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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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 개관

II. 자유주의 정치의 다(多)차원성과 자유주의적 인간

III. 이론과 실제 그리고 무(無)정치적 공동체

IV. 복합다원주의와 정치

V. 맺음말: 정치철학과 신중성(prudence)

본문내용

그들은 또한 이익집단 다원주의를 포괄적 교리들--즉, 문화적, 도덕적 전통들--의 다원주의와 연계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집단이익 다원주의의 정치적 함의들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들의 사유방식은 복합 다원주의로 특징화되는 현대사회의 정치를 조명해주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현대 정치철학의 무정치적 특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의해 부분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즉,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에 개입된 주요 인물들은 일차적으로 정치이론가라기 보다는 도덕철학자들이다.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은 세계의 불확실성, 가변성, 예측불가능성을 혐오해왔다. 현상세계를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이해하려하지 않고, 그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상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는데서 위안을 찾았다 (Barber 1988). 그들이 윤곽을 그린 유토피아들은 빈번히 명확하고 단순한 원리들에 기초해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정치세계의 현실에 정면으로 대처하기보다는, 모든 까다로운 정치문제들이 제거되거나 최소화된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쉬운 방식을 통해 그 문제들을 회피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정치철학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들 역시 모든 정치문제들이 철학적 반성을 통해 도달한 한 두 가지의 단순한 기본원리들에 입각하여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롤즈가 제시한 정의의 두 원리들 및 드오킨의 동등한 관심과 존중의 원리, 그리고 노직의 정의에 관한 자격이론 등은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예컨대, 롤즈에 의한 원초적 입장의 설정은 개인의 선택이 상황적인 모든 요인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처럼 가정하며, 개인들이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관계적·상황적 조건들로부터 추상화시켜, 객관적인 관점을 취할 수 있는 것처럼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정치적 판단은 그와 같은 객관적 관점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는, 특정한 가치관들 혹은 이해관계들의 충돌과 마찰속에서 타협되고 조정된다. 정치적 관계속에 개입되어 있는 당사자들을 애초부터 특정한 관계로 이끎으로써 정치적 타협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그 당사자들이 추구하는 특수한 가치관이나 이해관계들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 정치적 관계를 해결할 목적으로 철학적으로 얻어진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관점을 취하도록 요청하는 것은 정치를 일종의 철학의 시녀로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롤즈의 『정의론』과 그에 대한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적 응수에 의해 부활된 현대 정치철학은 정치에 관한 철학으로서는 방향설정이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이래 '서구 정치철학의 전통'
) 서구정치철학에 일관된 전통이 있는가에 관한 문제는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문제이다. 예컨데, 거넬(John G. Gunnel)은 서구정치철학사에 전통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고 그러한 주장을 하나의 신화라고 주장, 그러한 신화형성에 있어 현대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들 ― H.Arendt, Leo Strauss, Eric Voegelin ― 이 미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Gunnel, 1986). 그러나 거넬은 신화형성에 있어서의 그들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전통의 평가를 둘러싼 그들간의 차이를 비교적 무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전통형성에 있어서의 그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들이 전통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말해 쉬트라오스와 뵈겔린은 정치철학의 고전적 전통의 계승자 내지 옹호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전적 전통을 찬양하지만 아렌트는 고전적 전통―특히 플라톤―에 대해서도 대단히 비판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바, 필자는 이와 같은 차이점이 그들간의 유사점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는 이 문제가 본 논문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플라톤(Plato)으로부터 마르크스(K. Marx)에 이르는 서구의 정치적 사고의 흐름을 전통으로 범주화시키는 일반적 추세를 그대로 따르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이러한 추세에 전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이 철학자들의 관심만을 반영해왔다는 아렌트의 비판은 현대 정치철학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Arendt 1958, 222-228; 1963, 107-112). 그러므로 필자는 복합다원주의 시대에 적실한 정치철학은 철학의 논리성이나 명료함에 정치를 순치시키기보다는 현대 정치의 독특한 성격을 반성의 대상으로 삼는 철학이어야 한다고 본다.
현대 정치가 복합다원주의 및 기술-산업발전의 구조적 진화과정과 맞물려있다는 인식은 현대 자유주의 정치를 철학적으로 투명한 원리에 의해 재구성하려고 하는 시도보다는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세력들의 역학적 균형을 모색하고, 현대사회의 구조적 특성으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예측불가능한 위험들의 관리에 치중하는 신중주의적 접근(prudential approach)
) 다문화주의 시대에 있어 정치적 사유의 한 가지 방향으로서의 신중주의적 접근에 관해서는 필자의 다음 글을 참조할 것. 김비환, 1996. "포스트모던 시대에 있어 합리성, 다문화주의 그리고 정치," 『사회과학』 35권, 1호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의 적실성을 높여준다.
) 물론, 이 지적이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도덕적인 중첩합의에 바탕을 둔 사회협력이라는 관념을 유토피아적인 것이라 하여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부분적이긴 하지만 도덕적 중첩합의는 존재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정치세계에 상당한 안정성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첩합의는 전체적으로 볼 때 이해관계 혹은 권력의 타협적 균형으로서의 정치세계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왜냐하면, 부분집단들 사이의 중첩합의는 그 중첩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집단들을 포함하는 보다 넓은 정치적 관계를 배경으로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의 복합적 특성은 정치의 세계가 합리적인 요소(가치관 혹은 인생관) 이상으로, 구조적인 요소 및 비(非)합리적인 요소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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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1.22
  • 저작시기2008.1
  • 파일형식한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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