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게르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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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마르탱게르의 귀향

1. 경제 공동체로써의 가족과 농촌사회의 변화
2. 높은 문맹률
3. 경제적 합의로써의 결혼
4. 프로테스탄티즘과 창안된 결혼
5.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6. 교회와 주술의 공존

Ⅲ. 맺음말

본문내용

따르는 반면 한편으로는 주술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을 통해 16세기 프랑스 농촌 마을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다.
Ⅲ. 맺음말
한 때 우리사회의 지성계를 휩쓸고 지나간 '포스터모더니즘' 열풍은 각계각층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지나갔다. 그것이 표방하던 '틈새, 불연속성, 텍스트화' 등은 기존의 갑갑한 '모더니티'의 세상을 살아가던 우리들에게 시원한 청량 음료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차이'와 '틈새'를 찾아내서 보여주려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은 마치 철 지난 유행 상품처럼, 그저 모더니티에 지친 지식인들이 한때의 머리식힘을 위해 취급했던 철학적 사조가 되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한 때 포스트모더니즘에 열광했던 많은 지식인들이 "아직 근대화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탈근대화'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며 다시 그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 하나의 철학 사조를 그저 유행으로써만 취급할 수 있다는 말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철학 사조 역시도 인간의 삶 속에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거늘. 설령 그것이 우리네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제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관념'과 '세상보기'까지 외면해서는 안되었다.
그런 우리에게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역사쓰기'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텡 게르의 귀향>이다.
이 작품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역사서술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역사학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형식으로 접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고루하고 딱딱한 '교과서적' 역사서술이 아닌, '이야기'로써의 역사서술. 물론 여기서의 '이야기'는 순전히 창작된 그런 것이 아닌, 철저히 사료에 의거하되 그 사료가 '언어'의 장막으로 덮어버리고 있는 '실재의 틈새'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역사적 상상력'에 의한 이야기를 말한다.
여기에는 많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 체계들이 동원되고 있다. 진즈부르크가 '치즈와 구더기'에서 보여주었던 미시사적 서술 - 이것은 마치 탐정이 아주 사소한 단서를 가지고 전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의 미메시스(mimesis)를 보는 듯하다 ―이나 미셸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에서 보여준 '텍스트의 고고학'―최초의 텍스트를 덮고 있는 수많은 시간의 관념들을 파헤쳐 내려간다는 점에서 그것은 가히 '고고학'이라 불릴 만하다 - 등이다. 또 로버트 단턴이 '고양이 대학살'에서 보여준 '치밀한 묘사'―우리가 '역사 속의'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관념으로부터 철저히 벗어나는 역사 속의 인물과의 동일시가 중요하다 ―등 모두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역사 서술을 이루고 있는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신문화사적 서술'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신문화사적 서술이 우리네 역사학의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 자체도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관념인 만큼, 결코 그 자체로써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화사적 서술에 대한 우리의 진지한 자세가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직까지도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헤매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 구조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부분'들을 볼 수 있는 시야의 확대를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거대사적 서술'은 브로델이 비판했듯이 "다양한 관점에서의 조망이 가능한 여러 개의 방을 가지고 있는 집이지만, 그 집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전체적인 구조는 보면서, 정작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신문화사적 서술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상보기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제 그것은 유행이 지난 것이다'며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열기가 식어버린 것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신문화사적 서술이 시도되었다면, 그것이 당시를 살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후예로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갖는 진정한 의미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아직 근대화도 이룩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탈근대화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근대화 '너머'의 것을 미리 봄으로써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의 근대화를 이루어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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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3.20
  • 저작시기2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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