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성결의 당위성
2. 성결의 필요성
3. 성결의 분류
4. 성결의 구원의 순서
5. 성결에 대한 오해
6. 성결의 정의
7. 성결과 동의어들
8. 성결의 이차적, 순간적 체험
9. 성결을 얻는 방법
10. 성결과 인간의 연약성
11. 성결과 유혹과 범죄
12. 성결의 유지와 성장
13. 그리스도인의 성결을 읽고나서,,
2. 성결의 필요성
3. 성결의 분류
4. 성결의 구원의 순서
5. 성결에 대한 오해
6. 성결의 정의
7. 성결과 동의어들
8. 성결의 이차적, 순간적 체험
9. 성결을 얻는 방법
10. 성결과 인간의 연약성
11. 성결과 유혹과 범죄
12. 성결의 유지와 성장
13. 그리스도인의 성결을 읽고나서,,
본문내용
때문이다.
그런데 성결에 대해서 너무 급하게 생각을 해서 그런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어쩌면 이것은 비단 내 자신 때문만이 아니라 성결에 대해서 우리가 다니고 있는 성결교회들이 잘 교육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결이란 말은 곧 거룩이란 말이다.(이 말은 이 책에도 나온다) 보통 우리는 거룩이란 말을 흠 없고 정결하고 아주 깨끗한 상태로 인식한다. 그래서 성결이란 말도 아주 백지와 같이 깨끗한 상태로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성결은 우리에게 너무나 오르기 힘든 것으로 이해된다. 항상 성결하지 못함에 죄의식을 갖게 되고 언제나 죄의 무게에 눌리게 되어 자유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는 우리가 너무 성결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5장에서 다루어진 ‘성결에 대한 오해’ 의 부분은 아주 좋았다. 결코 성결이 완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자유함을 누렸을 때만큼이나 큰 은혜가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결코 완전한 성결이 아니다라는 것은 바보 같이도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나님만이 완전한 분이시기에 우리 인간 자체는 결코 온전한 성결 자체에 이를 수 없다. 어떻게든 바다를 헤엄쳐서 미국을 가려던 원시인이 비행기를 타고 가면 더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얼마나 큰 기쁨일까?)
그런데 많은 것을 느끼는 한가지 의문을 갖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 부분을 나누고자 한다. 그것은 연약성에 관한 의문이다. 책에서는 분명히 죄와 연약성은 다르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기에 성결과 연약성은 함께 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 연약성을 인식함으로 인해 죄에 대한 억눌림에서 해방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부분은 연약성이 범주에 관한 것이다. 어디까지는 우리의 연약성의 영역으로 봐야 하는가? 연약성이라는 것은 결코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부분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는 넘어설 수 있는 부분인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는 나의 연약성이 극복되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였을 때는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대는 것을 쉽게 그만두지 못했으나 나이를 먹어 장성한 후에는 그런 것들을 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것은 성장에 의한 연약성의 극복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것을 신앙의 부분과 결부시켜 보았을 때 별 차이가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은 유혹에 관한 부분에서 더 크게 느껴진다. 책에서는 유혹이라는 것을 죄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성결한 자도 유혹 받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받을 수 있다라는 말은 선택의 조건을 수반한다. 그래서 유혹을 우리가 선택했을 때 죄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 죄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라고 한다면 연약성과 유혹은 어떤 관계인가? 라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둘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어떻게 이해되어져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것은 연약성의 결부인가? 아니면 연약성의 회복인가? 유혹과 연약성에 연관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고 생각되어 진다. 연약성이 유혹에 대해서 인간이 쉽게 넘어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앞에도 말했지만 책에서 느낀 점이 참으로 많다. 물론 급하게 읽느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리고 핵심적으로 보았을 때 얻은 것들이 많이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책들이 많이 나와서 신학생들의 앎의 욕구와 크리스챤들의 무지를 잘 해결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런데 성결에 대해서 너무 급하게 생각을 해서 그런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어쩌면 이것은 비단 내 자신 때문만이 아니라 성결에 대해서 우리가 다니고 있는 성결교회들이 잘 교육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결이란 말은 곧 거룩이란 말이다.(이 말은 이 책에도 나온다) 보통 우리는 거룩이란 말을 흠 없고 정결하고 아주 깨끗한 상태로 인식한다. 그래서 성결이란 말도 아주 백지와 같이 깨끗한 상태로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성결은 우리에게 너무나 오르기 힘든 것으로 이해된다. 항상 성결하지 못함에 죄의식을 갖게 되고 언제나 죄의 무게에 눌리게 되어 자유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는 우리가 너무 성결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5장에서 다루어진 ‘성결에 대한 오해’ 의 부분은 아주 좋았다. 결코 성결이 완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자유함을 누렸을 때만큼이나 큰 은혜가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결코 완전한 성결이 아니다라는 것은 바보 같이도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나님만이 완전한 분이시기에 우리 인간 자체는 결코 온전한 성결 자체에 이를 수 없다. 어떻게든 바다를 헤엄쳐서 미국을 가려던 원시인이 비행기를 타고 가면 더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얼마나 큰 기쁨일까?)
그런데 많은 것을 느끼는 한가지 의문을 갖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 부분을 나누고자 한다. 그것은 연약성에 관한 의문이다. 책에서는 분명히 죄와 연약성은 다르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기에 성결과 연약성은 함께 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 연약성을 인식함으로 인해 죄에 대한 억눌림에서 해방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부분은 연약성이 범주에 관한 것이다. 어디까지는 우리의 연약성의 영역으로 봐야 하는가? 연약성이라는 것은 결코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부분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는 넘어설 수 있는 부분인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는 나의 연약성이 극복되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였을 때는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대는 것을 쉽게 그만두지 못했으나 나이를 먹어 장성한 후에는 그런 것들을 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것은 성장에 의한 연약성의 극복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것을 신앙의 부분과 결부시켜 보았을 때 별 차이가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은 유혹에 관한 부분에서 더 크게 느껴진다. 책에서는 유혹이라는 것을 죄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성결한 자도 유혹 받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받을 수 있다라는 말은 선택의 조건을 수반한다. 그래서 유혹을 우리가 선택했을 때 죄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 죄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라고 한다면 연약성과 유혹은 어떤 관계인가? 라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둘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어떻게 이해되어져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것은 연약성의 결부인가? 아니면 연약성의 회복인가? 유혹과 연약성에 연관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고 생각되어 진다. 연약성이 유혹에 대해서 인간이 쉽게 넘어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앞에도 말했지만 책에서 느낀 점이 참으로 많다. 물론 급하게 읽느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리고 핵심적으로 보았을 때 얻은 것들이 많이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책들이 많이 나와서 신학생들의 앎의 욕구와 크리스챤들의 무지를 잘 해결해 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