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파의 경제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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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실학의 발생

2. 실학의 성격

3. 실학파 경제사상의 출현

4. 실학의 발달과 체계화
 (1)실학의 성격
  실사구시
  이용후생
  경세치용
 (2)실학의 선구자
 (3)실학의 체계화
 (4)실학의 집대성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의 사상에 대하여,,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학문
   경세학,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사상

5. 실학파의 국민주의 경제개혁론
 (1)경제개발론
  ~북학의
  -자원개발의 이용
  -농·공·상업을 개발
  -교역의 유통
  -유통구조의 개선과 도량형제도의 정비
 (2)근대기업경영론
 (3)기술혁신론
  -공업분야의 혁신론
  -농업분야의 혁신론
  ~기예론
  ~여전론
  -사회간접분야의 혁신
 (4)국제무역론

6. 실학파 국민주의 경제사상의 평가

본문내용

것이고, 농사를 후하게 하여 이가 있도록 하는 것이고, 농사를 대우하는 것이라 했다. 농사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농기구를 개량하되 나라에서 철공장을 설립하고 농기구를 제작하여 농민에게 보급시키라고 했다. 농사를 후하게 하기 위해서는 수리를 시설관리하고 각 농가는 가축을 기르고 과수를 재배하는 등 다각농업으로 농가수입을 증대시키고, 또 정부로서는 세리를 바로잡아 농가지출을 합리화하도록 하며, 농서를 간행하고 농사를 지도하여 농사방법을 개량하여야 한다고 했다. 농사를 후하게 하기 위해서는 과학제도를 개혁하여 양반이나 선비들도 농사에 진출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당시에는 대단히 혁신적인 이론이다. 그리고 박제가는 농사시험장과 농사지도원제도를 설치하여 농업경영의 기술혁신을 도모할 것을 주장하였다.
우리가 실학자의 농업혁신론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정약용의 ‘여전론’이라 하겠다. 정약용은 이 ‘여전론’에서 다음 세 가지 목적을 달상하고자 하였다. 첫째는 농지는 농사하는 자만이 갖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는 수확물은 투입한 노동력에 따라 합리적으로 분배하자는 것이고, 셋째는 농민들의 공동경작을 통하여 농업생산량을 증대하자는 것이다.
~기예론
이 글은 실학자 정약용의 현실 개혁론이 집약되어 있는 것으로서 세 편으로 짜여져 있다. 중국의 선진 기술을 받아들여 백성들의 편리하고 풍족한 생활을 도모할 것을 주장한 논설문이다. 인간은 짐승과 달리 불리한 신체 조건을 타고 태어났지만,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사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중국의 최신 기예를 받아들여 우리나라도 유구나 일본처럼 강대하고 부유한 국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전론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주장한 토지개혁론.
저자의 토지개혁론 가운데 가장 먼저 마련된 것으로, 저자의 시문집 《여유당전서》의 <전론>에 담겨 있다. 자연적인 지리와 경계를 고려하여 대략 30호 정도로 말단 행정조직인 여를 만들고, 여의 경계 안에 있는 토지는 여민이 공동 소유한다. 여민은 가부장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인 여장의 지휘를 받아 이 토지를 공동경작하고, 여장은 개개인의 노동량을 장부에 기록하였다가 가을에 수확한 생산물을 한곳에 모아놓고 기여한 노동량에 따라 분배한다. 이때 국가에 내는 10분의 1세와 여장의 봉급을 먼저 공제한다.
여전제의 실시는 병농일치적인 군사제도와도 결부될 수 있다. 이 제도를 보급하기 위해서 농민의 자유로운 이주를 보장할 것을 주장하고, 그렇게 되면 10년 안에 전국의 인구분포 및 토지 이용도가 고르게 된다고 보았다. 이 밖에 수공업자나 상인은 생산품 또는 상품을 농민의 곡식과 바꿈으로써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놀고 먹던 양반층)은 생산활동에 종사하거나 그들의 지적 능력을 이용하여 농사기술을 진보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10분의 1세를 거둠으로써 경비를 충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와 농민의 사이에 있던 중간 착취자가 없어져 국가재정은 물론 농민의 생활도 넉넉하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 개혁론의 특징으로는 이상적인 농업생산의 형태를 공동농장적인 농업경영으로 설정하고, 농사짓는 사람만이 토지를 얻게 하되, 봉건지배층의 토지를 몰수하여 공동소유하며, 공동노동 ·공동경작 ·공동분배 함으로써 농민의 경제적 평등을 지향한 혁신적인 것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봉건적 신분관계 및 통치 질서를 유지한 위에서 실시하려 한 것이었으나, 봉건지배층이 경제력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역사적 조건에서 실현될 수 없는 다분히 공상적인 것으로, 저자 자신도 이 점을 인정하여 새로이 정전론을 전개하였다.
-사회간접분야의 혁신
조선후기 실학자들은 도로, 교량, 항만시설을 정비하고 교통수단을 개선하는 시회간접투자를 확충해야 국민경제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
조기준 박사는 한국자본주의 성립사론에서 이를 교통수단의 혁신론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은 오늘날의 경제학에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함으로써 경제개발정책을 기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였다.
실학자들은 길을 다꼬, 교량을 구축하고, 하천을 준설하고, 마·차·선박을 이용하여 경제적 경제적 효과를 증대시키려고 하였다.
이과 같이 박제가는 교통수단의 혁신이야말로 경제의 효과를 늘리고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제1차적인 요체라고 주장하였다. 실학자들은 국민경제의 번성을 위하여는 자원 개발이 절실하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나라는 자원은 많아도 기술이 부족하여 이를 개발 이용할 줄 모른다고 개탄하였다.
(4)국제무역론
박제가는 국제무역을 개방하는 길은 국가의 빈곤을 구제하는 데 도움이 되고 국민의 생활수중을 재고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박제가는 국제무역을 조속히 재개하고 문물을 교역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하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간사하여 항상 이웃나라를 넘겨보고 있기 때문에 조심하고, 안남·유구·대만 등지는 당시로는 멀어서 교역하기가 곤란하여 마땅한 곳은 중국뿐이라고 하였으며 특히 일본의 간교함을 일찍이 역설하여서 일본과 교역하는데 조심하라고 하여 국제적 식견을 밝히기도 하였다.
박제가는 외국무역을 원활하게 전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박을 건조하고 중국산성제도를 본받아야 하며 우리나라에 표류하여 오는 중국상선의 수로를 인도하여 친절하게 후대하여 정박지에서 교역을 열어 주어야 한다고 권장하고 있다. 박제가는 실학자로서 국제무역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조선산업, 무역제도, 항만 등의 조건에 중점을 두도록 하였다.
6. 실학파 국민주의 경제사상의 평가
이상과 같은 주체성있는 실학파의 국민주의 경제개혁론을 고찰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평가된다.
첫째로는 이미 18세기 말에 우리나라에서도 국민경제적 입장에 기본바탕을 둔 주체성 있는 경제개혁론이 경제이론으로서 탄생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조선 후기의 시대적 계급사조에서 상공업의 발달이 국민경제를 부유하게 하며 상업과 공업이 가치창출의 경제행위라는 경제사상적 배경이 도출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국민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 이룩되어야 한다는 점 등은 한국경제발전론의 뿌리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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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07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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