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삶의 힘으로서 내재하는 하느님의 영, 루아흐가 모든 만물 속에서 언제든지 경험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 경험이 종래와 같이 인격적 역사적 지평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바로 몰트만 신학에서 생태학적 의미와 중요성을 발견하게 되는 부문도 이 대목에 이르러서이다. 몰트만은 21세기를 위한 신학의 과제로서 유럽중심주의와의 결별, 교파주의로부터 에큐메니칼 의식으로의 이행 그리고 기계론적 세계관으로부터 유기체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말했던 바, 마지막에 언급한 유기체적 세계관이란 바로 전 우주 만물 속에서 하느님 영을 체험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과 맥이 닿아 있다. 더 이상 우주 만물이 지배와 정복의 대상, 소유가치근거인 물질이 아니라 하느님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트만은 창조의 힘과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하느님 영의 활동을 그리스도의 활동과 전적으로 대치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몰트만은 생명력 있는 하느님의 영, 구약의 루아흐 그리고 삶의 경험 속에 내재된 하느님의 영 모두는 기독론의 빛에서 상대적 자존성을 가질 뿐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성서의 사건 속에 하느님 영의 현재성이 힘, 호흡 등 비인격적 생명력으로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들은 하느님의 본질 속성이 아니라 그가 인간 역사 내에 나타난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는 말이다. 하느님 본질은 오히려 비인격적 생명력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및 인간의 역사적 삶에 대한 하느님의 연민 속에 더 잘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역사적 활동성을 그의 우주 생명력과 구별하려 했던 몰트만에게서 우리는 십자가 중심의 서방신학적 잔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스도 십자가 없이는 우주적 생명력 그 자체는 범(犯)허무주의에 빠진다고 단정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하느님과 세계는 결코 동일시 될 수 없으며 무로부터의 창조는 하느님의 내재성을 말한다 하더라도 결코 포기될 수 없는 기독교만의 특성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몰트만이 내재적 본질 개념을 통해 전통적 의미의 영성 대신에 영육을 통전하는 생명력 자체의 종교적 의미를 부각시킨 점을 높게 평가한다. 생명력으로서의 종교성이야말로 오늘날 생태학적 신학을 말할 수 있는 근본 모티브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http://www.peacenet.or.kr/kcems/99-3ho/99-3-fr.htm
과정신학자들의 자연관
존 캅(John B. Cobb)의 자연신학을 중심으로
존 캅은 미국 클레아몬트 대학교 신학부 조직신학교수로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은퇴하여 저술에 몰두하고 있다. 특별히 화이트 헤드의 자연 유기체 철학을 신학에 적용하여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이란 이름하에 세계신학계에 미국적 독자성을 확장시켜나갔다. 캅은 자신의 신학이론을 정치, 교회현실등에 접목시켜 소위 신학의 실학화를 위해 헌신한 학자였던 바, 그의 생애 말기는 생태학적 주제에 대한 과정 신학적 해결을 도모하는 기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태학적 주제를 담고 있는 그의 최근의 책으로는 여성신학자 맥훼이그 등과 공저한 「Liberating Life : Contemporary approaches to ecologi -cal theology, New York, 1990」과 「Sustainability : Economics ecology & Justice, New York, 1992」 등이 있다. 여기서는 그의 과정 사상속에 나타난 자연관만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무엇보다 캅은 유기체 철학자 화이트 헤드를 따라 신학의 범주를 존제가 아니라 생성으로 보며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자연신학"을 정초하려고 했다. 생성의 토대하에서 현실이란 상호 연결된 과정들, 사건들 그리고 경험적 일들로 이루어진 총체적 관계로 이해되는데, 하느님 역시 이런 관계성을 자신의 필연적 본질요소로 삼고있다는 것이다.
부언하자면 일체의 속성은 그 사물이 맺고 있는 제반 관계성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기에 어떤 존재도 관계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더욱 고양된 생명체일수록 더 많은 다양한 관계들이 모여 한 전체로서 조화롭게 기능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과정신학의 하느님은 자연에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며 진화의 방향이 끌고 나가는세상만물과 더불어 총체적 관계를 맺는 관계로 서술되고 있다. 이처럼 하느님 실재가 자기 자신을 실현해가는 개체들과의 상호관계성을 통해 실현해 가는 한 전 세계, 곧 우주 자연은 신과 모든 피조물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계속적인 과정으로 설명되어진다.
이점에서 캅은 '창조주' 또는 '창조'라는 말 대신에 생명 및 자연이란 말을 즐겨 사용하는 바, 인간 외적 실체들이 인간에 의해 어떻게 인식되는지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본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탈 인간중심적 견해를 피력한다. 심지어 그는 원자와 같은 미립자들의 무질서한 운동 안에서도 정신성, 곧 하느님 -원초적 목적(initial aim)이 내재한다고 봄으로써 하느님과 세계라는 전통적 단절방식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캅과 같은 과정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고백되어온 '무로 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이론을 즐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교리 속에는 하느님과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보려는 시각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과정신학자들에게는 삼위일체 교리도 무의미해 질 수 있다는 비판이 조심스럽게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캅은 자신의 자연신학이 '무슨 무슨 신학'과 같은 신학의 한 종류가 아니라 오히려 신학 자체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이 갖는 특별한 의식과 하층동물들의 지각행위, 곧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있어서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바, 이를 토대로 할 때 캅의 자연신학은 神이 곧 自然임을 말하는 범재신론과는 결코 동일시 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생성과 관계성을 범주로 하는 그의 자연신학이 전통과 단절되는 만큼 미래를 위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http://www.peacenet.or.kr/kcems/99-4ho/99-4-fr.htm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트만은 창조의 힘과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하느님 영의 활동을 그리스도의 활동과 전적으로 대치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몰트만은 생명력 있는 하느님의 영, 구약의 루아흐 그리고 삶의 경험 속에 내재된 하느님의 영 모두는 기독론의 빛에서 상대적 자존성을 가질 뿐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성서의 사건 속에 하느님 영의 현재성이 힘, 호흡 등 비인격적 생명력으로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들은 하느님의 본질 속성이 아니라 그가 인간 역사 내에 나타난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는 말이다. 하느님 본질은 오히려 비인격적 생명력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및 인간의 역사적 삶에 대한 하느님의 연민 속에 더 잘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역사적 활동성을 그의 우주 생명력과 구별하려 했던 몰트만에게서 우리는 십자가 중심의 서방신학적 잔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스도 십자가 없이는 우주적 생명력 그 자체는 범(犯)허무주의에 빠진다고 단정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하느님과 세계는 결코 동일시 될 수 없으며 무로부터의 창조는 하느님의 내재성을 말한다 하더라도 결코 포기될 수 없는 기독교만의 특성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몰트만이 내재적 본질 개념을 통해 전통적 의미의 영성 대신에 영육을 통전하는 생명력 자체의 종교적 의미를 부각시킨 점을 높게 평가한다. 생명력으로서의 종교성이야말로 오늘날 생태학적 신학을 말할 수 있는 근본 모티브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http://www.peacenet.or.kr/kcems/99-3ho/99-3-fr.htm
과정신학자들의 자연관
존 캅(John B. Cobb)의 자연신학을 중심으로
존 캅은 미국 클레아몬트 대학교 신학부 조직신학교수로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은퇴하여 저술에 몰두하고 있다. 특별히 화이트 헤드의 자연 유기체 철학을 신학에 적용하여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이란 이름하에 세계신학계에 미국적 독자성을 확장시켜나갔다. 캅은 자신의 신학이론을 정치, 교회현실등에 접목시켜 소위 신학의 실학화를 위해 헌신한 학자였던 바, 그의 생애 말기는 생태학적 주제에 대한 과정 신학적 해결을 도모하는 기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태학적 주제를 담고 있는 그의 최근의 책으로는 여성신학자 맥훼이그 등과 공저한 「Liberating Life : Contemporary approaches to ecologi -cal theology, New York, 1990」과 「Sustainability : Economics ecology & Justice, New York, 1992」 등이 있다. 여기서는 그의 과정 사상속에 나타난 자연관만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무엇보다 캅은 유기체 철학자 화이트 헤드를 따라 신학의 범주를 존제가 아니라 생성으로 보며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자연신학"을 정초하려고 했다. 생성의 토대하에서 현실이란 상호 연결된 과정들, 사건들 그리고 경험적 일들로 이루어진 총체적 관계로 이해되는데, 하느님 역시 이런 관계성을 자신의 필연적 본질요소로 삼고있다는 것이다.
부언하자면 일체의 속성은 그 사물이 맺고 있는 제반 관계성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기에 어떤 존재도 관계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더욱 고양된 생명체일수록 더 많은 다양한 관계들이 모여 한 전체로서 조화롭게 기능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과정신학의 하느님은 자연에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며 진화의 방향이 끌고 나가는세상만물과 더불어 총체적 관계를 맺는 관계로 서술되고 있다. 이처럼 하느님 실재가 자기 자신을 실현해가는 개체들과의 상호관계성을 통해 실현해 가는 한 전 세계, 곧 우주 자연은 신과 모든 피조물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계속적인 과정으로 설명되어진다.
이점에서 캅은 '창조주' 또는 '창조'라는 말 대신에 생명 및 자연이란 말을 즐겨 사용하는 바, 인간 외적 실체들이 인간에 의해 어떻게 인식되는지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본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탈 인간중심적 견해를 피력한다. 심지어 그는 원자와 같은 미립자들의 무질서한 운동 안에서도 정신성, 곧 하느님 -원초적 목적(initial aim)이 내재한다고 봄으로써 하느님과 세계라는 전통적 단절방식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캅과 같은 과정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고백되어온 '무로 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이론을 즐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교리 속에는 하느님과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보려는 시각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과정신학자들에게는 삼위일체 교리도 무의미해 질 수 있다는 비판이 조심스럽게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캅은 자신의 자연신학이 '무슨 무슨 신학'과 같은 신학의 한 종류가 아니라 오히려 신학 자체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이 갖는 특별한 의식과 하층동물들의 지각행위, 곧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있어서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바, 이를 토대로 할 때 캅의 자연신학은 神이 곧 自然임을 말하는 범재신론과는 결코 동일시 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생성과 관계성을 범주로 하는 그의 자연신학이 전통과 단절되는 만큼 미래를 위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http://www.peacenet.or.kr/kcems/99-4ho/99-4-fr.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