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들어가는 말- 왜 다시 공교육인가?
2.서구 근대 공교육의 이념과 현실
3.한국 공교육의 전통과 公義로서의 공교육
4. 맺는 말
2.서구 근대 공교육의 이념과 현실
3.한국 공교육의 전통과 公義로서의 공교육
4. 맺는 말
본문내용
는 노동자와 기생에 이르기까지 전국민이 한 개의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독립에 한 발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라는 이념에 동참, 전국에 걸쳐 5,000여 개의 학교를 설립하여 자신의 사익이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할 인재를 양성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공의로서의 교육이념이 사익을 위한 교육으로 전환되는 것은 물론 일제 식민지교육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일제는 1906년 8월 각종 교육령의 공포를 통해 "교육=사적인 이익"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따라서 기존의 무상교육을 유상교육으로 대체하였다.
) 이러한 근대교육=사적 이익이라는 관점은 일본의 근대 공교육체제 구축을 위해 1872년 8월 3일 공포된 太政官 포고령, "학사장려에 관한 被仰出書"에 잘 드러난다.
.........종래 관습상의 폐단으로 학문은 사인 이상의 일로 한다는 것과 국가을 위하여 학문한다는 주장으로 인해서 학비와 衣食의 비용까지 모두 관에 의존하여 이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자포자기하는 일이 많았다........이제부터는 이 폐단을 고치고 일반인민들이 다른 일은 제쳐두고 스스로 배우는데 힘쓰기를 기대하는 바이다.(윤종혁, [근대 한일 공교육 사상의 비교연구], 고려대 박사학위논문, 1994, 83쪽에서 재인용)
이후 3.1운동의 실패와 관련하여 사적인 이익 실현의 장으로서의 학교교육은 보통학교에 대한 교육열로 나타난다. 즉 일제의 학력주의와 3.1운동 실패에 따른 국민들의 좌절감은 각종 취업에 졸업장을 요구한 일제의 "學歷 정책"
) 일제에 의한 "교육=학력"정책은 정재걸, 이혜영, [한국 근대교육 100년사 연구(1): 개화기의 학교교육], 한국교육개발원 연구보고 94-7, 1994, 제2장 "학교교육의 목적과 기능"을 참조할 것.
에 따라 종래의 서당 대신 일제의 보통학교를 선택하도록 했던 것이다.
4. 맺는 말
서구 근대공교육에서의 公과 私의 구분은 멀리 아테네의 오이코스(oikos)와 폴리스(polis)의 구분에서 비롯된다. 오이코스는 가족이 기거하는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며 이것은 철저히 사적 원리에 의해 운영된다. 반면 폴리스는 도시국가로서 철저히 공적 원리에 의거 운영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이코스와 폴리스의 혼돈을 모든 병폐의 근원으로 간주하였다. 근대 서구에서 오이코스의 사적 원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권리의 형태로, 그리고 폴리스의 공적 원리는 이러한 사적원리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장으로서의 공적 영역에서의 의무와 규칙 준수로 나타났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념태로서의 공교육은 이러한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통한 공적 인간의 육성을 의미하지만, 현실태로서의 공교육에서는 이러한 사적 원리로서의 권리는 배제된 규칙 준수와 이에 대한 감시와 처벌이 주된 원리가 되었다.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학교교육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 로크와 같이 오히려 사교육에 남겨졌던 것이다.
영국의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은 사교육의 전형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교육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퍼블릭 스쿨과 로크의 노동학교는 어느 것이 더 가까울까? 처칠은 2차대전의 승리이후 "전쟁의 승리는 이미 이튼 학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이튼 학교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파시즘에 대항해서 기꺼이 전쟁터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교육의 공공성이 아닐까?
신자유주의는 사적영역인 시민사회가 공적영역인 국가의 영역을 점령해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사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는 세계화의 추세와 더불어 근대 국가의 기초였던 국민국가의 경계선을 넘어 세계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 전 세계가 거대한 시민사회와 시장, 즉 사적 영역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 구범모, "한국에서 지금 왜 公私문제를 논해야 하는가" [전통과 현대], 1999년 가을호, 200쪽
우리가 신자유주의에 의해 파괴될까 두려워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예산 감소가 아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시장논리가 가뜩이나 사적 이익의 투쟁의 장이 되어버린 교육의 공공성을 완전히 파괴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학교는 과연 공공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학생들이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고 조금만 틈을 보이면 여럿이 한 사람을 따돌리는 현장이 어떻게 공공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성적이 조금 떨어졌다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리도록 하는 곳이 공교육인가? 퇴직금을 조금 더 받겠다고 담임도 없는 학생들을 버려 두고 명예 퇴직을 하는 것이 과연 공의인가?
공공이란 사익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즉 시혜자와 수혜자 공히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교육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나 정권의 사적인 이해관계, 예컨대 유신정권과 같이 정당성 없는 정권의 정당성 창출을 위해 교육을 이용하거나, 일부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문형 교육과 같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자본이 요구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사익을 위한 교육이다. 수혜자의 입장에서도 공동체에 대한 자기헌신을 전제로 하지 않고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한 교육은 공교육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서구와 같이 일찍이 자본주의와 그에 따른 공교육 체제를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공교육의 이념만은 분명히 제시해 주었다. 즉 공교육은 사익이 아니라 공의를 위한 것이고 이러한 교육은 사적 이익 실현을 위해 광분하고 있는 바깥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내부를 주시하는 위기지학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교육을 논함에 있어 무엇이 평등이고 무엇이 불평등인지를 논의하는 것과 함께, 무엇이 사익이고 무엇이 공의인가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평등교육의 원리에 의거 모든 국민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공의의 원리에 의거 그러한 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이 공공의 정의를 위해 얼마나 헌신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는 일이다. 교육의 공공성은 수요자 중심 교육에서 강요하는 이기심과 자기주장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한 자기극복과 공동체에의 헌신을 배우는 데서 찾아야 한다.(끝)
이러한 공의로서의 교육이념이 사익을 위한 교육으로 전환되는 것은 물론 일제 식민지교육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일제는 1906년 8월 각종 교육령의 공포를 통해 "교육=사적인 이익"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따라서 기존의 무상교육을 유상교육으로 대체하였다.
) 이러한 근대교육=사적 이익이라는 관점은 일본의 근대 공교육체제 구축을 위해 1872년 8월 3일 공포된 太政官 포고령, "학사장려에 관한 被仰出書"에 잘 드러난다.
.........종래 관습상의 폐단으로 학문은 사인 이상의 일로 한다는 것과 국가을 위하여 학문한다는 주장으로 인해서 학비와 衣食의 비용까지 모두 관에 의존하여 이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자포자기하는 일이 많았다........이제부터는 이 폐단을 고치고 일반인민들이 다른 일은 제쳐두고 스스로 배우는데 힘쓰기를 기대하는 바이다.(윤종혁, [근대 한일 공교육 사상의 비교연구], 고려대 박사학위논문, 1994, 83쪽에서 재인용)
이후 3.1운동의 실패와 관련하여 사적인 이익 실현의 장으로서의 학교교육은 보통학교에 대한 교육열로 나타난다. 즉 일제의 학력주의와 3.1운동 실패에 따른 국민들의 좌절감은 각종 취업에 졸업장을 요구한 일제의 "學歷 정책"
) 일제에 의한 "교육=학력"정책은 정재걸, 이혜영, [한국 근대교육 100년사 연구(1): 개화기의 학교교육], 한국교육개발원 연구보고 94-7, 1994, 제2장 "학교교육의 목적과 기능"을 참조할 것.
에 따라 종래의 서당 대신 일제의 보통학교를 선택하도록 했던 것이다.
4. 맺는 말
서구 근대공교육에서의 公과 私의 구분은 멀리 아테네의 오이코스(oikos)와 폴리스(polis)의 구분에서 비롯된다. 오이코스는 가족이 기거하는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며 이것은 철저히 사적 원리에 의해 운영된다. 반면 폴리스는 도시국가로서 철저히 공적 원리에 의거 운영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이코스와 폴리스의 혼돈을 모든 병폐의 근원으로 간주하였다. 근대 서구에서 오이코스의 사적 원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권리의 형태로, 그리고 폴리스의 공적 원리는 이러한 사적원리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장으로서의 공적 영역에서의 의무와 규칙 준수로 나타났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념태로서의 공교육은 이러한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통한 공적 인간의 육성을 의미하지만, 현실태로서의 공교육에서는 이러한 사적 원리로서의 권리는 배제된 규칙 준수와 이에 대한 감시와 처벌이 주된 원리가 되었다.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학교교육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 로크와 같이 오히려 사교육에 남겨졌던 것이다.
영국의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은 사교육의 전형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교육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퍼블릭 스쿨과 로크의 노동학교는 어느 것이 더 가까울까? 처칠은 2차대전의 승리이후 "전쟁의 승리는 이미 이튼 학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이튼 학교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파시즘에 대항해서 기꺼이 전쟁터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교육의 공공성이 아닐까?
신자유주의는 사적영역인 시민사회가 공적영역인 국가의 영역을 점령해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사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는 세계화의 추세와 더불어 근대 국가의 기초였던 국민국가의 경계선을 넘어 세계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 전 세계가 거대한 시민사회와 시장, 즉 사적 영역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 구범모, "한국에서 지금 왜 公私문제를 논해야 하는가" [전통과 현대], 1999년 가을호, 200쪽
우리가 신자유주의에 의해 파괴될까 두려워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예산 감소가 아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시장논리가 가뜩이나 사적 이익의 투쟁의 장이 되어버린 교육의 공공성을 완전히 파괴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학교는 과연 공공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학생들이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고 조금만 틈을 보이면 여럿이 한 사람을 따돌리는 현장이 어떻게 공공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성적이 조금 떨어졌다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리도록 하는 곳이 공교육인가? 퇴직금을 조금 더 받겠다고 담임도 없는 학생들을 버려 두고 명예 퇴직을 하는 것이 과연 공의인가?
공공이란 사익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즉 시혜자와 수혜자 공히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교육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나 정권의 사적인 이해관계, 예컨대 유신정권과 같이 정당성 없는 정권의 정당성 창출을 위해 교육을 이용하거나, 일부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문형 교육과 같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자본이 요구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사익을 위한 교육이다. 수혜자의 입장에서도 공동체에 대한 자기헌신을 전제로 하지 않고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한 교육은 공교육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서구와 같이 일찍이 자본주의와 그에 따른 공교육 체제를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공교육의 이념만은 분명히 제시해 주었다. 즉 공교육은 사익이 아니라 공의를 위한 것이고 이러한 교육은 사적 이익 실현을 위해 광분하고 있는 바깥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내부를 주시하는 위기지학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교육을 논함에 있어 무엇이 평등이고 무엇이 불평등인지를 논의하는 것과 함께, 무엇이 사익이고 무엇이 공의인가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평등교육의 원리에 의거 모든 국민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공의의 원리에 의거 그러한 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이 공공의 정의를 위해 얼마나 헌신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는 일이다. 교육의 공공성은 수요자 중심 교육에서 강요하는 이기심과 자기주장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한 자기극복과 공동체에의 헌신을 배우는 데서 찾아야 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