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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용천부유지, 3령둔무덤, 임강진 발해유지 등인데, 서경압록부의 전 지역내에서 지금까지 돌사자를 발견한 곳은 임강진 한 곳 뿐이다. 이는 임강진이 서경압록부의 관할지역내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처해 있었고 이곳에는 중요한 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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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개설, 일지사, 1977.
김용남·김용간·황기덕, 우리나라 원시집자리에 관한 연구, 사회과학연구출판사, 1975.
김원룡·임효재·전학수, 오산리유적Ⅱ,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 총서 제20책, 1985.
김재원·윤무병, 韓國支石墓硏究, 國立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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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용천부 방어 전투, 멸망 후에 전개된 장령부, 압록부, 안변부, 막힐부, 정리부, 남해부, 철주 자사의 지휘 하에 전개된 철주민의 항쟁은 계급간의 대립에 의한 발해 멸망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특히 중앙정부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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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용천부(문왕 때 당과 친선, 당의 문물 받아 들여 관제 정비, 신라와의 상설 교통로를 개설하여 대립관계 해소 노력. 천도는 지배체제 정비를 반영한 것)→동경용원부
=발해의 국력이 동쪽으로 성장한데서 연유
④ 10대 선왕 대인수 (818-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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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용천부와 일직선상에 놓여 있어, 부여성만 돌파하면 수도를 기습하기에 아주 유리한 위치였다. 부여성이 함락된 후 길목에 있던 차단성과 방어성들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요의 주력 부대가 기병이 중심이 되어 신속하게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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