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록을 통해 살펴본 조선시대 과학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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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원록을 통해 살펴본 조선시대 과학수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II. 본론

1. 무원록의 발간 및 구성
1) 발간
2) 구성

2. 무원록에 의한 수사
1) 수사 기법
①시체의 관찰
②사인의 분석
③과학적 한계

2) 수사 절차
①검시과정
②관련자 조사
③초검 이후
④조사과정과 집행 시 주의점

3. 무원록을 통한 사건 해결



III. 결론

IV. 참고자료

본문내용

지만 재검시는 감영의 지시를 받아 다른 고을 수령이 담당했다. 2차 검시가 이루어질 때에는 검시관이 초검 내용을 알 수 없도록 해서 검시의 정확성을 도모하였다. 검시 결과로 범인을 확정할 수 없을 경우 관찰사는 1차 검시관과 2차 검시관이 모여 죄인을 확정하도록 지시하게 된다. 이렇게 조사된 사건의 결안은 해당 도에 올려 보내지고, 관찰사는 검토 후 형조에 보고하였다. 사형의 경우 국왕의 집행여부가 결정되었다. 이에는 인명에 관한 사안은 삼복의 절차를 밟아 신중하게 처리한다는 태도가 드러난다.
④ 조사 과정과 집행 시 주의점
무원록은 조사와 집행에 있어서 엄격함과 정확함을 매우 강조하여서 집행 상의 유의점에 대해서도 그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무원록에 따르면 검시과정에 있어서 사건 관련자들로부터 공초를 받아내는 과정에서 검시관으로 정해지면 죽은 이와 가까운 관원, 친인척 등을 따로 만나지 않아야 한다. 또한 검시에 직접 관련이 된 향인과 이인들이 뇌물을 받을 염려가 없도록 검시관의 곁에 있도록 하였다. 보고 문장에 있어서도 엄밀하게 정해진 단어를 사용하였다.
「때린 곳에 피가 맺혀 겉으로 보여야 상처라고 한다. 수족과 날카로운 물건 외에는 다 ‘타물’이라고 한다. 비록 병기라도 만일 날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또한 이것도 ‘타물’이다. 」 역주 증수무원록언해, 송철의 외, 서울대학교출판부, p325~ ‘구타사’
이처럼 검시를 한 후에는 정밀하고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하게 하여 타물, 타물상해, 자액, 조액 등등의 용어에 대해 정리를 했다. 법률적 용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 정의를 내림으로써 의미의 통일을 모색한 것이다.
무원록은 검시에 사용되는 도구들에 대해서도 표준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측량의 경우 표준척도인 ‘관척’만을 사용하도록 했고, 중독 여부를 확인하는데 쓰이는 은비녀는 국가 관리 하에 만들어진 순은 제품을 사용하게 했다. 또한 시간 단위에 대한 용어의 기준을 마련하고 측정 장치를 확보하게 하였다.
3. 무원록을 통한 사건의 해결
경상도 문경군 황부인 치사사건은 1904년 5월 경상도 문경군 신북면 화지리에서 발생한 살해 사건이다. 조선시대 살인사건 조사보고서 -'검안', 김호, 한국역사연구회 웹진 6호
이는 조사 담당자였던 경상도 문경군수가 무원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자살을 가장한 타살임을 밝혀낸 조선시대 과학 수사의 사례이다.
① 사건의 개요
경상도 문경군의 양반 안도흠의 며느리 황씨 방에 동네 천인 정이문이 몰래 들어가 겁탈하려다가 발각되어 도주한 일이 발생했다. 천인이었던 정이문이 양반댁 며느리를 겁탈하려다가 발각된 후 도주하자 격분한 안도흠 부자 세 명이 정이문의 집에 쳐들어가 집을 완전히 박살냈다. 정이문과 그 아버지는 도주했는데 할아버지였던 정태극은 정이문이 이미 안도흠의 며느리 황부인와 5∼6년간 계속 불륜을 저질러 왔었다고 진술했다. 아내의 불륜 사실을 들은 황씨의 남편 안재찬은 황부인을 구타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는 정이문의 집에 들어가 대들보에 부인의 시체를 묶어 두고 황부인이 원통한 마음에 정이문의 집에서 자살한 것처럼 관에 신고한 것이다.
② 해결 과정
사건 조사를 담당하게 된 초검관 문경군수는 현장에 도착해 시신을 검사하며 의문점을 발견했다. 얼굴이 구타당한 듯 푸르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누르기도 하고 희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증수무원록언해에서의 구타살해 조의 항목에 해당하는 증거였다. 자세한 검시 결과 목 뒤에 일자 모양의 목 졸린 흔적이 있었는데 증수무원록에서 타살의 상흔이라고 적힌 내용이었다. 그러나 용의자인 안재찬은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였다. 이에 문경군수는 현장조사를 다시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목을 매 자살했다고 보고된 서까래의 먼지 흔적을 살펴보았다. 자살을 했다면 목을 맨 서까래에 먼지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등 몸부림을 친 흔적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황부인이 목을 매달았다는 서까래 위에는 단 한 줄의 자국만이 남아 있었고 살해 후 자살로 위장한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명백한 증거들에 의한 사건 분석에 안재찬은 모든 잘못을 털어놓았다.
III. 결론
이상 무원록의 발간 및 구성, 수록된 수사 기법과 수사 절차, 실제 사건 해결의 예 등을 살펴보았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에 비해 과학과 의학수준이 현저하게 뒤떨어졌고, 유교의 영향으로 시신을 해부할 수도 없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엄밀성과 정확성을 지향하는 수사 체계가 있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몇몇 비과학적 방법도 있었지만 오늘날의 범죄 수사 기법에 준하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바로 무원록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무원’의 뜻을 풀이하면 원통함이 없게 하라는 것이다. 즉, 무원록에 담겨있는 기본 이념은 힘없는 백성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정의를 바로세우는 것이다. 백성의 무고함을 없애고 관리는 마땅히 그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사실은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과학수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했지만, 우리는 그 사실 자체에만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그 기반에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선조들이 지녔던 무원록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분명히 계승되어야 한다.
IV. 참고자료
조선의 과학수사, 무원록 그 경험의 소산, 강태억, 중부매일
[대한민국 검시 리포트] “무덤 파서라도 조사”… 조선시대가 검시 한수 위, 세계일보
EBS 다큐프라임 무원록 - 조선의 법과 정의
조선과학인물열전, 김호, 휴머니스트
『무원록』과 조선시대의 검시, 심재우, 한국역사연구회 웹진
두산백과 doopedia, ‘증수무원록’, ‘증수무원록언해’
법의학의 세계, 이윤성, 살림출판사
역주 증수무원록언해, 송철의 외, 서울대학교출판부
드라마 다모 계기로 본 조선조 범죄수사 허와 실, 이충환, 동아일보
법의학·수사 지침서 '신주무원록'과 '증수무언록', 이종호, 대한민국 정책포털
신주무원록과 조선전기의 검시, 김호, 한국법사학회 27호, 2003년
조선시대 살인사건 조사보고서 -'검안', 김호, 한국역사연구회 웹진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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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5.30
  • 저작시기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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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7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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