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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서
조선 시대 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하던 관청. 예조에 소속된 종6품 아문(衙門)으로 처음에는 도화원으로 불렸으나, 1471년(성종 2년) 도화서로 개칭되면서 격하되었다. 도화서의 수장인 제조를 예조판서가 겸직하도록 하였고, 실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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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서·예조 판서를 역임 했다.
○충익공 김상철
1712(숙종38)-1791(정조15)
자는 사보, 호는 화서, 판돈령부사 김시혁의 아들.
1733년(영조 9) 사마시를 거쳐, 1736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지평·교리를 지내고, 1757년 충청도 관찰사 이어 대사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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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판서에서 물러나 고향에 낙향하여 여생을 보내겠다고 상께 청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지중추부사로 임명되어
국정을 돕다가 3년 후 명예롭게 퇴직하였으니 생에 대한 회한은 없다.
참고문헌
전통사회와생활문화 한국방송통신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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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판서공조판서 등을 거쳐 1563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이때에 기대승(奇大升)허엽(許曄)윤근수(尹根壽) 등의 사림들과 가까웠던 조카 심의겸(沈義謙)을 제거하려다가 오히려 심강(沈鋼)과 심의겸 부자의 탄핵을 받고 삭탈관직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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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서가 되어 유림의 몰락을 한탄하고 김원행(金元行) ·송명흠(宋明欽) 등 선비를 기용하여 세인을 놀라게 하였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 ·성균관지사(成均館知事) ·예조판서 등을 거쳐 중추부판사(中樞府判事)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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