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 탄생배경과 인물소개, 비너스 탄생 작품, 비너스 미의 작품 분석, 활동 조사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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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의 비너스

2. 비너스 탄생을 나타낸 작품 비교

3. 비너스의 미를 나타낸 작품의 비교

4. 결론

본문내용

해를 통해서였다. 초기에는 스승의 영향으로 성모자상-천사상 등에 열중하였고 양식적인 규범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봄」 이후 놀랄 만한 변신을 거듭하여 완전한 인간 중심의 회화로 이행하게 된다. 물론 그 후에도 종교화를 지속적으로 그렸다.
「석류의 성모」는 「비너스의 탄생」보다 1년 뒤에 그려졌다. 그래서일까, 이전의 엄숙한 종교적인 분위기와 달리 세속적인 색채가 짙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석류를 테마로 한 이 작품은 원형화로서의 구도적인 짜임새는 물론이요,보다 인간적인 체취를 담뿍 담아들임으로써 종교화의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한 차원 끌어올린 걸작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성모의 섬세한 얼굴 표정이 「비너스의 탄생」의 비너스와 닮았다는 점은 그 자신의 내부에 이상화된 여성상을 간직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비잔틴이나 고딕시대의 신적인 위엄의 모습으로부터 탈피해 오른손으로 강복하여 왼손으로는 석류의 껍질을 벗기려는 아기예수 또한 따스한 인간적 퐁모를 지니고 있다.
성모를 중심으로 대칭구도를 이루는 5명의 천사들은 성별 구분이 모호한 미소년-소녀들로서 당시의 피렌체적인 미소년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들 천사상은 우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수어린 표정을 짓고 있음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순결의 상징 백합과 사랑의 상징 장미를 대비시킨 것도 탐미와 금욕, 관능과 우수의 양극적인 이미지의 절묘한 조화를 염두에 둔 구성이다.
3. 2 밀로의 ‘비너스상’
밀로의 ‘비너스상’은 1820년 4월, 에게해의 키클라데스 제도에 속하는 한 섬인 밀로 섬에서 어떤 농부가 발견하였다. 발견된 당시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 미술사가들은 이것이 그리스 고전 시기의 거장 브라크시테레스의 작품임에 틀림없다고 흥분하였다. 하지만 머리 부분이라든가 아랫도리를 감싼 주름진 옷의 표현 양식에 헬레니즘 시대의 흔적이 너무 뚜렷하다는 이의가 제기되어 제작 시기와 작가를 둘러싸고 의논이 분분하였다. 논쟁 끝에 제작연대는 헬레니즘 시대인 기원전 1세기 초이며 얼핏 그리스 고전기인 기원전 4세기의 작품같은 인상을 풍기는 우아한 자태는 아마도 극단적인 사실주의를 추구한 헬레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고전 양식이 부활되었던 당시의 풍조 속에서 나온 것이리라 추정되었다. 없어진 팔이 도대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을 것인가를 두고도 제작연대에 대해서 만큼이나 의견이 분분했는데 아프로디테를 주제로 한 여러 그림이나 조각상들의 일반적인 관행을 두루 살피건대 오른 팔은 왼쪽 다리께로 내려져 있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또 왼팔은 앞으로 내밀어져 있었으며, 손바닥을 제쳐 그 위에 사과를 들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되었다. 아프로디테에겐 비둘기, 백조, 장미 등 여러 상징물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황금빛 사과여서 다른 그림이나 조각에도 자주 등장하였던 터였다.
밀로의 ‘비너스상’을 표현상에서 보면 어떠한 과장이나 왜곡도 허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의 인체를 더없이 섬세하게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사람의 몸을 그토록 차분한 눈으로 섬세하게 표현하는 일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고대 세계가 이룩한 그 어떤 문명에도 이처럼 사람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조각상은 없을 정도이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간 이외의 것에는 어떤 것에도 (사제나 전제군주, 심지어 그들이 믿는 신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들은 내세의 행복보다는 현재의 삶에 충실했고 낙관적이고 합리적이었으며 영원하고 장엄한 것 보다는 유한하고 자연적인 것을 추구했다. 수많은 고통이 따를지라도 그들에겐 인생이란 자체로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밀로의 ‘비너스상’에는 바로 그런 그리스인들의 사상과 인생관이 녹아들어 있다.
신의 뜻대로 살았던 죄많은 인간의 시대였던 중세와 비교해보면 이 점이 더욱 뚜렷해진다. 그들에게는 현재의 삶보다는 내세가 중요했고, 육체는 죄악과 타락의 근원이었으며, 개인의 바램보다는 교회나 사제의 명령이 우선이었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덧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서의 말씀을 전달하는 데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 경우에도 가급적 자세한 묘사를 피했다. 무언가를, 더구나 사람의 몸 같은 위험한 것을 자세히 묘사한다는 것은 죄악에 물들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중세엔 물론 한 명의 비너스도 탄생하지 않았다. 성모 마리아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볼 수 있다.
3. 3 작품의 비교
위에서 살펴봤듯이 밀로의 ‘비너스상’은 어떠한 과장이나 왜곡없이 여성의 인체를 섬세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의 ‘비너스의 미’는 아름다운 여성 인체의 사실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등장하는 비너스의 자태는 아름다운 몸매를 자연의 것으로서 순진난만하게 자랑하게 한 고대 그리스의 미의 여신이 아니다. 이미 부끄러움을 알게 된 젊은 여성이 빨리 숨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살짝 보여 주려고 서 있는 듯한 자태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눈부신 살갗의 비너스의 나체를 형상화하는 미묘한 곡선은 파도치는 금발의 머릿결 움직임과 잘 조화되어 있고, 화면 전체는 시적인 미의 분위기로 충만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결론
이번 과제를 통해 비너스의 탄생배경과 그리스 로마신화속의 비너스를 알아보면서 비너스가 신화속에서 미친 영향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이야기를 레포트에 다 담을 수가 없어 짤막한 문장으로만 표현한 것이 아쉽다.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신화 속에서는 음탕한 여자로 낙인 찍혔지만 비너스를 표현하는 인간들은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나타낸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너스의 아름다움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작품을 볼 때 그 작품의 기원을 알게되니 더욱더 감상의 눈이 커지는 것 같아서 참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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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2.05.25
  • 저작시기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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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6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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