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체험수기 대상 지적장애인 축구 4관왕 그리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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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육 현장체험수기 대상 지적장애인 축구 4관왕 그리고 지금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경상북도 축구협회에서는 전국대회 4관왕의 공로로 나에게(왼쪽) 감사패를 수여하였다. 출처= 2012.1.6. 안동뉴스 기사 캡처
그 뒤 연이은 대회에서 우리는 승승장구했고, 거짓말처럼 4개 대회에서 잇달아 우승했다. 보통 스포츠 부분에서 전 대회에 우승하는 것을 그랜드슬램이라고 말하는데 2011년 4개의 전국 대회에서 전부 우승하였으니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해 연말 각종 매스컴과 시상식에서 분에 넘치는 주목을 선수들과 나는 받았다. 그 뒤로도 나는 4년간 축구부를 지도하며, 몇 번의 우승을 더 경험하였다.
지난 4년간의 꿈같았던 영광을 함께 한 나의 첫 선수들은 지금 모두 졸업하여 축구와 일을 병행하는 직장에 취직하여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도 체육 교사와 축구부 업무와는 상관없는 담임교사를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며,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초과 달성하여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고진감래라는 말을 직접 경험한 아이들은 인생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에 다가가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학교와는 다른 분위기의 사회라는 울타리 없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여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만나면, 욕심이 과한 초짜 감독 때문에 ‘고생 많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예전처럼 신나게 같이 축구하고 아이들과 내가 즐겨 먹던 축구부의 단골 회식 메뉴 돼지국밥을 먹으며 아이들의 졸업 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른의 반성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나는 지적장애인 축구 지도자로는 더 할 나위 없이 화려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손톱의 가시가 있다. 평생 가슴속 돌덩어리로 남을 것이다.
겪어보지 않고 어떻게 아픔을 헤아릴 수 있을까? 아이들의 어두운 과거의 응어리를 나는 빛나는 축구 성적으로 이끌어내는 원동력으로 둔갑시켰지만 아이들의 과거에는 단 한 번도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씻어 주어야 했지만 나는 당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마음이 몹시 황폐해져있었다. 핑계이지만 사실이었다. 축구만 잘해도 모든 것이 용서될 것처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였다. 비교육적 처사도 다분히 많았다. 내 마음 속에는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상처로 남았다.
그간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했었지만 실은 내가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모두가 아이들 덕분이었다. 나에게 모든 영광을 안겨준 아이들에게 나는 좀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했었다. 학교에서의 일만 책임지면 되고, 아이들의 가정사는 되도록 멀리하고 싶었다. 가정에서 등대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얼마나 방황했을까? 가족을 부정하고 세상을 신뢰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잘못된 선택을 하면 잡아준 어른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 밖 사회에서 방황하지 않도록 나라도 관심 가져야 했었다. 나의 능력 부족이었다. 못 난 나를 교사로서 성숙하게 한 최고의 선수들에게 나는 결국 큰 빚을 지고 말았다. 언젠가는 그리고 이제는 축구 감독이 아닌 교사로서 아이들의 과거를 어루만져줄 것이라고 다짐한다.
최고의 선수들이 나의 제자들이어서 정말 자랑스럽다. 연습 상대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던 이른 봄, 유난히도 나의 첫 선수들이 생각난다.
편지: 마지막 전국대회. 끝내 나타나지 않은 박○○에게
박○○에게
여름방학 3일 후 출전하는 전국 대회에서 너의 모습은 끝내 볼 수 없었구나. 방학식날 축구대회에 필요한 유니폼과 축구화를 나에게서 받아가던 너의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구나. 언제나 그렇듯 경기 당일 아침까지도 ‘선생님 저 데리러 오세요. 저 축구대회 나갈게요.’ 라고 전화 할 줄 알았는데… 나 말고도 너를 찾던 사람들이 더 있더구나. 무슨 영문인지 경찰서에서 너를 찾는 전화가 너의 전화를 대신했었다. 지난 시절의 못된 친구들을 다시 만나 거역할 수 없는 심부름을 너에게 시켰을 것이다. 그 친구들은 분명 너에게는 ‘장난’이라고 했겠지. 너희들의 특성을 잘 알기에 충분히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지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졸업식에는 학교에 올거야.”라고 이야기해두었다. 대회가 끝난 후 ‘축구 대회 못 가서 죄송해요’라고 보내온 너의 문자가 마지막이 되었구나.
자퇴 소식을 들었다.
축구부 중에서 가장 ‘감독님’을 생각해주는 아이였고, 제일 성실했기에 연습도 많이 시켰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오히려 너한테만 더 혹독하게 훈련시킨 것 같아 미안함만 남는구나. 우리 함께 전국 대회를 휩쓸던 지난 4년간 너는 나에게 최고의 선수였다.
아무것도 묻지 않을 테니 다른 친구들처럼 너의 소식만 알려주렴. 우리 다 같이 다시 모여 축구하고, 돼지국밥 먹으러 가자꾸나.
부록
사진-1
△모교 특수교육실무사로 채용된 축구부 졸업생 김○○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와 뉴스로 수차례 보도되었다. 출처= 2011.2 안동 KBS ‘나는야 행복한 선생님’ 영상 캡처
사진-2
△2011.11 제34회 지적장애인 체육대회 우승 후 축구부와 전교직원
사진-3
△2011. 7.2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축구부 이야기의 언론 보도를 통해 서울의 ‘회오리 연예인 축구단’과 연습경기를 하게 된다.
사진-4
△나는 방송에 출연하여 아이들과의 고진감래의 경험담을 알릴 수 있었다. 출처= 2012. 1.26 안동MBC 생방송 ‘인터뷰 오늘’ 영상 캡처
사진-5
△2015.1.13. 본교를 방문한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가운데)와 축구부 아이들의 친선 경기에서 나는(오른쪽) 축구부 아이들을 지도하고 심판을 보았다.
사진-6
△2015.1.13. 본교를 방문한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가운데)와 축구부 아이들의 친선 경기. 출처= 2015. 1.14. 연합뉴스 기사 캡처
사진-7
△2012. 1.4. 한국 장애인 축구 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감독상, 올해의 단체상, 올해의 신인상, 올해의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하였다. 출처= 2012.1.5. 경북일보 기사 캡처
사진-8
△2012. 6.18. 매일신문 기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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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21.08.06
  • 저작시기2015.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15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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