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행정체제 (일본 관료제 발달과정, 공무원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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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의 행정체제 (일본 관료제 발달과정, 공무원 제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 론

제 1 장 관료제의 발달과정

제 2 장 공무원제도

제 1 절 선발․채용 분리주의 ………………………………………5
제 2 절 연공서열에 의한 승진제도의 운용 ………………………5
제 3 절 독특한 관료엘리트의 양성법 ……………………………6

제 3 장 관료인사시스템의 운용

제 1 절 심의관 제도 …………………………………………………7
제 2 절 파견근무제도 :󰡐슈코(出向)󰡑………………………………7
제 3 절 낙하산 인사 :󰡐아마쿠다리(天下り)󰡑 ……………………8

제 4 장 정책결정과정에서의 관료들의 역할

제 1 절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는 입장 ………………9
제 2 절 정치인들의 결정에 대한 보조자로서의 역할에 한정하여 이해하는 입장 ……………………………………………………………10
제 3 절 공생구조 속에서의 역할자로 이해하는 입장 ……………10
제 4 절 최근의 연구에서 주장하는 관료들의 역할 ………………12
제 5 장 관료문화 : 동질성의 형성

결 론

본문내용

리고 정치인들의 간섭 정도 는 성·청의 유형에 따라 크게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고위 정치지도자들의 상대적 영향력과 정치-행정간 통합은 자민당이 장기 집권당으로서 제도화됨에 따라 증대되어 온 것 같다. 1993년에 새로운 연립정권의 등장과 자민당의 세력 약화로 인해 관료와 정치인들의 상대적 영향력에 일부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 같지만, 관료들에 대한 당의 영향력이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하루아침에 불식시키기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 참고 : 일본 관료제 내부의 정책결정방식 - 상향식(bottom-up)방식의 지배
일본 관료제 내부에서 이뤄지는 정책결정에 있어서는 결정권이 아래로 분권화되어 있는 상향식(bottom-up)방식이 지배하고 있는 점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 형식적인 측면 : 대개 일상적인 행정업무는 과장보좌급에서 기안하여 그것이 점차 위로 전달되어 결재를 받는 순서를 거친다. 이 점에서 보면 아래로부터의 정책관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실질적인 측면 : 아래에서 올린 내용이 위에서 번복되는 일이 거의 드물며, 위에서 결정한 것을 아래에서 실무적으로 짜 맞추는 일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를 반증하고 있다고 하겠다. 기본적으로 상층부에서는 가능한 한 아래로부터의 의견과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의 정책 지원력을 동원하려고 한다.

제 5 장 관료문화 : 동질성의 형성

일본 관료제에서 나타나는 동질적인 관료문화는 일부 특정 대학출신자들의 관료들이 지배하는 구조를 통해 형성되고 있다. 정책형성에 참여하는 캐리어 공무원은 대략 2만 명 정도이다. 그 구성은 법학, 경제학 등을 전공한 사무관 그룹이 7-8천명, 기관(기술직)이 1만 2천명 정도이다. 그런 사무직 캐리어 공무원 가운데 약 3분의 2는 법학부 출신이며, 더욱이 그들 중 3분의 2가량은 도쿄(東京)대학 출신이다. 그래서 이들은 같은 학교, 같은 학과, 같은 교수 밑에서 강의를 듣고 수학을 했기 때문에 어떤 주제를 논하더라도 사고방식, 접근방식이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다. 관료사회의 특정학교 편중현상을 고치기 위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수상 1919. 10. 8 도쿄[東京]~ . 일본의 정치가. 도쿄대학 졸업 후 대장성(大藏省)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어학력을 인정받아 대장상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의 비서관이 된 뒤 1950년 대장상의 미국 방문, 1951년 샌프란스시코에서 열린 대일강화회의, 1953년 이케다-로버트슨 회의 등 전후 미·일간 교섭에 거의 빠짐없이 참여했다. 1953년 히로시마[廣島] 지역구에서 참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7년 중의원으로 바꾼 이래 6번 당선되었고, 1960년 수립된 이케다 내각의 참모로 1962년 경제기획청 장관이 되었다. 그후 사토[佐藤] 내각의 경제기획청 장관, 통산상을 역임했으며 미키[三木] 내각의 외무상, 후쿠다[田] 내각의 경제기획청 장관을 역임했다. 자유민주당 제일의 국제파로 알려져 있다. 1991년 11월 5일 총리로 임명됨으로써 미야자와 내각이 출범했다.
이었다. 그는 각 성·청에 도쿄대학 출신자의 채용비율을 절반 이내로 줄일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같은 대학 출신자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개혁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성·청, 특히 경제관련 성·청들의 집단의식은 물론이고 이들 관료들의 엘리트 의식은 대단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특히 내각책임제 입헌국가 정부형태의 한 유형. 일반적으로 의원내각제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융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제와 구분된다.
의 특성상 사무차관이 관료들의 인사권을 사실상 행사하기 때문에 정무직 장·차관은 지나가는 나그네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일본 관료들의 일반적 사고방식이다. 이와 같은 일본 관료들의 엘리트의식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최근 관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이 1994년 3월 중순부터 4월초에 걸쳐 중앙부처의 과장급 관료 2백 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3%(167명)의 관료가 정책결정을 주도하는 것은 정치가가 아니라 자신들이라고 응답하고 있다. 이들 관료들은 그 이유로 정치인들의 리더십 부족, 국회의원의 정책참모조직부재, 현 정권의 역량부족 등을 꼽고 있다.
물론 관료들의 엘리트 의식은 권위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일례로 1994년 2월에는 통산성이 각 경제단체에 정부의 감세정책발표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도록 압력을 가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국민들은 '일본은 누가 뭐래도 우리가 지킨다.’는 엘리트관료의 자부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듯한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박동서 (2000). 「비교행정론」. 서울: 박영사. 제9장 일본의 관료제 참고.
결 론
요즘 들어 청년층이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면서 공직에의 수요가 나날이 높아져가고 있다. 이번 과제를 위해 일본의 관료제를 조사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사실은 일본은 현재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공직을 거부하고 일반 기업에서도 구직자를 찾아다니는 등 인력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일본이 경기침체에서 많이 벗어낫다는 증거다. 일본의 관료제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불합리한 면이 많이 보였다. 캐리어와 논 캐리어의 차별, 낙하산 인사라든지 하는 것들은 분명 이유가 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국회의원들은 대개 우리나라의 그들처럼 당선되기 전에는 국민들 앞에서 마냥 굽실대다가 일단 당선만 되면 검정 세단에 몸을 맡기거나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등 불성실함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공직윤리에 있어서는 확실한 것이다. 심지어 일본의 국회의원들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인지. 과제를 하면서 이렇게 재밌게 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의 행정체제를 살펴보면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많은 것을 느꼈다. 이렇게 자발적인 학습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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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6.30
  • 저작시기2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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