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의 이데올로기 일반의 명제와 주체구성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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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알튀세의 이데올로기 일반의 명제와 주체구성방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알튀세의 이데올로기 일반의 명제와 주체구성방식 (‘호명’테제)

Ⅰ. 머리말
 
 
Ⅱ. 이데올로기의 일반 명제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1. 이데올로기의 일반 명제
 2.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Ⅲ.주체구성방식 (‘호명’테제)
 
 1. 이데올로기의 주체구성 방식
 2. 미디어의 이데올로기적 기능 분석 및 주체 호명 방식 분석

Ⅳ. 결론

본문내용

어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우리들의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흡수된다. 어떠한 비판을 받지 않고 정보를 전달해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말이다. 하지만 부정의 가면을 쓰고 오는 것이다. 기사로 다시 돌아가면 신문이라는 미디어는 객관적인 정보 전달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얼짱 나비기능 ” 과 “똘똘한 디카” 라는 말을 쓰며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가상의 공간 속에서 사회적 위치를 정하는 또 다른 주체로서 진정한 주체인 독자와의 관계를 재생산하며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주체 호명 방식에 대해 분석해 보기로 하자. 독자가 주체라면 우리는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다. 우리는 소비자로 한정되어졌고 노동력과 생산수단인 생산양식을 소유한 자본가들은 생산자로 규명되어 진다. 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우리를 부른다. 위의 기사를 통해 보면 디지털 카메라에 대해 신문은 그냥 객관적인 보도형태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가면을 벗기고 궁극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는 “ 나, 디지털 카메라야. 이번에 새로 태어난 내 친구들을 소개할게. 소프트 측면이 가미된 얼짱 기능을 가진 친구야. 사고 싶지? 60만원이야. 그래도 사면 좋을 거야. 사진 찍는 거 좋아하지? 이거 하나만 있으면 넌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하게 돼 . 그러니까 돈 모아서 사던지 부모님께 사달라고 해서 꼭 사렴.” 이라는 말이 내제되어 있는 것이다. 구매를 직접적으로 시키지 않는다. 간접적으로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통해서 우리를 호명하고 있다.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으로 규정지어진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진 신문의 기사를 읽고 있는 이들을 말이다. 미디어와 개인과의 관계는 가상이다. 우리로 하여금 주체로 인식하게 해서 이러한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구입을 촉진시키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판매, 구매 전략이라는 장소에 우리를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다. 개인은 카메라를 사는 소비자로 인식하게 되고 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해 주는 타자로 인식함으로서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그물망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얘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기사는 결코 새로운 디지털 카메라가 있는 상품전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의 가치를 높이는 적극적인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문으로서 한 미디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지만 그들은 정보 전달이라는 외연적 의미를 통해 상업적 메시지를 내포적 의미로 전달한다. 이를 바라보는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디지털 카메라를 원하게 되고 사고 싶게 되는 상상적이고 허구적인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즉, 이 기사는 기사를 읽는 이들을 자유로운 주체로서가 아닌 소비자로서의 주체로 호명하게 되고 우리는 별 의미 없이 당연한 듯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전체적인 측면에서 요약하면 미디어는 기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사회 구성원들을 소비자라는 사회적 주체로 탄생시키면서 사회관계를 재생산 한다는 점이다
Ⅳ. 결론
이상으로 알튀세의 이데올로기 일반 명제와 주체구성방식에 대한 정의와 미디어에서의 이러한 기능을 분석해 보았다. 분석을 하기 위해 많은 글들을 접해 보았는데 깊이 있는 분석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튀세의 철학적 이론을 통해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력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 이였다. 이렇게 이론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 해 보고 난 후 정말 우리 주위의 세상은 항상 나를 호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정한 주체로서의 ‘나’라는 한 사람이기 이전에 소비자로서의 주체로 말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에 행해지는 의식 그리고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라는 가상적 인물에 대해 어떠한 개념이 주입되어 그들을 기다리는 것 또한 모순적 이데올로기가 아닐 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어렸을 적 이 노래를 항상 부르곤 했었다. “산타할아버지는 알고계신데, 누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데.” 그리고는 큰 모형양말을 머리맡에 걸어두고는 자고 눈을 떴을 때 그 속에 선물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비로소 산타할아버지라는 존재를 믿고 그것을 확인하고 행복해 하는 내 모습 속에서 주체임을 확인하였다. 비록 산타할아버지는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거시적 측면으로 보았을 때 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데올로기 측면이라는 미시적인 측면에서는 이것도 모순적 이데올로기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 한 것은 사실이다. 어떠한 의식에 있어서 그리고 자율성에 있어서도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자율성이 아님을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본다. 이데올로기 내에서 이미 태어날 때부터 구조 속에 편입되어진 우리들은 상대적인 자율성을 자신의 주체를 확인하는 절대적 자율성이라 생각을 하고 시대에 흡수되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 또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는 것임을 알튀세가 정의내릴 때 고개가 끄덕여졌다.
심리적 보상감이라고 해야 할까? 대학입시 이전 까지 어떠한 틀 내에서 다양성과 창조성을 묵살 시키고 무조건적인 암기식 교육방법에 대한 회의를 느꼈던 나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산 내의 그리고 사회적인 적응을 위하여 많은 기술적 요소를 습득하고 세상사는 노하우에 대해 배우고 노동력의 기술 재생산의 필요에 의한 어찌 보면 구조내로의 완벽한 적응을 위해 훈련을 받아 왔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또한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긍정의 의미가 크다. 예절과 가르침을 통해 나라는 한 사람이기 이전에 함께 라는 측면인 ‘우리’ 라는 의미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위의 글 쓴 내용들이 너무 숲을 보지 않고 나무를 보는 것처럼 부분적인 시각에서 머물렀다.
알튀세의 이론에 대해 조사하면서 이는 어찌 보면 현실 상황이 어떠한 질서 체계라고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모호함을 느꼈지만 알튀세의 이론에 대해 알 수 없었다면 무의식 속에서 이데올로기가 작용하는 지도 모르는 무비판적인 소비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감사함을 느낀다.
분석과 자료정리에 있어서 미흡함에 많지만 지적 해 주시고 가르침을 주셨으면 하는 게 개인적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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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5.21
  • 저작시기2013.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48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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