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관광자원]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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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주요궁궐의 관광자원

Ⅰ. 경복궁

1. 경복궁의 개요
2. 경복궁의 주요관광자원
가) 광화문
나) 근정전(국보 제223호)
나) 사정전
라) 경회루(국보 제224호)
마) 강녕전
바) 교태전
사) 자경전(보물 제809호)

Ⅱ. 덕수궁

1. 덕수궁의 개요
2. 덕수궁의 주요관광자원
가) 대한문
나) 중화전
다) 궁중유물전시관(석조전 동관)
라) 덕수궁미술관(석조전 서관)
마) 즉조당

Ⅲ. 창덕궁

1. 창덕궁의 개요
2. 창덕궁의 주요관광자원
가) 돈화문(보물 제 383호)
나) 인정전(국보 제 225호)
다) 선정전(보물 제 814호)
라) 희정당(보물 제 815호)

Ⅳ. 창경궁

1. 창경궁의 개요
2. 창경궁의 주요고나광자원
가) 홍화문
나) 명정전
다) 관천대(보물 제 851호)

본문내용

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대문은 광화문으로, 홍예문이 넷이 열린 육축(陸築) 위에 올려 세운 구조이다. 돈화문과는 그 모습이 완연히 다르다. 창덕궁의 모든 구성은 이궁(離宮)으로서의 조출한 맛을 지니고 있다. 돈화문은 그런 구조를 대표한다. 창덕궁과 더불어 돈화문도 임진왜란 때 불에 함다. 복구된 것은 선조 40년이었다. 조선궁궐에 현존하는 중문으로서는 제일 오래된 건물이다.
나) 인정전(국도 제225호)
임금이 높이 않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어좌를 중앙에 두고 여러 가지 장엄을 베풀면서 권위 있게 지은 법전이 각 궁궐마다 있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법전이다.
이중의 월대 위에 중층으로 세워줬으며, 내부는 아래 위층이 트여 있다. 전각안 천정 중앙에는 봉황 한 쌍이 장식되어 있고, 북측 중앙에 용상이 설치되어 있다.
다) 선정전(보물 제 814호)
창덕궁의 편전으로 중앙에 임금이 일월오악병(日月五嶽屛)을 배경으로 앉고, 그 앞에 대소산료들이 위계에 따라 동서로 암았다. 동쪽에는 문관이, 서쪽엔 무관들이 자리했으며, 한쪽에 사관이 않아 문답하는 내용을 속기하여 사초(史草)로 삼았다. 편전은 외전 중 하나이며, 임금의 연침(燕寢) 가까운 자리에 건립된다. 선정전은 아홉칸 밖에 안 되는 단층의 낮고 아담한 건물로, 외벌의 댓돌을 넓게 설치한 것과 지붕에 푸른색의 유약을 입힌 청기와를 사용하였다.
라) 희정당(보물 제815호)
대조전 남록에 있으며, 임금의 거쳐로 평시 임금이 정사를 보던 곳이다. 중앙의 정면 3칸과 측면 3칸을 통간(通間)으로 하여 응접실로 사용하였고, 응접실의 서편은 같은 크기로 회의실로 사용하였다.
고종은 경복궁이 완성되기까지는 여기에 머물렀고, 순종이 승하할 때 끝까지 여기에 있었다. 대한제국은 관습과 개화에 따른 신식문물을 절충하고 있어 임금의 처소도 전각은 옛 법에 따르고, 내부는 서양식으로 장치하는 방식을 반영하였다.
지금의 전각은 1917년 화계를 입어 소실되었던 것을 1920년에 경복궁 강녕전을 헐어서 중건한 것이다.
4) 창경궁
(1) 창경궁의 개요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 조선의 이궁으로 창건되었다. 원래 이 끓은 세종대왕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1418년에 건립한 수강궁이 있었다. 성종은 세조의 비 정희왕후와 생모가 되는 소혜왕후와 양모인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위하여 창경궁을 창건하였다. 광해군 때 건립된 정전인 명정전이 있어 조선왕궁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정전이 있는 왕궁이다.
(2) 창경궁의 주요관광자원
가)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으로 명정전과 마찬가지로 동향하였다. 조선 성종 15년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광해군 8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론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의 3칸에는 각각 판문을 달고, 그 위로는 홍살을 하였으며, 북쪽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마련되어 있다. 이층은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꾸몄다. 홍화문의 좌우로는 궁장(宮培)이 남북십자각을 지나 궁역을 형성하였다.
나) 명정전
조선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이 조성되고, 그 정전으로서 명정전이 세워졌다.
이때 명정전은 경복궁이나 창벽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이었다. 이는 창경궁의 지세에 따른 것이다. 그 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1616)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다른 궁의 정전과 같이 이중의 월대를 두어 그 위에 건물기단을 마련하고, 큰 사각주초 위에 원형의 운두 높은 주좌(柱座)를 조각하여 초석을 배열하였다. 월대의 형식은 다른 궁의 것과 달리 지형에 맞추어 전면 동쪽과 북쪽 일부만을 이중단으로 하고, 건물 좌우와 뒷 편에서는 1단으로 하였다. 평면으로 보아 정면 5칸과 측면 3칸에 후퇴(後退)를 한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겹처마이다.
단청은 모로단청을 하고, 특히 천정판에는 화려한 연화문의 반자초 단청(丹靑)을 시문했다. 월대의 전면에는 명정전 어간에 맞추어 중앙에 삼도의 이중계단이 놓였다. 가운데 어계의 폭은 2.4미터이고, 양측 협계(淡階)의 폭은 각 1.3미터이다.
상하계단은 모두 6단씩으로, 어간의 답도(踏適) 석판 중앙에 날개를 활짝 편 한 쌍의 봉황을 조각해 장식했다. 하층 계단 앞에는 명정문과 연결되는 어도가 있고, 좌우에 24개의 품계석(品階石)이 있다.
다) 관천대(보물 제8지호)
관천대는 소간의(小簡儀)를 설치하여 천문을 관측하던 곳으로, “서운관지”에 보면 숙종 14년(1688)에 조성된 것이다. 원래 창덕궁 금마문 밖에 있던 것을 일제 때 창경궁으로 옮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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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1.22
  • 저작시기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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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2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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