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문화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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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과 일본의 문화비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일본이란?
2. 한ㆍ일 간의 역사
3. 일본의 문화(한국의 문화와 비교)
4. 한ㆍ일 관계에 관련된 영화

본문내용

러나 이 발전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부분이 적어지고 등장인물의 회화부분이 많아져 문학성이 떨어진 반면 연극성이 강해지면서 더욱 발전했다. 이 때 인형과 조정술도 현저한 발전을 이룩하며 조루리의 3대 명장이라 불리는 ‘스가와라덴쥬테나라이카가미’, ‘요시쯔네센본자쿠라’, ;가나데혼츄신구라’가 성립된 것도 이 시기로, 인형조루리의 황금시대라 일컬어진다.
분라쿠의 내용은 주제와 내용에 따라 시대물과 세태물, 무용극 등으로 분류한다. 시대물은 신화시대를 비롯한 에도시대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귀족과 무사들의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연출이나 연기, 작곡 등의 면에서 과장되는 면이 많고, 의상이나 무대도 화려하며 양식성이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세태물은 은 세상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로 서민들의 일상사를 소재로 신분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사랑을 다룬 낭만적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5. 에도의 풍속도 - 우키요에
에도시대의 상업의 발달은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조닌을 중심으로 새로운 서민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 때 에도의 미술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에도시대 서민들의 풍속을 그린 ‘우키요에’이다. 유키요에는 가부키 배우, 유곽의 풍경, 유녀들의 초상화, 도회 여성, 서민들의 풍속등 생활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를 표현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일본의 출판이 발전했다.
우키요에는 육필화가 대부분이었나 출판사가 발달하면서 목판화가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따라서 연예인의 브로마이드처럼 판매되기 시작했다. 우키요에가 대중화 되면서 대량생산이 필요해지고 전대의 화가들에 비해 전문적인 기교가 미숙했다 하지만 판화라는 장점으로 칼을 사용한 예리하고 긴장된 선의 묘사로 인해 판화 자체가 갖는 특이한 미를 발견했다. 따라서 이 대까지 모든우키요에는 천편일률적이고 몰개성적이었다.
우키요에의 미술사적 일대 변혁을 이룬 것이가쓰시카 호쿠사이로 이 최초로 풍경화 분야를 개척하였다. 그는 당시 유행한 서양풍의 동판화에서 힌트를 얻어69세에 불후의 명작 ‘부악삼십육경’을 완성한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명쾌하면서도 긴박감 넘치는 그림을 그려 우키요에를 한 단계업그레이드 시켰다.
후에 우키요에는 서양미술의 인상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말 유럽사회에 ‘쟈포니즘(Japonism)’이 열병처럼 번진것을 보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우키요에는 당시의 에드가 드가와 빈센트 반 고흐, 모네 등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6.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마쓰리
본래 마쓰리는 신사에서 종교의식을 복적으로 행해지던 종교행사의 일부였다. 일본 지역사회의 상징적 중심이자 대표적 종교시설인 신사를 중심으로 그 지역주민에 의해 오랫동안 행하여졌기 때문에 집단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마쓰리를 춘제, 하제, 추제, 동제로 나눌 수 있다. 주로 봄과 가을에는 풍작을 기원하고 그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농촌에서 마쓰리를 행하였고, 여름에는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천재를 피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의미에서 도시에서 더많이 행하여 졌으며, 겨울에는 새해를 맞이하며 개인이나 가정, 마을에 닥치는 질병이나 어려움, 불행 등의 액운을 미리 막기 위한 민속의례로서 행하여지기도 했다.
4. 한ㆍ일 관계에 관련된 영화
한반도
2006년 개봉
먼저‘한반도’이다. 이 영화는 거의 온 국민이 좋아할 영화일지도 모른다. 과거 일본과 우리나라의 불평등 조약에 관련된 진실을 찾은 어느 역사학자에 의해 일본에게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 진실의 열쇠는 다름 아닌 옥쇄에 있다. 국권침탈을 당한 뒤, 옥쇄조차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고종은 그 옥쇄를 가짜와 진짜로 만들어 후대에서 누군가가 그 진실을 올바르게 찾아주길 바랬다. 결국 그것을 찾아낸 역사학자는 우리의 모든 마음을 대변하듯이 우여곡절 끝에 진짜 옥쇄를 찾고 우리나라 대통령께서 일본에게 근엄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한다.
전반적인 내용이 줄거리는 이게 전부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과 마음이 다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국권침탈, 6ㆍ25전쟁의 2세대, 3세대라 할지라도 아직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이 완전히 식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영화를 접한 다음에 느낀 생각은‘나도 이렇게 국제적 위세를 떨칠 수 있는 한국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아직도 식민지배에 대한 아픔과 분노가 깊이 서려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픽션(Fiction) - 논픽션(Non-fiction)'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불꽃처럼나비처럼
2009년 개봉
얼마 전 개봉한‘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이 주제는 다양한 매스 미디어 매체를 통해 접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따라서 간략하게만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 영화의 주된 맥은 호위무사(조승우, 무명)와 명성황후(수애, 민자영) 간의 애정전선에 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 배경이 되는 궁은 단순한 장애물이 아닌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을 만든다.
영화 내용 중에 명성황후가 고종의 힘을 등에 업어 호가호위하는 모습을 싫어하던 흥선대원군은 명성황후를 죽이려하지만 실패한다. 역시 이 상황에서도 무명은 명성황후를 여자 민자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기에 끝까지 그녀를 배려한다.
이것을 알았을까? 일본 측에서 흥선대원군에게 조력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을 뿌리치며 자신의 부하에게‘자신의 딸’을 구하라고 명한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 영화는 한반도와는 달리 반전이나 역사를 변형한 요소는 없다. 단지 조선제국을 대표해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하는 민자영과 무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저력을 알리고 우리의 숭고한 정신을 돋보이게 한다.
영화이기에 이 영화도 평가를 내리자면 영화가 전체적으로 색감이 좋고, 포인트를 맞춘 것을 너무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꼭 하고 싶은 말을 집어내서 하는 것이 좋다. 또, 이 영화를 보고나서 우스갯소리로‘이 영화를 보면 다 애국자가 될 거야.’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 가격1,8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3.05.16
  • 저작시기2014.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46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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