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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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대 왕족들의 이야기가 아직 머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묘>
고궁투어의 마지막 순서 종묘. 경복궁과 함께 1박2일에 나왔었다. 확실히 다른 궁들보다는 알고 있는 것이 적었고 실제 사람을 위한 장소인 궁과 달리 죽은 사람을 위한 장소라는 것에 새로운 호기심이 일었다.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최고의 사당인 종묘. 왕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에 반드시 국가의 도읍지에 세워야 했다. ‘궁권의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 는 주례에 따라 경복궁의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 종묘와 사직단. 이 두 개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면 종묘는 조상들을 모셔 놓고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면 사직단은 우리 한반도에 깃들어 있는 땅의 신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세우거나 왕위에 오르게 되면 현재 우리가 주소지를 등록하는 것과 같이 조상님과 이 땅의 신께 인사를 드리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종묘의 입구를 들어설 때부터 궁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건 바로 첫 대문. 대문이 사당에서 볼 수 있는 가운데는 문이 닫혀있고 위쪽에 틀로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혼이 자유로이 들어오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가장 높은 분이라는 왕도 한발 물러나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궁궐과 같은 삼도가 있으나 삼도를 사용하는 이는 다르다. 궁에서의 어도와 같은 곳은 신로로 조상님들이 지나다닌 길이라고 볼 수 있고 그 좌우로 임금과 왕세자가 걷도록 되어 있다.
종묘는 크게 두 건물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정전은 왕과 왕비의 승하 후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다음 그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건물로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된다. 정전의 마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세 곳에 있다. 남문은 신문으로 혼백이 드나드는 문, 동문은 제례 때 제관이 출입하고 서문은 악공, 춤을 추는 일무원, 종사원이 출입한다. 종묘에서 하는 제례는 길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공과 일무원을 출입시켜 마치 축제라도 하듯 음악과 함께 하는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정전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재위중인 왕의 4대 조상, 역대 왕 중에서 특히 공덕이 큰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셨다고 한다. 왕들의 공덕을 어떻게 평가하여 정전에 두는가 하냐면 이건 정말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이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 감히 왕의 공덕을 평가하겠는가. 실제로 왕들의 공덕을 평가할 때는 고조까지 내려가서 그 시대의 신하들이 선왕의 업적을 평가한다. 그리하여 단명한 왕, 업적이 적은 왕은 정전이 아닌 영녕전에 모셔지게 된다. 그리고 왕위를 박탈당한 연산군과 광해군은 종묘에 신주가 모셔져 있지 않다고 한다.
정전은 내부에 모실 신주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옆으로 증축하여 늘렸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왼쪽에 있는 태조가 모셔진 건물은 약 500년은 족히 넘은 건물이다. 건물 앞에 있는 넓은 월대는 정전의 품위와 장중함을 잘 나타낸다. 이 월대의 높이의 높이가 평균 사람들의 가슴 높이 정도 되는데다 정전의 지붕이 길게 내려와 있어 사람들이 더 가볍지 않고 압도당하는 기분을 잘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궁궐이 아니기 때문에 화려함보다는 정적인 분위기가 풍기기 때문에 존엄한 분위기가 더 사는 것 같다.
종묘의 또 다른 건물인 별묘 영녕전. 영녕전은 세종 때 정종의 신주를 정전에 모시며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자 정전에 모시고 있던 신주를 다른 곳에 옮겨 모시기 위해 새로 지은 별묘이다.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라 뜻을 담고 있어서 인지 정전과 같은 묘이지만 인자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듯 따스한 분위기를 느꼈었다. 이 영녕전 가운데 4칸에는 역대의 왕이 아닌 태조의 4대 조상을 모신 곳으로 다른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영녕전이 정전과 다른 점은 종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옆으로 증축하였다면 영녕전은 가운데 4칸이 먼저 지어져 있었기 때문에 좌우로 번갈아 가면서 증축해 나갔다.
이 세상에 어느 곳에서도 이런 정적인 분위기에 엄숙함을 압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곳은 없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도 종묘에 와서는 숙연해지고 종묘의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에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게다가 종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무형, 유형문화재 모두에 등록 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번 답사를 통해서 궁궐의 화려함부터 종묘의 엄숙함 모두를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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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2.11.12
  • 저작시기2012.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75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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