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 중세 프랑스에서 ‘양자제’의 이념과 실상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역사학 - 중세 프랑스에서 ‘양자제’의 이념과 실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법적 측면에서의 양자제
1. 고전기 로마법에서의 양자제
2. 중세 교회법에서의 양자제

Ⅲ. 실천적 측면에서의 양자제
1. 양자제의 존재 양태
2. 양자제와 친족 구조

Ⅳ. 맺음말

본문내용

고대 로마와는 달리 남계의 방계상속보다는 직계상속을 선호하였다. 망자의 남자 형제들과 먼 남계친척 등 방계보다는 아들, 특히 장자가, 그리고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딸이 일반적으로 상속에서 우선권을 가졌다. 그리고 지역과 계층에 따라 11~12세기에 지배적 경향을 띠고 있던 장자상속제는 상속에서 딸과 장자 이외의 아들에 대한 배제를 수반했다. 어떻든 간에, 이러한 상속제도는 방계보다는 직계의 우선을, 직계 내에서는 딸보다 아들의 우선을, 아들 중에서는 장자의 우선을 원칙으로 했다.
이러한 직계 남자 우선의 양계제가 양자제의 실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우선, 그것은 고전기 로마에서처럼 부권과 그 가문의 영속을 위해 남아를 양자로 삼는 관행을 쇠퇴케 했다는 점이다. 아들은 없이 딸만 있는 경우에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딸을 상속자로 삼는 방법이다. 예컨대, 15세기말 남프랑스 망드(Mende)의 공증인 클로드 토랑(C. Taurand)이 그러했다. 1482년 8월 2일에 작성한 유언장에서 그는, 조부가 설립한 가문의 전속 예배당, 모친과 부인에게 재산을 유증하고, 어린 하녀와 양자에게는 양육비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나서 외동딸 엘릭스(Helix)를 ‘포괄상속인’(heritiere universelle)으로 지정했다. 그가 양자를 입양한 목적은 상속이 아니라 ‘자선’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자신이 죽고 난 다음에 ‘포괄상속인’인 외동딸로 하여금 양자가 결혼할 때까지 양육비를 부담토록 했기 때문이다. Ph. Maurice, “Actes de la pratique, II.”, pp. 101, 104.
그가 이처럼 양자가 있음에도 외동딸을 ‘포괄상속인’으로 삼은 것은 양계제적 상속 준칙을 따른 것이다. 다른 하나는 딸을 결혼시켜 사위를 양자로 삼는 방법이다. 이는 위에서 다룬 양자제의 마지막 유형에 속한다. 이것은 친족 형성의 요인이 로마적 의미에서의 ‘자의적 부권’으로부터 결혼으로 그 중심이 이동한 증표이며, 이것은 “양자제가 자연을 모방한다”는 자연법 사상과도 어느 정도 부합한다. 어느 경우이든 장인 집에서 아내와 함께 사는 사위는 일반적으로 아내의 성을 사용했지만, 아내는 남편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그 자식들도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외가에 더 애착을 가졌다. 유희수,「중세 작명 방식에 나타난 친족구조의 성격」, pp. 18-30; E. Le Roy Ladurie, Montaillou, pp. 63-64, 83.
이것 또한 양계제의 한 측면이다.
요컨대, 친자식이 있음에도 남의 불우한 자식을 입양케 하고,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딸이나 사위를 상속자로 삼게 한 것은 영적 친족 이념과 양계제적 친족 구조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위에서 다룬 양자제의 네 가지 실천 유형은 (첫 번째 유형을 제외하고) 바로 이러한 친족 구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Ⅳ. 맺음말
이상에서 우리는 법과 실천의 양 측면에서 중세에 양자제가 존속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념과 실천 형태는 변했다. 로마식 양자제가 양부의 부권과 그 가문의 이익만이 고려되었다면, 중세의 양자제는 입양아의 이익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친족구조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양계제의 출현과 함께 ‘부권’이 약화된 점이다. 양계제적 친족 구조에서 부권은 확고한 것이 아니었다. 처가가 더 부유하고 고귀한 명문가일 경우에 부권은 약화되고 모계제적 모권 구조를 창출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딸을 상속인으로 삼거나 사위를 양자로 삼을 경우에 극명하게 드러났다. 다음으로 영적 친족 이념의 영향이다. 그것은 친자식이 있음에도 가난한 아이나 고아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웃에 대한 형제애적 사랑에서 친자식처럼 기르게 했다.
요컨대, 양계제적 친족 구조와 영적 친족은, 적어도 양자제에 관한 한, 로마적인 ‘부권’을 약화시키고 입양아(남아든 여아든)에게 좀더 ‘사람다운’(human) 대우를 하도록 했다. 특히 영적 친족 이념은 불우한 남의 아이를 친자식처럼 생각케 하는 ‘박애 정신’ (fraternite)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중세 양자제가 겪은 심각한 변화는 양부와 그 가문의 이익만이 고려되는 고대 로마의 양자제에서 입양아의 이익을 법적으로 보장하려 하는 현대의 입양제로의 장기적 전환의 한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D. Lett, “Droits et pratiques de l'adoption au Moyen Age”, p. 8.

키워드

  • 가격2,3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3.12.26
  • 저작시기201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9951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