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Q시대 및 55년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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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GHQ시대 및 55년 체제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문
1. GHQ체제 하의 일본의
탈군사화와 민주화정책
(1) 군사의 비무장화와 헌법 개정
(2) 경제의 민주화 정책
2. 일본 정당정치의 시작,
55년 체제
(1) 보수 세력의 재편과 55년 체제의 형성
(2) 성립 및 안정기
(3) 55년 체제의 동요와 붕괴
Ⅲ. 맺음말

본문내용

1992년6월에 카이후 내각 이래 현안이던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을 자민공명민사 3당의 찬성으로 성립 시켜 자위대를 캄보디아로 파견하나, 국민들의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고 아시아 국가들의 비난도 샀다. 이 기간 중 정관재계의 오랜 유착으로 빚어진 구조적 정치부패로 ‘사가와 규빈’사건 도쿄 사가와 규빈사건으로 이사건은 가네마루에 대한 ‘5억엔의 자금제공’ 외에도, 자케시타 정권 성립에 폭력단이 개입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져 국민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등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국민의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자민당 내에서도 하타파가 발족하여 다케시타는 분열과 종언을 맞고, 정계재편이 서막에 오른다.
1993년은 정치개혁이 모든 변혁의 출발점이라는 수상의 말을 화두로 시작한다. 자민당 및 사회공명 양당의 정치개혁 관련 법안이 중의원에 제출되지만, 미야자와 내각은 이 법안 성립을 실시하지 못한다. 이에 의해 미야지와 내각 불신임 결의안이 제출되어 가결된다. 이후 자민당의 탈당자에 의해 신당사키가케와 신생당이 잇따라 창당 되는 가운데, 일본 정치의 중대한 전환점이 된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수를 밑돌고 사회당이 절반으로 준 데 반해, 신생사키가케 일본신당은 약진했다. 그 결과 자민당과 공산당을 제외한 중간의 8개당파가 의석의 과반수를 점하고, 1993년 8월에 일본신당을 중심으로 8당파가 연립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내각이 성립한다. 즉, 오랜 기간 자민당 정권의 핵심을 이루어 온 다나카-다케시타-가네마루 계열에 있던 인물들이 결성한 신생당과, 단 한 번도 여당의 경험이 없던 사회공명민사사민련이 연합하여 비공산 연립 정권의 수립을 목표로 하는 ‘비자민’ 정권이 7개 정당과 민주개혁연합이 연립하여 발생한 것이다. 1955년 11월부터 1933년 8월까지 38년 가까이 지속된 자민당 단독정권은 종말을 고하고, 1955년 요시다 시게루 계열의 자유당과 하토야마 이치로 계열의 민주당이 합당한 이래 처음으로 야당이 되므로 새로운 연립정권 시대가 개막되었다.
Ⅲ.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전후(戰後) 일본의 정치는 미군의 GHQ체제 이후에 실시 된 일련의 민주적 개혁을 통한 민주화의 바탕 위에 일본 나름의 정치체제를 형성, 유지 시켜 온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GHQ체제는 일본정치의 군국주의적 천황제 정치를 타파하고, 민주화 된 일본의 형성과 군사의 재무장화의 저지를 위해 실시 된 연합군 사령부의 일본체제개혁의 노력이었고, 이 체제는 이후 동북아시아 주변에 냉전의 기류(48년 한반도의 분단 등)가 흐르게 되면서 일본을 통해서 미국이 동북아에서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하나의 거점으로 삼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55년 체제는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끌어 내면서 일본을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지속적인 집권에 의한 체제내의 부패와 부정에 의해 동요되기도 하고, 체제 내에서의 분열양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분열이 일어난 가운데서도 부패는 지속되면서 국민의 불신과 함께 체제 내의 분열도 더욱 심화되어 1993년에 55년 체제는 붕괴하게 된다.
55년 체제붕괴 이후, 일본 정계는 7당(신생당, 신당 사키카케, 사회당, 공명당, 일본신당, 민사당, 사민련) 1회파(민주 개혁연합)의 연합으로 생긴 비자민연립정권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연립정권은 1년으로 붕괴하고 자민, 사민, 사키카케 3당의 연립으로 대체되었다. 다른 한편, 보수신당과 공명, 민사 양당의 합동으로부터 신진당이라고 하는 대보수당이 출현했지만, 1996년 이후, 이 당도 부르주아파와 반 부르주아파로 분열되어 와해되었다. 동시에 1996년 가을 사민, 사키카케로 부터의 탈퇴자를 중심으로 생겨난 민주당이 1998년 4월에 이르러 다른 약한 몇 개의 야당을 수급해서 중의원, 참의원 양원에서 자민당 다음으로 의석을 가진 최대 야당이 되었다. 이러한 최대 야당인 민주당은 공명당과의 연합을 꾀했지만, 공명당은 여당지향성을 강화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고, 1999년 1월 자민당과 자유당 사이에 관료 및 공무원 수의 삭감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공명당이 이에 찬성하면서 자민, 자유, 공명당(자-자-공)연립정권이 성립되었다. 이 연립정권은 지금 현재 까지 연합정권 형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 연립정권 속에서도 자민당의 영향력은 가장 우위에 있으며 이후에 모리, 고이즈미 전 총리를 비롯 아베 현 총리까지 그 영향에 의해 자민당 총재로서 총리가 되는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정당간의 이합집산 과정은 지금도 역시 끝나지 않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혼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정권 교대와 정당제의 변동 속에서 이데올로기, 정책, 조직기반으로서의 사회집단과의 관계 등에 근거로 한 정당간의 전통적인 균열은 거의 소멸했다. 그 때문에 일본의 정당정치, 선거정치는 인맥 이외에 명확한 대립점이 존재하지 않는 정당간의 권력항쟁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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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2.23
  • 저작시기2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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