혹하게 법을 집행하는 관료들을 일컫는 말로써, 이 혹리들로 인하여 공포정치가 만연하게 되고, 경직된 관료체제는 개선되지 못한다. 이에 반해, 당태종은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도 볼수있듯이 간언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였고, 반대의 의견일지라도 경청하고, 좋은 점을 취해 그 의견에 따랐다. 그리고, 대외원정 또한 태종은 즉위이래 극력군사행동을 삼갔다. 돌궐과 토번에 대한 원정도 최소한도로 국한하여 민생의 안정을 헤치지않는 범위내에서 행해져왔다.
혹리
혹리란 전제 권력의 조아(爪牙)로서 가혹하게 법을 집행한 관료들에 대해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붙인 명칭이다. 『사기』의 혹리열전에 11명의 전기가 기재되어 있는데 그 중의 9명이 무제시대에 활약한 인물들이었다. 이같은 인물들이야 말로 전제 권력이 그 지배를 관철하기 위해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이다. 守成篇, <<앞의 책>>
(2) 경제적인 부분
한무제는 상홍양(桑弘羊), 동곽함양(東郭咸陽), 공근(孔僅) 등 상인 출신 인사들을 대거 등용하여 국가의 재정을 총괄토록 했는데, 이들이 추진한 전매제도나 균수,평준법등은 민생의 질을 향상시키기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계속되는 흉노정벌로 인한 부족한 국가재정을 메우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무리한 해외원정을 삼가고, 정관원년에 관중(關中)에 기근이 들었들 때 국고를 열어 식량을 나눠줬던 당태종과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4. 맺음말
이제껏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황제인 한무제와 당태종이라는 두 영웅을 비교해보았는데, 한무제는 문경의 치를 토대로하여 유교를 바탕으로한 강력한 전제왕권으로 한나라를 열어간반면, 당태종은 그 출신부터 북방민족과의 혼혈로써 인종과 국적에 차별을 두지않는 이른바 중화사상(中華思想)이 없는 개방적인 정책으로 당나라를 열어갔다. 이 두사람의 이러한 색깔은 중국에서 가장 중국적이었던 한나라와 가장 국제적이었던 당나라라는 중국역사상 가장 강력한 두 왕조의 특색에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守成篇, <<中國皇帝列傳>> , 汎潮社 , 1985
富士正晴, <<인물로 보는 중국역사>> , 신원문화사 , 1994
김용규, <<인물중국사>> , 학민사 , 1994
徐連達吳浩坤趙克堯 , <<중국통사>> , 청년사 , 1989
황인우, <<巨視中國史>> , 까치출판사 , 1997
서울大學校東洋史學硏究室 編 , <<講座 中國史Ⅱ>> , 지식산업사 , 1989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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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1.06.12
  • 저작시기2002.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8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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