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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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역사의 특징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자연주의
2. 음양오행설
3. 풍수지리설
4. 유교문화
5. 공동체, 가족, 개인
6. 농경, 정착사회
7. 전통신앙

본문내용

부터 습식 문화였다. 밥과 국(찌개)을 주식으로 먹었고 습식문화권 이기에 물이 중요하였고 물맛을 중요시 했으며 숟가락이 발달했다. 일본, 중국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숟가락이 주도구이고, 젓가락이 부도구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유목문화에서는 불가능한 온식 문화권이다. 따뜻함을 유지하기 위해 유기 사용이 발달 했고, 좌식문화이기에 소반(밥상)의 형태가 여러 가지가 있고 소반의 다리 모양에 따라 이름이 정해지기도 했다. 유목문화권에서는 말안장을 이용하여 발효를 했고 정착문화권인 한국의 전통문화에서는 콩을 활용하여 발효를 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아침밥 문화가 발달했다. 그 이유는 쌀이 주식이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아지면서 전체적인 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쌀 농사를 지었고 살 농사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부지런해야 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든든히 먹었고 점심은 먹지 않았으며 저녁은 취침을 이유로 간단히 먹었다.
의생활의 관점에서 보면 유목문화로부터 들어온 호복과 바지, 저고리는 농경문화의 생활권에서는 적합하기 않았다. 점점 폭이 넓고, 허리띠가 없어지고, 저고리가 짧아지는 등 농경에 맞게 의복이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낮에 농사를 짓는데 좀 더 용이하게 햇볕을 잘 차단해 주는 백의 문화가 발달 했다. 마지막으로 유목과 달리 정착생활은 주머니가 그렇게 필요치 않았다. 대신 복주머니를 사용하였고 유목문화는 장갑이 필수이고 정착문화는 폭이 넓은 옷에 방한용으로 토시가 발달했고 여름에도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여름용 토시도 쓰였다.
7. 전통신앙
전통신앙이란, 옛날부터 믿고 우러르는 모든 것을 말 한다. 대체로 신앙과 종교를 비교하는데 신앙은 대상이 포괄적이고 교리와 교당이 없는 것이고, 종교는 대상이 제한적이고 교리와 교단이 있는 것이다. 이런 신앙이 체계화되면 종교가 되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종교적 차원이 아닌 신앙의 관점에서 한국 전통신앙의 역사적 변화와 특징, 그리고 실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원시신앙에는 애니미즘, 토테미즘(특정동물을 조상으로 모시는 것), 샤머니즘(샤먼을 통해 숭배하는 것)이 있다. 샤먼, 예를 들어 단군왕검, 이 제정일치 사회를 다스리다가 국가가 생기면서 제정분리가 되어 제가를 다스리는 사람과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커지면 나라를 통합하는데 문제가 생긴다. 각 부족마다의 토테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합 후에 정신적인 통합이 어려웠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각 부족마다의 신을 지방신으로 지정하고 전체를 어우를 수 있는 종교가 생겨났다.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 도교와 불교이다. 도교는 자연주의 이념으로 강력한 수단이 되지 않지만, 불교는 윤회사상의 기반으로 지배 이념이 될 수 있었고 Buddism을 Buddha로 ‘깨달은 자’로 해석하여 어느 곳이나 깨달은 자가 나올 수 있기에 어느 종교 이념이나 흡수가 가능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지나면서 불교는 국교로 자리 잡았고 무속, 도교를 모두 융합하는 역할을 했다. 불교 행사라는 이름으로 국가 제례를 행했으며 여기서는 불교 이외의 색체를 띠는 도교와 무속 등의 행사도 있었다. 이런 불교는 고려때 까지 국가의 전체를 관장하는 신앙이 되었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영향으로 불교가 흩어지며 민간신앙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유불 통합도 시도 했으나 유교는 불교가 필요치 않았기 때문에 반대파의 반대로 통합이 실패했다. 대신 국가에서 관장하는 유교신앙과 민간신앙이 공존하게 되었다. 조선후기에는 왜래 문화가 들어왔다. 유목문화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 같은 신이 존재하며 생활이 험난하기 때문에 유일신이 필요했고 배교는 용납지 않았다. 반면 농경문화는 불교, 도교로 유일신으로는 통합이 되지 않기에 다신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후기에 기독교가 들어오자 박해를 가하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동학(천도교), 원불교, 대종교와 같은 신흥 종교가 생겨났다.
한국 전통신앙의 특징은 인간과 신이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삶의 곳곳에 있는 자연물을 대상으로 하는 등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신의 대상 역시 다양 했다. 하지만 이런 신앙의 목적이 복을 기원하는 기복 신앙이다. 신앙의 목적은 기복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에 전통적으로 기복을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을 고쳐먹어야 할 것이다.
한국 전통신앙의 실례를 보면 조선시대에는 국가 사전이 있었다. 대사, 중사, 소사로 구분하여 대사는 왕이 제사장으로 죽은 왕들을 제사지내는 종묘, 영령전이 있고, 땅의 신,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이 있었다. 중사는 관찰사가 제사장으로 백성들이 깊게 믿고 있는 자연물인 풍, 운, 뇌, 우, 악, 해, 독을 신으로 모셨고, 처음 거둔 농사, 누에, 기우제를 받아먹는 선농, 선잠, 우사의 신이 있었으며 공자, 단군이하 역대조상인 역대시조를 모셨다. 소사로는 말의 신, 별(도교적 성격)의 신, 추위를 다스리는 신(사한), 악귀에게 드시는 신(영제, 포제)등이 있었다. 한국 전통사회는 공동체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마을에도 마을신이 있었다. 신앙의 대상으로 처음에는 당나무, 누석단, 장승, 솟대 이었고, 후에는 신의 건물을 지어서 성황당, 서낭당 이라 불렀으며 지역에 따라 산 지방은 산신당, 바다 지방은 용산당이 있었고 도교와 유교에는 칠성각으로 마을의 동신이 다양했다. 또한 마을에는 무속과 정토신앙, 미륵신앙 등이 깔려 있었다. 마을과 마찬가지로 집안에도 집을 지키는 집지킴이가 있었다. 조상신으로 집주인을 보호하는 제석신, 아이들을 지켜주는 삼신이 있었으며 유교사회에서는 사당을 지어 섬겼으며 일이 생길 때 제례를 행했다. 생활공간에서도 신이 있다고 여겨서 대표적으로 성주신(건물신), 문간신, 방위신, 땅의 터주신, 멀리서 오는 악귀를 막아주는 지붕신, 부자가 되는 업신, 먹는것을 담당하는 부분에서는 부뚜막신인 조왕신, 장독대신인 칠성신이 있고, 우물의 용신, 화장실 귀신인 촉귀 등 수 많은 신들이 집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이런 가정신은 여성이 담당하여 굿과 고사 등을 지냈으며, 집지킴이를 보면 집안에 신을 기리기 위해 곡식과 물을 이용한 것을 보면 농경사회와 관련된 것을 볼 수 있다.

키워드

역사,   한국,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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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6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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