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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동양의 자연관
1. 중국 상고대의 자연관
2. 춘추시대 및 공자의 자연관
3. 도가의 자연관

Ⅱ. 서양의 자연관
1. 합리주의적 자연관
2. 아리스토텔레스의 진화론
3. 크리스도교사상

Ⅲ. 성경의 자연관

Ⅳ. 중국의 자연관

Ⅴ. 바로크시대의 자연관

Ⅵ. 워즈워스의 자연관

Ⅶ. 에즈라파운드의 자연관

Ⅷ. 장자의 자연관

참고문헌

본문내용

달하여 일체의 것(만물)과 자신을 통일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바람과 추구뿐만 아니라 자아의식 자체마저도 우선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체의 통일은 내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모든 사물이 통일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본질양식이 기술된다. ‘ 그러고 나서 나는 너와 더불어 거대한 빛들 너머로 상승하여 거기에서 완전한 양의 근원에 이를 것이다. 그 다음에 나는 너와 더불어 어두운 지하세계의 문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완전한 음의 근원에 이를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완전한 대극을 이루는 세계의 구조를 체험하며 우주 전체를 떠돌아다닐 것이다. 장자는 초월적인 하늘의 도를 민중(만물)의도, 즉 내재적인 것 속으로 집어넣었다. 노자가 탐구한 귀환의 법칙에 따르면 하늘의 도는 통일로 되돌아가는 민중의 운동을 통해 자신에 도달한다. 장자는 이 복귀의 운동이 지닌 극히 내적인 인과성을, 위에서 언급된 바 있듯이, 만물에 도가 편재함, 나아가서 만물을 넘어선 도의 일반으로 기술했다. 도가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면,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직관이 필수적이다. [장자]에는 마음의 욕, 자기망각 등의 많은 노력들이 내면의 직관에 이를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되어 있다. 외부세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내적인 자기 해방은 고유한 도의 내적인 발견으로서도 타당하다. 그리고 역으로 고유한 도의 내적인 발견은 외부세계로부터의 해방을 보증해 준다. 이념과 현실 및 이 양자가 맺고 있는 연관은 항상 철학의 대상이었다. 그 원래의 의미에 비추어 볼 경우에도 도라는 글자는 이미 사상, 이성을 상징하는 머리(首)를 포함하고 있다. 이 글자의 나머지 부분을 이루는 것은 변화(行)로서, 이것은 실천연관성이 강하게 착색된 중국에서는 삶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로 간주된다. 머리와 변화의 연관은 儒家의 국가 철학에서 장자에 이르기까지 만물의 궁극적인 법칙과의 합일, 즉 사상적 법칙과 현실적 삶의 통합가능성을 구명하려 했던 모든 노력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정신적 집중은 너 자신을 보호해서 육체적인 것은 저절로 강해진다.” 여기서 본질을 직관하는 기법은 장수를 위한 수단으로 되어있다. 장자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논거로 삼는다. “나는 이 통일,(정신과 육체의) 융화를 보호, 유지한다. 그리하여 나는 나 자신을 1200년 동안이나 유지할 수 있었다.” 장자는 “도는 만물을 통일 시킨다”는 법칙을 표명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든 사상이 승화하여 이르는 궁극적인 통일이다. 도는 모든 대립이 분리되지 않은 채 결합되어 있는 궁극적인 현실이다. 때문에 이 최상의 현실 속에서 너와의 모든 단계(노자)뿐만 아니라 주관으로서의 자아 역시 소멸해 버리고, 오로지 도만이 타당한 것일 수 있다. 도속에서 최상의 인간은 자아로부터 자유롭다. 달리 말하자면 정신적인 인간은 만들어진 사물로부터 자유롭고, 召命을 받은 인간은 이름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도를 통해서 하나이며, 이 본질직관은 각자 자신의 내면 속에서 발견하다.
도가 만물에 이르는 길은 만물이 道로 되돌아갈 때 거쳐야 하는 길과 도일한 길이다. 장자는 하늘의 도와 왕의 도와 민중의 도를 하나의 순환(변증법) 속에 통합시켰다. 이러한 변증법에 이르는 통로는 모택동의 [실천론]과 [모순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최상의 인식, 즉 “대립물의 통일의 법칙”으로서의 최상의 도에 원래부터 속해 있던 것으로서, 도를 그 절대성 속에서 생각하는 것과 도를 만물 속에서 생각하는 것 사이의 대립을 해소시키는 인식으로 나아가는 통로이다. 이것은 또한 최상의 에토스에 이르는 통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도는 선과 악의 구별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즉, 도속에 있는 것은 오로지 선한 것이다. 도와 합일된 인간은 최고의 인간이고, 성인이며, 구림을 타고 떠다니며, 해와 달을 타고 창조자와 함께 여행하는 정신적인 인간이자 도교의 이상적인 인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이 세계의 외부에 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세계 속에서 살되, 단지 세계에 얽매여 있지 않을 뿐이다.
장자의 이상적인 인간은 세계 밖으로 도피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세계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바로 이 점에서 도교 철학과 인도 철학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도교의 근원을 인도인의 영향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그러므로 견지될 수 없다.
장자가 추구했던 것은 바로 만물의 통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자아를 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월성과 내면성이라는 두 가지의 길,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라는 표상”이다. “마음의 금욕과 자기 자신을 망각함”과, 사물의 변화와 도의 일반성에 대한 의식 간에는 하나의 모순이 존재한다. 즉 한편의 자기망각을 위한 노력과 다른 한편의 이렇게 노력하고자 하는 의식사이에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모순이 다음의 명제들 중 어디에서 해소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즉 “하늘과 땅이 나와 동시에 성립 한다.” 그리고 “만물은 나와하나이다”라는 명제에서인가, 아니면 도는 만물을 통일 시킨다”는 명제에서인가 하는 물음이 남아 있음은 명백하다. 장자의 역사적인 의미는 노자의 형이상학이 갖고 있는 “내적인 본질직관”과 공자의 “주관적 윤리학”을 변증법적으로 통합시킨 데 있다. 이것은 모택동의 현대적인 철학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장자가 받아들인 일반적인 “법칙”은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사물에 내재하는 모순의 법칙”과 더불어 모택동적 철학의 실천적, 이론적 전제들에 영향을 준다.
참고문헌
강영안(1988), 서양의 자연관, 새한철학회
김연화(2002), 성경에 나타난 자연관 분석을 통한 환경교육으로의 가치관 접근, 이화여자대학교
박경남(1989), 고대 중국인의 자연관과 의학 이론에 대한 고찰, 경희대학교
이정준(1999), 바로크 시대의 삶과 자연관, 한국독어독문학회
이윤일(2006), 동양의 자연관과 신 환경윤리, 관동대학교 동아경제문화연구중심
한미화(2010), 워즈워스의 내러티브 시에 나타난 자연관, 충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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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3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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