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봉건체제의 파탄과 농민층의 몰락
Ⅲ. 제국주의 침탈과 상품화폐경제의 변동
Ⅳ. 신분계급구성의 변동과 변혁주체의 성장
Ⅱ. 봉건체제의 파탄과 농민층의 몰락
Ⅲ. 제국주의 침탈과 상품화폐경제의 변동
Ⅳ. 신분계급구성의 변동과 변혁주체의 성장
본문내용
과 국내시장 발전에 대응하여 토지 자체를 상품화시켜가게 되었다. 개항 후에는 자본주의 열강의 외래상품, 외래자본의 침투로 사회모순이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농춘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 토지상품화는 상품경제 발달을 전제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전시기의 토지매매 현상과 구별될 수 있다. 조선후기 농민층의 영세화와 계층분화결과 자영농민층의 몰락이 가속화되면서 지주전화관계로 재편되는 한편, 전화층 역시 농촌노동자로 전락해 가게 되었다. 그롸 같은 과정은 농민층의 토지가 ㅕ러가지 요인에 의해 양도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농민층의 토지가 매매 양도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은 당시의 구조적 사회모순을 반영한다. 우선 첫 번째, 국가권력에 의한 수조권적 토지분급제의 소멸이라는 점을 들수 있다. 직전법이 붕괴되면서 소유권적 지배방식이 발달하는 가운데, 소유권 집적을 통한 토지겸병이 치열해졌다. 이때 토지를 방매하는 자는 대부분 상민층이었지만 몰락양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로 농업생산력 발전과 상품화폐경제의 연계위에 상업적 농업이 발달하게 되면서 토지에 대한 투자가치가 한층 높아지게 되었다는 점이 주목될 수 있다. 상업적 농업은 토지상품화와 더불어 농민층을 소상품생산자로 전화시키는 동시에 농민층 분해의 직접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수전농업에서 이앙법의 발전보급은 부농으로 하여금 광작에 주력하게 만들었다. 또한 토지에 대한 토자는 미고 외에도 담배, 인삼, 마, 목면 등이 상품작물 재배를 통한 상업적 농업의 일환으로 성행하고 있었다.
) 박용옥, 1966<남초에 관한 연구>
김영호, 1968<조선후기에 있어서도 도시상업의 새로운전개><한국역사연구>
한상권, 1981<18세기말, 19세기초의 장시발달에 관한 기초연구><한국사론>
이세영, 1985<18,19세기 곡물시장의 형성과 유통구조의 변동><한국사론>
2) 농민의식의 성장
(1)농민의 비판의식과 저항
농민의식이란 봉건사회 해체기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주목되는 부분으로서, 18,19세기 변혁주체로서의 농민층의 의식과 실천을 집약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영역이다. 특히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데서 맹아적으로 발생하는 기본권으로서의 농민의식의 생존의 권리를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평등하다는 인간존엄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까지 포함하는 내용이다. 그러한 민중의 저항방식은 신분적 굴레로부터 탈피하는 과정에서 비판의식과 저항방식을 통해 명확한 형태를 드러내게 된다.
농민이 넘어야 할 벽은 강고 했다. 그 중 양반지배층이 갖고 있는 신분의식이라는 영역은 이전의 신분적 특권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며 그것을 통해 과거로 소급시켜 구체제를 그대로 간직하려는 세력에 의해 강요되는 상하 계급질서이다. 이러한 신분의식은 봉건사회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남아있는 형태로서 주로 특권을 갖고 있던 지배층에 의해 계속 강요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강제의 성격은 농민들에게 일방저그로 강요되어온 복종 그 자체일 뿐이었다. 어떻게 그와 같은 견고한 껍질을 벗어버릴 수 있었을까?
봉건국가는 후기의 신분제가 동요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임시변통책을 마련하지만 무너져가는 체제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공되는 기회는 부유한 농민들에게 사회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다시 없는 좋은 기회였다. 이제는 너나 할것없이 양반행세를 하는 사회가 되어갔다. 그러나 양반행세를 하지못하는 하층빈민들에게는 체제에 대한 비판의시고가 평등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이러한 추세 속에 봉건질서가 유지될 수는 없었다. 몰락해 가는 농민층을위한 새로운 질서가 모색되어야 했다. 많은 개혁론자들의 개혁방안이 주목되기도 하지만, 실천되지 못했다. 새로운 질서는 농민들에 의해서만 마련될 수 있었다. 농민의 의식은 이러한 과정에서 성숙되고 있었다.
(2) 적대의식의 심화와 농민항쟁
농민의식이 성장해가던 배경에는 봉거정부의 권위적인 대응책이 문제를 확대시키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농민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었을 때 관에 소장을 제출하지만 신분제사회에서의 판결은 약자에게 항상 불리하기 마련이었다. 읍을 다스리는 자가 민의호소를 번거롭다하여 동리에서 처리하게 하지만, 그 결과는 강자에게만 유리하게 판결이 되니 힘없는 농민들은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의 저항방식은 당연히 집단화 되어갈 수 밖에 없었다. 17세기 이후의 법전을 검토해보면 특히 <형전>의 법조문 변화가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반영해주고 있다. 노비가 주인을 범하거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범하는 죄목에 대해서는 극형으로 처벌하고 있었다는 점이 발견된다. 병사를 일으킨 반란 주모자의 형제처첩은 모두 연좌제로 벌할 뿐 아니라, 읍민으로서 관장을 향해 변란을 일으키는 자가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결론
1894년 농민전쟁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전국가적인 농민봉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지배층의 가공할 만한 강제 아래 농민은 분노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군현단위의 분산적인 농민항쟁에 머물고 있었다. 농민들이 양반관료나 봉건국가의 통치기구와 대립하고 있는 한에서는 미약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하층 빈농계급의 봉기는 농민항쟁을 전쟁으로까지 확대시키고 있었다. 하층빈농 가운데 토지로부터 유리되거나 다시 결합되었다 할지라도 품을 팔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이들도 있었다.
농민항쟁을 가능케 할 수 있었던 힘은 농민의식의 성장으로부터 분석될 수 있다. 빈농층의 19세기의 생산관계하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자신의 몫인 잉여노동력을 지주나 부농층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이러한 몫이 커질수록 하층농민, 고용층은 더욱 적대적인 계급의식을 갖게 된다.
하층빈농의 농민의식은 초기에는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과 신분에 대한 평등의식으로부터 발현되어 개별적인 저항 형태로 나타났으나, 생산관계의 위기 속에 점차 적대의식으로 발전 심화되기 시작했다. 제국주의의 침탈과정에서 형성되는 민족의식은 본질적으로 계급의식을 한 단계 고양시킴과 동시에 민족운동으로 발전해가지만 개항 이후의 사회모순을 얼마나 반영해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역사적 성격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시기 토지상품화는 상품경제 발달을 전제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전시기의 토지매매 현상과 구별될 수 있다. 조선후기 농민층의 영세화와 계층분화결과 자영농민층의 몰락이 가속화되면서 지주전화관계로 재편되는 한편, 전화층 역시 농촌노동자로 전락해 가게 되었다. 그롸 같은 과정은 농민층의 토지가 ㅕ러가지 요인에 의해 양도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농민층의 토지가 매매 양도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은 당시의 구조적 사회모순을 반영한다. 우선 첫 번째, 국가권력에 의한 수조권적 토지분급제의 소멸이라는 점을 들수 있다. 직전법이 붕괴되면서 소유권적 지배방식이 발달하는 가운데, 소유권 집적을 통한 토지겸병이 치열해졌다. 이때 토지를 방매하는 자는 대부분 상민층이었지만 몰락양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로 농업생산력 발전과 상품화폐경제의 연계위에 상업적 농업이 발달하게 되면서 토지에 대한 투자가치가 한층 높아지게 되었다는 점이 주목될 수 있다. 상업적 농업은 토지상품화와 더불어 농민층을 소상품생산자로 전화시키는 동시에 농민층 분해의 직접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수전농업에서 이앙법의 발전보급은 부농으로 하여금 광작에 주력하게 만들었다. 또한 토지에 대한 토자는 미고 외에도 담배, 인삼, 마, 목면 등이 상품작물 재배를 통한 상업적 농업의 일환으로 성행하고 있었다.
) 박용옥, 1966<남초에 관한 연구>
김영호, 1968<조선후기에 있어서도 도시상업의 새로운전개><한국역사연구>
한상권, 1981<18세기말, 19세기초의 장시발달에 관한 기초연구><한국사론>
이세영, 1985<18,19세기 곡물시장의 형성과 유통구조의 변동><한국사론>
2) 농민의식의 성장
(1)농민의 비판의식과 저항
농민의식이란 봉건사회 해체기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주목되는 부분으로서, 18,19세기 변혁주체로서의 농민층의 의식과 실천을 집약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영역이다. 특히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데서 맹아적으로 발생하는 기본권으로서의 농민의식의 생존의 권리를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평등하다는 인간존엄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까지 포함하는 내용이다. 그러한 민중의 저항방식은 신분적 굴레로부터 탈피하는 과정에서 비판의식과 저항방식을 통해 명확한 형태를 드러내게 된다.
농민이 넘어야 할 벽은 강고 했다. 그 중 양반지배층이 갖고 있는 신분의식이라는 영역은 이전의 신분적 특권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며 그것을 통해 과거로 소급시켜 구체제를 그대로 간직하려는 세력에 의해 강요되는 상하 계급질서이다. 이러한 신분의식은 봉건사회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남아있는 형태로서 주로 특권을 갖고 있던 지배층에 의해 계속 강요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강제의 성격은 농민들에게 일방저그로 강요되어온 복종 그 자체일 뿐이었다. 어떻게 그와 같은 견고한 껍질을 벗어버릴 수 있었을까?
봉건국가는 후기의 신분제가 동요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임시변통책을 마련하지만 무너져가는 체제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공되는 기회는 부유한 농민들에게 사회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다시 없는 좋은 기회였다. 이제는 너나 할것없이 양반행세를 하는 사회가 되어갔다. 그러나 양반행세를 하지못하는 하층빈민들에게는 체제에 대한 비판의시고가 평등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이러한 추세 속에 봉건질서가 유지될 수는 없었다. 몰락해 가는 농민층을위한 새로운 질서가 모색되어야 했다. 많은 개혁론자들의 개혁방안이 주목되기도 하지만, 실천되지 못했다. 새로운 질서는 농민들에 의해서만 마련될 수 있었다. 농민의 의식은 이러한 과정에서 성숙되고 있었다.
(2) 적대의식의 심화와 농민항쟁
농민의식이 성장해가던 배경에는 봉거정부의 권위적인 대응책이 문제를 확대시키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농민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었을 때 관에 소장을 제출하지만 신분제사회에서의 판결은 약자에게 항상 불리하기 마련이었다. 읍을 다스리는 자가 민의호소를 번거롭다하여 동리에서 처리하게 하지만, 그 결과는 강자에게만 유리하게 판결이 되니 힘없는 농민들은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의 저항방식은 당연히 집단화 되어갈 수 밖에 없었다. 17세기 이후의 법전을 검토해보면 특히 <형전>의 법조문 변화가 이러한 상황을 가장 잘반영해주고 있다. 노비가 주인을 범하거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범하는 죄목에 대해서는 극형으로 처벌하고 있었다는 점이 발견된다. 병사를 일으킨 반란 주모자의 형제처첩은 모두 연좌제로 벌할 뿐 아니라, 읍민으로서 관장을 향해 변란을 일으키는 자가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결론
1894년 농민전쟁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전국가적인 농민봉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지배층의 가공할 만한 강제 아래 농민은 분노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군현단위의 분산적인 농민항쟁에 머물고 있었다. 농민들이 양반관료나 봉건국가의 통치기구와 대립하고 있는 한에서는 미약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하층 빈농계급의 봉기는 농민항쟁을 전쟁으로까지 확대시키고 있었다. 하층빈농 가운데 토지로부터 유리되거나 다시 결합되었다 할지라도 품을 팔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이들도 있었다.
농민항쟁을 가능케 할 수 있었던 힘은 농민의식의 성장으로부터 분석될 수 있다. 빈농층의 19세기의 생산관계하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자신의 몫인 잉여노동력을 지주나 부농층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이러한 몫이 커질수록 하층농민, 고용층은 더욱 적대적인 계급의식을 갖게 된다.
하층빈농의 농민의식은 초기에는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과 신분에 대한 평등의식으로부터 발현되어 개별적인 저항 형태로 나타났으나, 생산관계의 위기 속에 점차 적대의식으로 발전 심화되기 시작했다. 제국주의의 침탈과정에서 형성되는 민족의식은 본질적으로 계급의식을 한 단계 고양시킴과 동시에 민족운동으로 발전해가지만 개항 이후의 사회모순을 얼마나 반영해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역사적 성격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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