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정치행적 - 해방과 정치세력의 움직임 -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이승만의 정치행적 - 해방과 정치세력의 움직임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의 통치력 확보의 명분으로 일어난 5·16으로 중단, 제2공화국은 붕괴되었다.
☞ 4월혁명 어떻게 볼 것인가
4월혁명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4월혁명을 서구의 고전적인 시민혁명 -부르조아민주주의 혁명-에 비견되는 민주(주의)혁명으로 보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한국 근대민중운동사의 흐름 속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김성식, 최문환, 차기벽 등 제교수의 4월혁명 해석이 전자에 속한다면, 강만길, 박현채 교수 등은 후자의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 분들이다.
세세한 부분의 설명에 있어 각 교수들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의 해석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이승만 정권 및 그것과 밀착되어 특혜를 누렸던 소수의 자본가들은 서구 -특히 프랑스-의 절대군주제 및 그것의 보호를 받았던 특권적 상인자본에 견주어졌다. 50년대의 한국사회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자연 그것을 붕괴시킨 4.19를 서구에서 절대군주제를 무너뜨린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에 비견시킬 수밖에 없었으며, 그 이후 성립하게 되는 장면정권도 부르조아정치권력의 형성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서구의 고전적인 시민혁명과 4.19사이에서 발견하는 상위점이란 각각 주체가 다르다는 점 뿐이다. 즉, 서구에서는 시민(부르조아)계급이 혁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데 비해 우리의 경우는 이 계급이 미성숙 되어 있었기 때문에 혁명이 학생을 주축으로 하는 지식층에 의해 대신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에 따를 경우 4월혁명은 3.15부정선거를 전후한 학생. 민중들의 항의시위로부터 시작되어 이승만의 하야와 장면정권의 성립으로 완결된 하나의 혁명으로 간주되게 된다. 왜냐하면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으로서의 4.19의 과제는 절대군주에 비견된 이승만이 퇴진하고 부르조아정치권력으로서의 장면정권이 등장함으로써 충족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승만 정권 붕괴 이후의 역사적 과정은 학원으로 복귀한 학생 대신 혁명의 뒷마무리를 맡은 장면정권을 중심으로 하여 기술될 수밖에 없으며, 그 경우 당시 사회 각 부문에서 활발하게 분출했던 혁신적인 움직임들은 모두 혁명을 보다 심화. 발전시키는 시도라기 보다는 시기상조의 정국혼란요인으로 평가되기가 쉽다. 아울러 이 해석은 이들에 의해 조성된 혼란을 무능하고 내분에 휩싸인 장면정권이 제대로 수습하지 못함으로써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4월혁명이 과연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일단 접어두고 그에 의거하여 이승만 퇴진 이후의 역사과정을 이상과 같이 설명한다고 할 경우 그것은 질서회복이라는 측면에서 군사쿠데타를 정당화하려는 논리에 본의 아니게 이용될 우려가 있다. 또한 이러한 설명의 논리선상에서는 5.16에 대하여 그것이 군부에 의한 부당한 정치개입 또는 헌정중단이었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책임추궁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5.16의 반민중성은 단지 군부에 의한 정권찬탈이라는 점에서 기인하는 반민중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주의뿐 아니라 통일과 자주 내지는 자립경제를 주장하는 모든 움직임을 일거에 쓸어버린 지극히 반동적인 정변이었다.
대체 무엇이 5.16에 대한 역사에 합당한 단죄를 가로막고 있는가?
그것은 결국 4월혁명에 대한 평가가 잘못된 데에서 나오는 필연적 귀결이다. 4.19에서 5.16에 이르는 기간에 대한 앞의 모든 설명은 4월혁명=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이승만 절대군주에의 붕괴 드라마라는 논리를 전제로 하여 전개된 것이다. 따라서 이 전제가 무너질 경우 이어지는 모든 설명도 재검토되지 않을 수 없다.
4.19는 처음부터 정권 탈취를 위한 목적으로 한 투쟁이나 어떤 정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 학생들의 불의(不義)에 항거한 의분(義憤)이 집단행동을 취하는 과정에서 사태가 변전하고 발전되어 나타난 하나의 결과적 현상이었다는 점에서 4.19는 확실히 <혁명>이라기보다는 <의거>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혁명>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4.19가 독재정권을 타도하였고 이와 결합되어 있던 특권적인 재벌이나 기업가 층의 몰락의 바탕을 마련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일환이 아니라 정부수립 후 가장 광범위한 차원에서 전개되었던 민주, 민생, 민족운동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 4.19의 의의
4·19혁명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4.19혁명은 3.1운동만큼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4.19 의거(義擧)의 의의를 살펴보면,
첫째, 한국 국민의 민주 의식의 발전을 의미하며 민주주의 토착화(土着化)를 위한 불가피한 진통과 자기 투쟁을 의미한 것입니다.
둘째, 4. 19의거는 관권(官權)의 횡포에 대한 민권(民權)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주의 원리를 그대로 입증하였습니다. 국민의 지지와 신망을 받지 못하는 정권은 결코 존립할 수 없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셋째, 20세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세계적으로 일기 시작한 이른바 [학생파워, student power]의 한국적 표현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3.1 독립운동(1919)과 6.10만세사건(1926), 그리고 광주학생사건(1929)을 통해 강한 저항 의식과 열렬한 애족 애국심을 발휘한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각해볼 문제>
1.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인가? 분단의 아버지인가?
2. 4.19혁명은 진정한 의미의 혁명인가?
※ 참고문헌, 사이트
한국역사 입문③ - 풀빛 출판사, 한국역사 연구회 엮음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⑦ - 솔 출판사, 류 승렬 지음
李承晩 政治 硏究 - 水源大學校出版部, 이 달순
현대 민주주의의 이해③ - 세종 출판사, 나 종만
한국현대정치사 연구 : 민주화과정과 정치개혁 - 신지서원, 정 경환
바로보는 우리역사 - 거름 출판사, 역사학 연구소 지음
4.19혁명 기념 도서관 ( http://210.118.16.68 )
  • 가격2,000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13.10.02
  • 저작시기201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8402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