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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소리가 다시 높아졌고 이에 대해 그는 "천만인 중에 한사람이라도 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경고의 효과가 적지 않은 것"이라 강변했다. 조선총독부가 각 지방에 게시한 경고문을 민중들이 모두 찢어버렸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세번째 경고문을 발표했다.
세번째 경고문에서 그는 이렇게 강변했다. 3·1 운동이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서의 민족자결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조선과 일본은 고대 이래로 동종동족, 동종동근, 이어서 민족자결주의는 조선에 부적당한 것이다, 또한 한일'합방'은 당시의 국내사정이나 국제관계로 보아 역사적 자연의 운명과 세계 대세에 순응하여 동양의 평화를 확보하기 위하여 조선 민족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활로였다, 그리고 3·1 운동에 참가하여 '경거망동'하는 사람은 조선 민족을 멸망시키고 동양의 평화를 파괴하는 우리의 적이다. 가히 민족반역자로서의 극명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후 이완용은 후작으로 승작했고(1921), 아들 항구도 남작을 받았으며 손자 병길, 병희 등도 모두 귀족으로서 일본에 유학하는 등 친일파 수괴로서의 갖은 '영화'를 누리는 한편, 매국의 대가로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게 된다. 일찍이 이재명의 의거에서 목숨을 건진 그는, 만년에 그 집에 함께 기거하던 일족 이영구에 의하여 암살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소문이 있은 지 약 2개월 후 서울 옥인동 자택에서 결국 와석종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8·15 후 그 후손의 손에 의해 무덤이 파헤쳐져 없어지고 말았다.
일제시대의 민족해방운동전선은 좌우익을 막론하고 해방 후의 민족국가 건설과정에서 매국적의 전체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한다는 정책을 세웠으나 이승만 정권이 실시한 농지개혁과정에서 그것이 실시되지 않음으로써 그 재산은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졌다.
● 글을 마치며..
매국노 이완용은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강탈하는데 맞춘
인물이다. 독립문 건설에 이완용이 거금을 냈다면, 그것은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강탈하는데
도움이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매국노 이완용의 행적을 살펴볼 때, 그가 내심 우리나라의 독립을 원했다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일본 세력에 빌붙어서 자신의 부귀영화만 추구했을 뿐만아니라,
매국노 이완용은 자신의 불우했던 젊은 시절로 인하여 조선 왕조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으로 불타고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그의 행적이 말해주고 있다.
세번째 경고문에서 그는 이렇게 강변했다. 3·1 운동이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서의 민족자결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조선과 일본은 고대 이래로 동종동족, 동종동근, 이어서 민족자결주의는 조선에 부적당한 것이다, 또한 한일'합방'은 당시의 국내사정이나 국제관계로 보아 역사적 자연의 운명과 세계 대세에 순응하여 동양의 평화를 확보하기 위하여 조선 민족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활로였다, 그리고 3·1 운동에 참가하여 '경거망동'하는 사람은 조선 민족을 멸망시키고 동양의 평화를 파괴하는 우리의 적이다. 가히 민족반역자로서의 극명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후 이완용은 후작으로 승작했고(1921), 아들 항구도 남작을 받았으며 손자 병길, 병희 등도 모두 귀족으로서 일본에 유학하는 등 친일파 수괴로서의 갖은 '영화'를 누리는 한편, 매국의 대가로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게 된다. 일찍이 이재명의 의거에서 목숨을 건진 그는, 만년에 그 집에 함께 기거하던 일족 이영구에 의하여 암살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소문이 있은 지 약 2개월 후 서울 옥인동 자택에서 결국 와석종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8·15 후 그 후손의 손에 의해 무덤이 파헤쳐져 없어지고 말았다.
일제시대의 민족해방운동전선은 좌우익을 막론하고 해방 후의 민족국가 건설과정에서 매국적의 전체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한다는 정책을 세웠으나 이승만 정권이 실시한 농지개혁과정에서 그것이 실시되지 않음으로써 그 재산은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졌다.
● 글을 마치며..
매국노 이완용은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강탈하는데 맞춘
인물이다. 독립문 건설에 이완용이 거금을 냈다면, 그것은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강탈하는데
도움이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매국노 이완용의 행적을 살펴볼 때, 그가 내심 우리나라의 독립을 원했다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일본 세력에 빌붙어서 자신의 부귀영화만 추구했을 뿐만아니라,
매국노 이완용은 자신의 불우했던 젊은 시절로 인하여 조선 왕조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으로 불타고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그의 행적이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