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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녕전이라 하였다. ‘永寧’이라는 이름은 조종과 자손이 길이 평안하라는 의미이다. 세종 3년 10월에 창건된 영녕전의 규모는 태실 4칸에 좌우 익실 각 1칸씩으로 모두 6칸이었다.
영녕전 역시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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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묘의 역사
2. 종묘의 구석구석
① 외대문 (정문)
② 망묘루
③ 공민왕신당
④ 향대청
⑤ 어숙실
⑥ 공신당
⑦ 칠사당
⑧ 정전
⑨ 정전수복방
⑩ 전사청
⑪ 제정
⑫ 영녕전
⑬ 정전 악공청
⑭ 영녕전 악공청
⑮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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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정전 다음으로 중요한 건물인 영녕전으로 향했다. 얼핏 보기에는 정전과 매우 비슷한 형태의 건물 같았지만 정전이 주는 분위기와는 또 사뭇 달랐다. 확실히 정전이 주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느낄 수 없었지만 뭔가 더 아기자기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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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25호. 총면적 5만 6503평. 서울 종로구 훈정동 소재. 원래는 정전을 가리키며, 태묘라고도 한다. 종묘의 정전에는 19실에 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 신주를 모셨으며, 영녕전에는 정전에서 조천된 15위의 왕과 17위의 왕후 및 의민황태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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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녕전의 악공청이 별도로 있었으며 마루와 방이 있던 간소한 건물이었다.
정전과 영녕전의 악공청은 원 상태로의 복원이 되어 있지 않으며, 지금은 기둥만 남아 있어 내부 구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종묘제례
조선 역대의 왕과 왕비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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