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학] 아브라함 약속에 대한 이해(창 12장 1-3절,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겠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아브라함에 대한 부르심(1절), 하나님의 세 가지 약속(2절),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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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약신학] 아브라함 약속에 대한 이해(창 12장 1-3절,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겠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아브라함에 대한 부르심(1절), 하나님의 세 가지 약속(2절), 모든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1.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아브라함에 대한 부르심(1절)

2.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위한 하나님의 세 가지 약속(2절)
(1)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겠다
(2)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
(3) 네 이름을 크게 하리라
(4) 그러므로 너는 복이 될 것이다(2절하)

3. 아브라함과 세상 모든 족속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3절)
(1) 내가 너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 할 것이다(3절상)
(2) 네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다(3절하)

참고문헌

본문내용

하찮게 대한 것이다. 더욱이 아브라함 부부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경륜의 통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로 와 아비멜렉을 저주(형벌)하셨다. 그러나 그 들이 아브라함의 신분을 알고 돌이켰기 때문에 그 들이 형벌을 받은 것은 잠깐이었다. 아브라함을 대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복과 형벌을 주시는 것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보호하시기 위함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히브리어 구문상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은 저주(형벌)보다는 축복이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들(복수분사)을 위한하나님의 행동은 권고형(cohortative)으로 표현하여 하나님이 그 들을 틀림없이 축복하신 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브라함을 하찮게 여기는 자(단수분사)에 대한 하나님의 행동은 단순 미래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단수로 표현 된 '아브라함을 경시하는 자’는 복수로 표현 된 ‘그를 존중하는 자들’과 비교 할 때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예외로 간주되는데, 아브라함의 삶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번영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명백하여, 그것을 인식하지 못 하는 사람들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향하여 분명하게 시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2~3절상까지 접속사+권고형으로 표현되는데, 이 문법적 연결이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법 구조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인류를 축복하시는 것이므로, 강조가 저주가 아닌 축복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강조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아브라함의 존재(2절하)에 비추어 볼 때 자연스럽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경시하는 자가 받는 하나님의 저주(형벌)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게 행동하는 자에게 합당한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것 일뿐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되는 시점부터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 된 복이 인류에게 이루어지는 통로 역 할 을 하게 되므로, 인류는 아브라함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 된 복을 받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닐 것이다.
(2) 네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다(3절하)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이 약속되어 있다. 여기서 히브리어 동사 ‘니브레쿠’는 재귀형, 수동형, 또는 중간형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니팔형 ‘니브레쿠’는 구약성경에서 창세기에만 나온다(12:3, 18:18, 28:14). 그렇다면, ‘니브레쿠’에 대한 해석은 전치사‘브’의 이해와도 연관이 있다. 먼저, 히브리어 전치사 ‘브’를 살펴보자. 전치사 ‘브’는 문맥에 따라서 다양하게 이해된다. 그중에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만일 ‘브’를 수단으로 볼 경우 아브라함은 축복의 ‘중재인’으로 해석 된다. 그러나 ‘브’를 ‘기준, 표준’으로 이해하면 ‘아브라함 같이’, 즉 ‘아브라함이 가진 하나님과의 관계와 동일하게’라는 의미가 된다.
만일 ‘니브레쿠’를 재귀형으로 이해 할 경우, 세상 모든 족속은 ‘우리는 아브라함 같이 복을 받기를 원 한다’, 또는 ‘서로 복을 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아브라함약속에서 축복의 수여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복을 빈다는 의미는 타당하지 않다.
‘니브레쿠’를 수동형으로 번역 할 수도 있다. 이 경우는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해석 된다. 그러면 전치사구 ‘네 안에서’는 아브라함을 축복의 전수자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2~3절상에 언급된 하나님의 약속들을 감안 할 때 단순히 수동형으로 보기는 어렵다. 수동형의 의미는 세상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은 상태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부여 된 약속들은 그 약속들이 성취 된 상태뿐만 아니라 성취되는 과정을 포함 한다. 큰 민족을 이루고, 큰 이름과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번영에 대한 약속과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이 순종을 통하여 여호와 의 왕권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은 동전의 양면과 도 같다. 이에 대응해서 세상 모든 족속은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깨닫고, 그들도 그 분의 왕권에 순복하는 것이 곧 그들에게 복이 된다. 즉, 과정과 상태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수동형의 뜻에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이방인들에게까지 미친다는 의미는 드러나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 같이, 그들도 이스라엘이 선포 할 메시지를 깨닫고 여호와께 순복하여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대하는 행동에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검안 한다면, 재귀적 · 수동적 의미도 가능하겠으나, 전치사 ‘브’의 용법에 비추어 볼 때 설득력이 약하다. ‘니브레쿠’를 중간형으로 이해 할 경우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한 것 같이 모든 민족이 그러한 관계를 가질 때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해석 된다. 여기서 전치사 ‘브’는 ‘기준, 표준’으로 이해된다(위를 보라).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존중 할 때,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그 출l 복을 얻는 기준이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세상 모든 족속이 복을 받기위한, 즉 창조 때부터 경륜 된 하나님의 시원적 안식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전형이다. 달리 말해 아브라함의 순종은 세상 모든 족속이 하나님의 왕권에 순복하여 복을 받는데 그 분의 쉼에 이르는데 모범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브라함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된다.
참고문헌
이홍찬 저, 예수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지민 2012
목회와신학 편집부 저, 창세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2012
마틴 로이드 존스 저, 설교와 설교자, 복있는사람 2012
존 H. 월튼 저, 창세기(NIV 적용주석), 성서유니온선교회 2007
J. A. 모티어 저, IVP 성경주석,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IVP)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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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3.24
  • 저작시기2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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